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김명혁 목사님이 기독교연합신문에 특별기고한 글입니다. 김명혁 목사님의 동의를 얻어 본지 지면에도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분노와 증오와 대결과 저주의 기운이 팽배한 지금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를 말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십자가에 나타난 기독교의 중심적인 가르침이 바로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라고 믿기 때문에 무거운 부담을 안고서 여전이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길”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말은 개인적인 차원에는 적용할 수 있으나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적용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개인이 아닌 악한 세력으로 낙인 찍힌 나라들인 애굽과 앗수르와 니느웨에 대한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길”을 제시했다(사19:23-25, 욘4:11).

산상수훈에 나타난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삶은 현실적으로 적용하기는 힘든 이상주의적인 환상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로마 군인들을 향해서 그리고 로마 제국을 향해서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를 나타내 보이셨다.

악의 세력에 대항하며 칼을 뽑는 베드로에게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고 말씀했고 부활 후 베드로와 바울에게 나타나서 로마에 가서 악의 세력을 규탄하며 인권 운동을 하는 대신 순교의 피를 흘리며 십자가의 사랑으로 악의 세력을 녹이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로마제국은 십자가의 사랑과 순교자들의 피로 녹아 바뀌었다.

나는 요사이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에 대한 설교를 자주 한다. 금년은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성자인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 6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모든 죄인들과 모든 세리들과 모든 창기들과 모든 병자들과 모든 이방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유일하게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부르시면서 진노하신 대상은 위선적이고 독선적인 종교인들인 바리새인들 뿐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원수를 향해서도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손길을 펴라고 당부하셨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긍휼이 없는 진리보다는 사랑이 없는 분노보다는 모든 핍박자들과 모든 원수들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가슴과 손발이다. 진리와 믿음과 천사의 말도 귀하지만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가 없는 진리와 믿음과 천사의 말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전 12:1,2). 한경직 목사님의 가슴에는 독재자들을 포함한 모든 죄인들에 대한 “긍휼”이 있었다.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의 가슴에는 일제와 공산당을 포함한 모든 죄인들에 대한 “긍휼”이 있었다. 장기려 박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 없는 어떤 이념도 한낱 쓰레기일 뿐이다. 분단된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을 가져오는 길도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다.”

지금 우리들의 가슴과 얼굴과 입에는 재난을 인한 회개의 울음이 아닌 분노와 증오와 저주의 빛이 너무 강하게 나타나 있다. 회개와 용서와 사랑만으로는 이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있다. “만약 누군가가 십자가의 사랑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 말은 법륜 스님이 최근에 나에게 한 말이다.

우리가 십자가에 나타난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부스러기를 우리 몸에 조금이라도 지닌다면 우리들에게 해를 끼치는 소위 원수들에 대한 분노나 증오나 저주는 자리 잡을 수가 없을 것이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이나 모슬렘이나 탈레반에 대한 분노나 증오나 저주도 자리잡을 수가 없을 것이다.

기독교에는 본래부터 원수가 없었고 원수에 대한 분노도 증오도 저주도 없었다. 기독교의 복음은 어리석어 보이고 미련해 보이고 약해 보이는 십자가에 나타난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복음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들이 군사적인 응징이 아닌 대화의 방식으로 그리고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와 자비와 포용”의 방식으로 남북의 화해를 이루게 된다면 세계가 놀라고 존중하게 될 것이다.

십자가를 계속해서 바라볼 때,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을 계속해서 바라볼 때, 우리들도 십자가에 나타난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흔적을 조금씩, 조금씩 지닐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러면 분노와 증오와 대결과 저주에 사로잡혀 있는 세상이 조금씩, 조금씩 녹을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에게 회개와 긍휼을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