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경석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1. <기독교사회책임>이 출범한지 벌써 6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우리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점에서 아쉬움과 회한이 많습니다. 그래서 6주년을 맞으면서 다시 한 번 우리의 할 일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다시 진단해보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기독교사회책임>이 해결방안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한국교회의 문제점부터 찾아보고자 합니다.

2. 지금 한국교회가 쇠락하고 있습니다. 몇년 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지난 십년간 기독교인의 숫자가 14만명이나 감소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천주교는 60%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 통계는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한국교회가 쇠락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 원인을 대형교회 주도의 성장 제일주의와 그로 인한 여러가지 병폐들(Mega-church Syndrome), 즉 교회의 물질만능주의·세속주의·상업주의·실적주의·개교회주의에서 찾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러한 지적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교회의 패러다임 대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이 전환을 이뤄낼 수 있는가 여부에 한국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초대형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크기에 상관없이 예수님처럼 사는 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해야 합니다.

과거 70년대에는 십년동안에 한국교회가 2.7배나 성장했습니다. 그때는 수백 수천의 기독교 젊은이들이 독재에 항거해 감옥가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 감옥가는 용기가 생기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과거 3·1운동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구의 1%밖에 되지 않는 기독교가 만세운동을 주도하는 것을 보면서 예수를 믿어야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왔습니다. 지금도 그때처럼 기독교가 세상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민족의 희망으로 비춰지게 되면 사람들이 다시 자기 발로 교회로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감옥가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회복하려면 예수님처럼 사랑을 실천하여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른 말을 해서 나라가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결단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지 못한 것처럼, 큰 교회는 특히 어렵습니다. 반면 작은 교회들은 너무도 갈급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오히려 결단이 쉽습니다. 그분들이 “귀 있는 자들”입니다. 그분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점을 <나눔과 기쁨> 활동을 하면서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눈으로 작은교회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작은교회는 더 이상 천덕꾸러기나 애물단지가 아닙니다. 도움을 주어야 할 불쌍한 대상도 아닙니다. 작은교회 목사님들이 결단을 하면 예수님처럼 사는 모습을 통해 한국교회에 새 방향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조금도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70년대에도 한국교회에 새 방향을 제시한 사람들은 기독 청년들과 젊은 목회자들이었지, 큰 교회 목사님들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왜 한국교회가 쇠락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주님께서 작은교회 목사님들에게 주신 특별한 사명을 작은교회들이 자각하지 못하고 성장 제일주의라는 병에 걸려 큰 교회를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작은교회 목사님만 예수님처럼 살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작은교회를 미화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많은 작은교회들과 뜻있는 중형교회, 큰 교회들이 다같이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각오로 살아야 합니다. 이 일을 누가 할 수 있나? 그것이 문제입니다.

3. 한국교회가 나라와 민족의 희망이 되려면 사랑실천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나라의 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때문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통일도 이루었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점을 생각할 때 나라의 가장 큰 근심꺼리는 종북(從北)좌파와 같은 반(反)대한민국 세력입니다. 1987년 민주화에 성공한 세력이 바로 이 세력이다보니 한국에서는 아직도 철지난 좌파가 나라를 흔들고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폭침사건을 북한이 일으켰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3-40대가 40%나 될 정도입니다. 이들이 다시 득세하여 과거처럼 나라를 좌지우지하면 나라는 정말로 큰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는 종북세력들, 김정일 추종세력들을 청산하는 일입니다.

이 역할이 한국교회의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기독교는 공산주의와 상극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를 보면 과연 이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됩니다. 복음주의 교회들이 자꾸만 방향을 잃어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번 연평도 포격사건도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들이 방향을 잃어가니까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경고하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한국교회 안에는 종북좌파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 혹은 그런 시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또 무조건적인 화해와 사랑을 외치는 감상주의자도 많습니다. 북도 남도 다 잘못이라는 양비론자(兩非論者)도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연평도 포격 상황 앞에서도 양비론을 펴는 사람들은 북을 편드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입장들이 한데 어우러져 나라의 방향을 오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교회는 지금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가? 첫째, 김정일 정권의 악마성을 가차없이 폭로하고 규탄해야 합니다. 평강을 노래하는 사이비 예언자에 맞서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한 예레미야처럼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큰 재난을 겪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연평도 사태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중국 정부도 심각하게 규탄해야 합니다. 또 젊은이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바로 알려서 바른 시국관을 갖게 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북한을 가차 없이 응징해야 합니다. 그래서 북한이 열배 스무배 고통을 겪고 다시는 도발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지난 천안함 포격 사건 때 한국국민이 일치 단결해서 북을 규탄했더라면 이번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의 응징이 확전(擴戰)으로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군(軍)이 반드시 교전규칙에 따른 대응을 해야 하지만, 그 이상의 군사적 보복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전쟁은 피해야 합니다. 비군사적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열배 스무배의 응징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셋째, 한국교회는 북한 봉수교회와의 교류를 일체 중단해야 합니다. 봉수교회는 가짜입니다. 북한은 기독교인들이 발각되면 주동자는 처형하고 나머지 교인들은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더 이상의 사기행각을 중단해야 합니다. 지난 20년간 속았으면 됐지, 가짜인 것을 알고서도 어떻게 거짓 행동을 계속합니까? 그들과 정말로 교류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그들에게 왜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하면서 기독교인을 정치범수용소로 보내는가하고 따져야 합니다.

넷째, 북한인권법을 즉각 제정하고 북한인권을 위한 운동을 세차게 전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평화는 인권이 실현되는 평화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인권이 없는 평화는 사이비 평화. 가짜 평화일 뿐입니다.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그대로 깨지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실현한 평화가 이런 사이비 평화였습니다. 인권문제 제기는 일체 하지 않고 김정일의 비위만을 맞추어 실현한 평화였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대결구도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단지 인권문제를 제기한 것뿐입니다. 심하게 왜곡돼 온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연하게 지금의 상황을 견뎌내야 합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것은 굴종과 굴욕, 그리고 노예와 같은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섯째,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북한 동포들이 굶어 죽는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식량을 보내야 합니다. 죽어가는 동포를 살리는 일처럼 중요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김정일 정권을 통해 식량을 전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북한 정권을 응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두만강변에서 북한 주민에게 직접 식량을 전달해야 합니다. 이 방안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지금처럼 외부의 식량지원이 다 끊기고 굶어죽는 동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두만강변에서의 직접 지원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동안 한국교회 안에서 종북좌파적 시각과 감상적인 화해론, 양비론적 시각 등이 결합하여 기독교의 바른 방향을 오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다 북 돕기를 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감상적인 화해론의 손을 들어주기까지 했습니다. 이 바람에 한국교회의 방향이 크게 오도되는 경향을 보여 왔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한국교회는 북한 체제의 속성을 정확하게 들여다 보고 정론(正論)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론에 입각한 기독교 운동이 나와야 합니다. 이러한 운동이 크게 일어나야 나라가 바른 방향으로 갈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점은 한국교회 갱신문제입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개혁되고 있는데 교회 안에서는 무엇 하나 개혁되는 것이 없습니다. 대표적인 문제들이 수많은 군소교단들, 자격 없는 목사안수, 신학교에서의 신학생 과대배출, 금권선거, 목회자의 수급불균형, 큰 교회와 작은교회간의 갈등과 같은 문제들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개혁되어 사라진지 오래인 문제들이 교회 안에서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가장 낙후된 사회가 교회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처럼 살아서 세상사람들의 존경을 회복하고, 교회가 나라의 방향을 바르게 이끌어가려고 해도 지금과 같은 교회의 구조와 현실 속에서는 교회가 결코 제대로 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산적한 교회의 개혁과제들이 개혁되지 못하는 이유는 한국교회 어디에도 개혁주도 기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 안에서 사회개혁은 청와대가 주도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는 한국교회 대표기구인 한기총이 개혁의 사령탑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령탑은 커녕 한기총조차도 개혁되고 있지 않습니다. 한기총은 교회 지도자들이 목회를 마칠 때쯤 1년에 한 번씩 거쳐가는 명예직에 불과합니다.

최근의 한기총 모습을 보면 한기총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광선 한기총 대표회장께서 한기총의 금권선거 하나라도 고쳐보려고 했지만 그것조차 끝내 여의치 않았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제아무리 훌륭한 대표회장이 선출되어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한기총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한기총을 청산하고 다른 기구를 만들면 한국교회의 대표기구가 서너 개가 되는 결과만 초래할 뿐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한기총 개혁이 될 것인가? 한편으로 한기총 내부에서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야 하지만 한기총 바깥에서도 개혁을 요구하는 교회갱신 운동이 나와야 합니다. 제도권 밖의 교회갱신 운동과 제도권 내의 개혁노력이 한데 어우러져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 보면 바로 지나간 1970년대가 그랬습니다. 당시에는 기독교 사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기독학생 운동, 기독청년 운동, 산업선교, 인권목회자 운동, 기독자교수 운동과 같은 운동이 예언자적인 사명을 감동적으로 실천해 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운동들은 NCC를 중심으로 한 제도교회 기구들의 뒷받침이 없었더라면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기독교 운동과 제도 교회기구의 상호 협력관계가 교회를 끊임없이 갱신시키고 기독교 운동을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기독교가 한국교회의 희망이 될 수 있었고 또 그랬기 때문에 교회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당시 기독교운동과 제도교회의 매개역할을 훌륭하게 하신 김관석 NCC 총무님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갱신운동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몇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는 교회를 비판하더라도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토대 위해서의 비판이어야 합니다. 둘째로 독선에 빠져 있으면 안 됩니다. 독선이야말로 가장 비판받아야 하는 요소입니다. 그리고 개혁은 우리가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인식을 명확하게 가져야 합니다. 세번째는 시대정신에 바르게 부합해야 합니다. 좌파적 관점에 서서 개혁을 말한다면 아무리 옳은 말이더라도 교회의 호응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이런 세력이 나올 수 있는가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력이 등장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의 바른 개혁을 염원하는 새로운 기독교 세력의 등장을 대망하고 있습니다. 뜻있는 평신도, 뜻있는 목회자들이 결속을 해서 이러한 운동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의 쇠락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기독교사회책임은 이러한 사명을 수행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사회책임도 이러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이 나오게 되면 우리도 그 대열에 함께 설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새롭게 운영위원으로 임명되는 40대 486 목회자, 평신도 회원들께 거는 기대가 큽니다. 이분들이 중심이 되어 뜻있는 분들이 기독교사회책임으로 많이 들어 오셔서 기독교사회책임을 새롭게 이끌어가는 주역이 되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