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Q) 한국교회 안에 방언에 대한 관심도 높지만 논란 또한 만만치 않은 것 같은데요. 방언에 대해서 한국교회는 그동안 어떻게 평가해 왔나요? 그리고 방언에 대한 찬반양론이 많은 가운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신학적으로 정리해야 할까요?

A) 신앙생활하면서 방언에 대한 질문이나 궁금한 점이 많으셨을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는 방언 말하기를 사모하고 있는 분도 계실 것이고, 또 방언을 하고는 있지만 과연 무슨 유익이 있는 것인지를 확신하지 못하고 계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우선 교회사적으로 방언 문제에 대한 이해를 하신 후, 이에 대한 신학적인 입장을 정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의 역사 속에서 방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시작된 것은 1930년대 전후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방언에 대한 체험이 전혀 없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특히 1900년도 초부터 일어난 대부흥운동의 기간 중에 은혜 받은 성도들 가운데 각양각색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는데, 유독 방언만 나타나지 않았다고 주장할만한 근거가 없습니다. 다만 당시의 기록 자료들을 볼 때 방언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이유는, 대부분 장로교와 감리교 계통의 선교사들이었던 이들은 방언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교단 교리적인 이유로 인해 방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언급한 대로 우리 나라에서는 1930년대에 방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특히 1930년대 전후의 ‘방언파’라고 지탄을 받던 이들에게서 가장 먼저 나타났습니다. 방언파란 1928년부터 한국에 와서 활동한 미국과 영국의 오순절교단 선교사들의 방언 강조로 인해 붙여진 말입니다. 이들은 방언을 성령세례의 가장 뚜렷한 증거로서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활동은 안타깝게도 1930년대의 이단들인 황국주, 유명화, 백남주 등이 거짓 계시와 방언, 예언을 동반하는 혼합주의적 영성운동을 확산하던 것과 연관되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평양 장로회신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하던 중국인 신학자 가옥명(賈玉銘)이 쓴 「성령론」이라는 책에서도 방언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방언 자체가 성령세례의 표적이라고 보는 오순절적 견해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령세례 받은 증거로서 방언보다 더 명확한 증거들을 강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賈玉銘, 「성령론」, 103-4). 문맥이나 어법상으로 볼 때 방언을 절대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강조점은 성령의 열매와 함께 ‘봉사의 능력’(power for service)에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노선은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이후 한국교계에는 방언 문제로 인해 크게 물의가 일어나고 신학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주로 장로교 계통의 신학교 교수들 사이의 신학 논쟁으로 확산되어갔습니다. 그래서 중생 이후의 성령세례 경험을 강조하는 신학자들은 오순절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장로교 신학자들은 예언, 방언, 신유와 같은 특별 은사는 사도시대까지로 중지되었기 때문에 현대 교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성결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결교회는 전통적으로 성령세례 받은 표적으로서의 방언에 대해 명백히 부정했으며, 성령세례의 결과를 ‘정화와 능력’(purity and power)으로 보았습니다. 그러자 오순절교단의 방언 운동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 기존 교단들로부터 강도 높은 비판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말부터는 빈야드운동을 중심으로 한 ‘제 3의 물결’의 영성이 한국 교계와 신학계의 큰 논제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제 3의 물결’에서는 방언이 필수적인 성령세례의 표적이 아니라, 어떤 영적 사역이나 효과적인 기도를 위해서 신자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은사라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현재 오순절파 교회의 신자와 목회자들 사이에 점차 보편화되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편, 방언에 대해서 부정적인 교리적 입장을 취해 온 장로교나 감리교나 성결교 내에서는 일반적으로 방언에 대해 크게 수용하고 있는 목회적 현실입니다. 이 같은 목회적 현상은 그 동안 각 교단 교리적 노선에서 취해 온 입장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에는 오순절교단의 젊은 목회자들 사이에 방언을 성령세례 받은 첫 표적이라고 보기보다는 성령의 여러 은사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견해가 점차 일반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순절교회들이 1980년대 이후 ‘제 3의 물결’로 인해 방언을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로 보는 영향을 많이 받은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오순절교회인 여의도순복음중앙교회가 지속적으로 타 교단 신학자들을 초청해 신학적 교류를 많이 해 온 까닭에, 방언에 대한 해석이 좀 더 일반화되어 가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복음적 신앙의 핵심은 성령의 역사의 결정적인 요소가 방언, 신유, 입신과 같은 은사 체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적 삶의 변화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면적 성결이라는 핵심은 기독교 이천 년 역사상 깊은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이며, 적어도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의 복음적 성령론의 변함없는 기반이기도 한 것입니다. 은사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은사주의나 무분별한 은사 사용은 언제나 신학적 비판의 대상이 되어온 것일 뿐 아니라 성령론의 핵심 사항이라기보다는 부차적 사항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모든 복음주의 교회들은 하나님 말씀의 정신 안에서 분별력을 날카롭게 하여 은사 사용의 잣대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