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철호 선교사(선교한국 파트너스 상임위원장 hanchulho@gmail.com).
다음은 선교한국 홈페이지(http://missionkorea.org/)의 ‘한철호의 선교마당’에 2010년 12월 10일 소개된 글이다. -편집자 주

“저희가 모였을 때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이니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6-8)

“999년의 마지막 날 사람들은 로마의 광장에 모여서 횃불과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기도와 찬양을 하고 있었다. 머리 위로는 새해가 아니라 인류의 마지막 날을 위한 교황청의 교회의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참 하나님을 찬양하네. 나는 사람을 부르고 제사장들을 모으고 , 나는 죽음을 통곡하며, 나는 사탄을 패망시키고 마지막 심판의 종소리를 울리네’. 마침내 마지막 운명의 시각을 알리는 괘종시계가 울리자 군중들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고 숨도 마음대로 내쉬지 못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땅이 열려 교회와 경배자들을 삼키는 일이 일어나지 않고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지도 않자, 사람들은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후 군중 속에서 흐느낌과 웃음소리가 들리고, 남편과 아내, 종과 주인이 서로 껴안았다. 서로 악담을 주고받던 원수들이 마치 친구들처럼 화해하기 시작했고 평화의 입맞춤을 나누고 로마의 언덕 위에 있던 모든 교회들이 종들이 찬양의 소리를 울리기 시작했다. 옛적의 예언자들이 말하던 쓴잔을 지나갔고 새로운 세상이 탄생한 것이다.”(Richard Erdoes, 'The Year 1000' Psychology Today, May 1989 44-45)

2000년이 시작될 때 온 세상을 새로운 기대와 소망에 차 있었다. 새로운 밀레니움의 시작은 항상 그래왔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기독교는 새로운 밀레니움이 시작되는 순간 보다는 한 밀레니움이 끝나는 것에 대한 기대가 더 많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소망 때문이었다. 이번 천년이 가기 전에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길 기대하는 강력한 소망의 열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강력한 소망은 강력한 전도와 선교운동으로 일어나기 마련이다. 1990년대 전 세계적으로 AD 2000운동이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미쳤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즉 2000년이 되기 전에 모든 민족 가운데 교회를 세우고,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자는 강력한 소망 때문이었다. 또한 1990년대 국내적으로 다미선교회 등 극단적인 시한부종말론자들이 엄청난 소동을 일으킨 것도 이러한 세기말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2000년이 시작되었을 때, 그들이 기대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세계선교와 국내 전도는 일시적인 진공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전 세계 선교는 21세기의 그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하게 된다. AD2000, WEA, 로잔(Lausanne)등의 복음주의권 지도자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여러 방향에서 회의와 만남을 거치면서 세계선교의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10월 남아공의 케이프 타운에서 열린 로잔 2010년 대회에서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전도와 선교에 관련된 부분만 요약하자면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유일성에 대한 강력한 헌신이고, 다른 하나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삶이 복음의 내용과 일치되어야 하는 온전성(Wholistic) 혹은 통합성(Integrity)을 회복하는 두 가지가 21세기 선교와 전도의 방향임을 재천명한 것이다. 또한 상황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의 중심축이 서구에서 비서구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다. 이미 세계 기독교인구의 70%이상이 비서구권에 살고, 그 결과 교회의 중심과 선교의 주도권이 비서구권으로 이동 혹은 이제까지 서구주도형에서 서구와 비서구과 함께하는 동반자 선교의 시대가 열린 것에 대한 자각이었다.

이러한 세계 선교 흐름의 변화는 한국선교에 매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왜냐하면 이미 한국교회는 세계 2위의 선교사 파송국가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제 한국교회 선교의 내용과 질은 단순히 한국교회의 과제가 아니라, 전 세계 선교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한국 선교계에서 선교의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가 동반되어야 하다는 심각한 문제제기와 반성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스럽고 기대가 되는 일이다. 최근 한국선교 안에 NCOWE(국가선교전략회), 방콕포럼, 설악포럼 등 각종 포럼들이 반성과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자각은 단지 외부적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새로운 선교사 동원에 있어서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2007년을 전후로 대학생 선교단체의 사역 환경이 급속히 악화 되었다. 이미 2000년 초부터 시작된 급격한 사회환경과 젊은이 의식의 변화로 캠퍼스 대학생복음화 사역이 크게 위축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은 2007년 아프칸 피납사건을 기점으로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본격적인 지탄을 받게 되면서 전도와 젊은이 선교동원에 흐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국교회 전도는 이러한 세계적, 혹은 국내적 흐름과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2000년 새로운 밀레니움이 시작될 때, 한국교회에 세계선교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국내전도에서 어떤 문제들이 잠재되어 있는지에 대한 자각이 없었던 것 같다. 2000년이 넘어서면서부터 통계적으로 개신교 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젊은이들이 교회로부터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는 했지만, 적극적인 대안을 모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중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잠재되어 있던 악재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교회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급속히 악화되어 갔다. 그 결과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교회전도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 전도의 문제는 메시지의 부재가 아니라 메신저(전도자)의 한계로 인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리스도 복음 중심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다년간 축적된 전도 역량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전도에 어려움을 격고 있다. 그것은 메신저(전도자)의 한계 때문이다. 마샬 맥루한은 “Medium is Message"(매체가 메시지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메신저를 통해 메시지를 인식한다. 따라서 메신저가 자신들이 전달하는 메시지의 내용대로 사는 것으로 보여 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전도 회복은 이 문제를 풀어야 가능하다. 특별히 교회 지도자들이 메신저로서의 올바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거의 몇 주 간격으로 등장하는 지도자들의 비리와 인격적 한계는 전도의 역량을 급속히 약화시키는 것이 되어왔다. 이런 관점에서 이후 한국교회는 이번 케이프 타운 로잔대회의 마지막 주제 강연에서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언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과 사역자들이 HIS, 즉 겸손(Humility), 통합(Integrity), 검소함(Simplicity)을 겸비 할 때만 유일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에 전달 될 것이라는 결론에 주목해야 한다. 지도자이건 교인이건 모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겸손과 통합과 섬김의 모습을 변화 되도록 우리 모두가 먼저 주님 앞에 무릎 끓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 사도행전 1:6-8의 말씀처럼 성령께서 한국교회를 도우사 권능으로 회개와 회복을 영을 부으시고, 온 민족과 세계를 향해 복음 선교하기에 합당한 도구(메신저)가 되도록 도우시는 역사를 소망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