▲김용진 교수(웰빙코칭아카데미 대표, http://blog.daum.net/k-d-h).
가인이 동생 아벨을 참혹하게 쳐죽인 사건이 창세기 4장의 내용이다. 그런데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과연 제사 문제로 인한 갈등 뿐이었을까? 앞에서 필자는 소유가치와 존재가치를 언급하면서, 가인이 소유가치를 따지는 비교의식 때문에 오판한 것이 한 원인이었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그것 이전에 가인의 심적 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어쩌면 아래 글은 필자의 상상력에 근거한 것이므로 상당부분 사실과는 다를 수도 있겠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 부부를 추방할 때 창조주는 그들이 앞으로 농업에 종사하라고 명령하셨다. 정확히 인용하자면 “땅이 엉겅퀴와 가시덤불로 고통을 주더라도 거기에 밭을 만들어 땀 흘리며 채소를 가꾸어 그것으로 평생토록 식물을 삼으라”(창 3:17~19)는 단호한 명령이었다. 즉 농업이 아담 부부에게 주어진 직업이었던 것이다.

아담의 장남 가인은 부모가 땀 흘리며 고생하던 농업을 천직으로 알고 이어받은 효자였다. 그는 심은대로 거두기를 바라는 순박한 농부였다. 그런데 현실은 가인의 마음을 알아주기에 녹녹지 않았다. 그가 농사지어야 하는 땅은 저절로 농사가 되는 그런 옥토가 아니었다. 창조주에 의해 저주받아 날마다 고난을 안겨주는 지옥같은 땅이었다.

땅은 땅을 파 일구고 거기에서 이득을 얻고자 하는 농부를 쉽게 받아 주지 않고 배척했다. 엉겅퀴와 가시덤불이 엄청난 속도로 자라 농작물을 위협함으로써 항상 가인의 노동력을 비웃는 듯했다. 가인은 땀 흘리며 날마다 고된 노동을 했지만 그날 그날 먹을 정도의 식량 밖에는 남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가인은 부모로부터 들었던 한때 행복했던 에덴동산의 그 풍요로움을 틈틈이 그리워했다.

자! 그럼 아벨을 생각해 보자. 아벨도 형처럼 땅에서 땀 흘리며 노동하여야 할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벨은 약삭빠른 사람이었다. 부모와 형이 농사로 평생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농사를 포기하고 부모와 가인 곁을 떠나 버렸다. 그리고 아벨이 선택한 곳은 넓은 들판이었고 한가로이 풀을 먹고 사는 양떼들이었다.

아벨은 영리하게도 들판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살던 양들을 잡아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 버렸다. 자기 자본 하나도 안 들이고 인류 최초로 무자본 목축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도 아벨은 별로 땀 흘리지 않고 양치기로 재산은 급격히 증가해 갔다. 아벨에게는 양고기와 양젖이 항상 풍부했고 추위도 해결할 수 있는 양가죽도 넘쳐났다.

이러한 불공평한 상황에 대해 가인은 분노하지 않을수 없었다. 가인의 분노는 어쩌면 근본적으로 창조주에 대한 분노라고 볼 수 있다. 사실 가인은 창조주가 에덴에서 부모인 아담과 하와를 추방할 때 하셨던 그 말씀에 충실했다. 가인의 부모에게 하셨던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창 3: 18)라는 그 명령에 말이다.

그래서 가인은 농사짓는 자가 되어 날마다 열심히 땀 흘리며 살았었다. 그러나 땀 흘리며 풀과의 전쟁을 하지도 않는 동생은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창조주의 명령에도 없는 양치기를 하는 아벨과 자신과 그 결과를 비교해 보면 너무 억울했던 것이다. 이러한 차별된 결과를 얻는 불만이 결국 분노가 되어 버렸다. 제사를 빌미로 동생 살인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터트리고 말았다.

가인의 심중을 이미 꿰뚫고 아시는 창조주께서 동생에 대한 가인의 열등감과 분노를 잠재우라고 만류하셨었다.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는데 죄가 너를 미혹하더라도 너는 죄를 짓지 말거라”(창 4:7)고 창조주가 권면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가인은 창조주의 권면을 일언지하에 거역했다. 그리고 창조주가 지켜 보는 것을 뻔히 알면서 동생을 들판으로 불러내어 잔인하게 피 흘리게 쳐 죽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찾으시는 창조주에게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창 4:9)라고 대들어 버렸던 것이다. 가인이 동생을 살해한 이면에는 이처럼 창조주에 대한 불만이 근본 원인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왜? 가인은 창조주에 대한 불만을 세상에서 형통하고 있는 동생 아벨을 죽이는데까지 분노함으로 터트렸을까? 그것은 ‘자기 의’(self-righteousness)와 관련시켜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가인은 ‘자기 의’에 중독됨으로써 분노했고 그 분노는 창조주에 대한 거역까지 치닫고 말았다.

‘자기 의’는 자신이 의롭다는 위선에 빠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기 의’는 신앙적 차원에서 창조주에 대한 교만을 유발할 뿐 아니라 심리적 육체적 차원에서도 부작용을 낳고 만다. 그런데 현대인들 중에는 가인처럼 ‘자기 의’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어떻게 분석해야 할까? 그 결과는 결국 안티 웰빙 사회로 결말나게 될 것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