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진 교수(웰빙코칭아카데미 대표, http://blog.daum.net/k-d-h).
최근에 한국 사회에서 누드 열풍은 하나의 신드롬화되는 현상들 중 하나이다. 누드라는 명칭에서부터 사람들에게 신비감과 더불어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달리 생각하겠지만 본래 누드의 의미는 저속하거나 세속적이고 퇴폐적인 것은 아니다.

아무튼 누드 열풍은 이제 연예계의 영역에서만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문화와 문학, 그리고 사회 전반에서 누드 열풍이 심심찮게 불고 있다. 2010년에도 수많은 여자 연예인들이 누드 화보집을 냈고, 공연계에서도 누드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특히 주목할 것은 누드가 대중에게 공급되는 서비스의 형태도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개의 경우 화보집으로 출간되던 누드가 이제는 인터넷과 모바일로 영역을 넓혀가면서 ‘IT 에로’ 시대를 열었다는 비판도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누드에 대한 관심은 특정인들에게서만이 아니다. 현대인들은 누드 열풍에 대해 그리 놀라운 일로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일반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데 한창 때의 몸매를 사진에 담아두기 위해 사진관을 찾아가 누드 사진을 찍는 사람, 그리고 애인이나 친구의 누드 사진을 디지털카메라로 자신이 직접 찍어 인터넷에 공개하거나 자신만의 사이트에 보관하는 사람, 심지어 누드 동호회에 가입해서 누드에 관한 열정을 담론화 및 일반화하는 사람들의 대열에 동참하는 사람도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누드 열풍은 인간의 내면적인 욕구 분출의 하나로 트렌드화되어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에서 잠시 재미있는 질문을 하나 던져 보자. 에덴 동산의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분명히 누드였다. 그렇다면 누드인 그들은 성숙한 성인이었을까 아니면 소년 소녀같은 미성년 상태였을까? 창세기 2장을 잘 살펴 보면 그것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 나타난다. 소년 소녀같이 철들지 않고 미성숙한 사람이 에덴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정원을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중의 수많은 새와 들짐승들을 일일이 분류하고 각각의 특징을 분석하고 고유한 이름을 붙여 부르게 했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담과 하와는 완전히 성숙한 청년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견해가 성경적이다. 그런데 에덴의 관리자로서 살아가는 그들의 복장을 지금 현대인들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스꽝스럽다. 왜냐하면 다 자란 성인 남녀가 벌거벗고 에덴 동산을 활보하며 다녔기 때문이다. 그것도 에덴 동산의 모든 생명들의 관리자로 말이다. 창세기 2장의 마지막 결론은 무엇일까? 바로 그 문제에 대한 그들의 모습과 그들이 가졌던 본래적 느낌에 관한 해답이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 2: 25)

현대인들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분명 이들의 모습과 생각은 야만적이거나 원시적이거나 미성숙한 판단일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그들이 오히려 현대인들의 휘황찬란한 옷들을 보면 위선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들의 눈에 현대인들의 의복은 에덴 동산을 관리하기 위해 돌아다니는데 매우 거추장스럽고 불편함을 주는 것일수도 있다. 우리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그들의 시각으로 바꾸어 본다면 알몸의 그들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의복은 비자연적이고 반자연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야생 동물들이나 짐승들이 평생토록 옷을 만들어서 입지는 않듯이 말이다.

본래 인간의 의복은 부정적인 기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즉 범죄한 아담 커플이 자신들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발견한 이후 그 부끄러움을 가리고자 만들어 입은 데서 시작된 것이 의복의 기원이다. 그러한 의도로 급조한 것이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일회용 옷(창 3:7)이었다. 웰빙을 위한 기본적인 생각이 담기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 에덴 동산에서 추방될 때 창조주가 직접 그들의 척박하고 추운 환경에서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동물 가죽으로 만들어 입힌 옷이 현대인들의 화려하고 다양한 복식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죽옷의 등장! 현대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값을 많이 주더라도 선호하는 옷은 대부분 동물 가죽과 관련된 옷이나 가죽 신발이나 가죽으로 만들어진 생활용품과 관련된 고급 제품들이다. 그 까닭은 가죽 제품만큼 폼이 나고 따스하고 질기고 실용적인 제품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창조주가 에덴 동산 추방 이후에 주셨던 그 선물의 효과가 지속적임을 현대인들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현대인들도 누드로 사는 것이 좋다는 말이냐? 물론 그것은 아니다. 초기 인류시대의 환경이 현대 환경과는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기 때문에 합리적이지도 않다. 그리고 너도 나도 벌거벗고 다닌다면 이 사회는 오히려 해결할 수 없을만큼 커다란 혼돈이 발생하고 말 것이다. 단지 성경적인 웰빙과 관련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별 생각없이 옷을 입는 의복 문화를 검토 해 보자는 것이다. 이제 우리들에게 옷은 멋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보호 장구이기 때문이다. 만일 옷이 멋으로만 끝나고 몸의 건강을 상하게 한다면 그 옷은 버려야 할 옷임에 틀림없다.

의복의 긍정적 목적은 신체 보호를 위해 창조주가 가르쳐 준 웰빙 도구의 하나로 사용한다는 점에 있다. 옷은 체온 유지와 피부 보호를 위해 효과적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균형과 절제가 필요하다. 인체의 온도가 내려가면 그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지방이 축적된다. 몸이 따뜻해지지 않는다면 지방층이 더 두꺼워지고 비만이 된다는 말이다. 또한 빛 에너지를 너무 많이 차단시키는 것도 영양학적 차원에서 보면 엄청난 손해이다. 그러므로 가급적 보온만을 생각해서 온 몸을 꽁꽁 싸매고 다니는 것은, 도리어 감기에도 잘 걸리게 하는 병약한 체질로 만드는 나쁜 방법이 된다.

또한 옷은 자연색의 옷이 웰빙과 가깝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멋을 내기 위해 다양한 색으로 화려하게 만든 옷은 수많은 화학 약품으로 염색하고 가공하는 안티 웰빙(anti-well being)적인 과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각종 화공약품 처리 과정을 거쳐 생산된 화려한 칼러의 의복이 피부 알러지를 유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옷으로 인한 아토피 같은 피부 관련 질환은 현대인들에게 심심찮게 발견되는 고통들이다. 그러나 옷은 옷일 뿐 신체 그 자체는 아니다. 문제는 건강과 관련하여 옷을 어떻게 신경써야 하느냐이다.

결론을 내어 보자. 에덴 동산에서의 누드는 건강과 관련하여 현대인들에게도 적용할 만한 모습이기는 하다. 세포가 건강하면 몸이 건강해진다. 세포를 건강하게 하려면 피부에 신선한 바람과 자주 접촉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온몸의 피부를 자연스럽게 자연 속에서 자주 노출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피부 마찰을 통해 노폐물과 범벅이 되어 비틀거리고 있는 세포들을 건강한 세포로 활성화시키는 방법이다. 이른바 필자가 선별적으로 암환자들에게 따스한 시간대에 권하는 산림욕의 효과가 그런 좋은 예이다.

여기에서 제안 하나 할까? 만일 당신이 날마다 맨발의 알몸으로 고요한 산 속에서 10분씩만 조깅을 한다면 당신의 바이오 리듬은 최상의 상태로 올라갈 것이다. 웰빙족들이 선호하는 산림욕은 에덴 동산의 누드 웰빙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 아닐까? 그러함에도 현대라는 환경에서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으면서도 건강을 챙기는 지혜는 정말 필요할 것이다. 아무데서나 훌떡 벗고 산책한다는 것은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므로 문명사회에서 정신병자로 취급받기 쉬우니 말이다. 그러나 당신의 의복이 당신의 몸을 지키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 슬금슬금 당신의 세포를 살해하기도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