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_1937년 중단한 건축계획안 입면도(건축가: 보리스W.M.Vories)

02_1948년에 준공한 종탑 예배당 외관
03_종탑 1957년에 리모델링한 모습
04_종탑 예배당 내부, 리모델링 후

글 윤호기 새문안교회 집사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초, 당시 차재명 담임목사와 교인들은 많은 재정적 어려움 속에 교회창립 50주년인 1937년 준공을 목표로 예배당 신축을 추진하였었다. 1936년에는 건축공사비 중 40%를 원한경 장로가 섭외하는 가운데 기독교계 원로 윤치호의 거액헌금, 교인들의 성미와 헌금의 답지, 일본 소재 건축설계사무소에 계획설계 의뢰, 이듬해 건축가 보리스의 내방 등으로 이어졌으나 끝내 실현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9년 후, 해방되고 8개월 만인 1946년 4월.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새문안교회 당회는 중요한 일을 결의했다. “…교우 일동이 다년간 희망해 온 바 당회가 증축하기로 가결하고…” 김영주 담임목사는 이 숙원사업 해결에 적극 나섰다. 1주일간의 부흥회에도 일부 교인들이 재정부족을 이유로 반대하자 “이미 일을 시작하신 이가 하나님이시매 일을 끝내어 주실 이도 하나님이시다”고 설득하고 교인들과 새벽제단을 쌓으며 독려하였다.

더구나 열혈 청년 홍미현이 무명지를 끊어 ‘성전건축이 최우선 사명’임을 호소하자 분위기는 무르익어 어떤 교우는 집을 저당 잡히고 홍용원 장로는 거액을 흔쾌히 헌금하였다. 자금 부족으로 공사를 한때 중단하기도 했으나 1947년 9월부터 특별건축위원으로 합세한 김규식, 서병호, 원한경의 물심양면 지원에 힘입어 재개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1948년 봄에 준공하고 4월에는 제34회 장로교 총회를 초치하였으며 1949년 7월에 감격적인 헌당식을 거행하였다. 붉은벽돌 영식쌓기 공법으로 세운 절충식 고딕양식의 조적조 건물로서, 설계한 건축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가로 18m, 세로 25.5m(1: √2 비례)이고 좌우측에 각각 계단탑을 만들어 본당 출입을 하였으며 오른쪽 계단탑에 종을 설치하고 왼쪽 계단탑 상부에는 첨탑을 세웠다. 전문가의 자료조사와 당시 교인들의 증언을 종합할 때 신축했음에 틀림이 없는 이 예배당은 1957년 창립 70주년을 기념하여 옥외에서 본당으로 직접 진출입하는 계단을 추가하는 등 건축가 김중업(근대건축 3대 거장인 르 꼬르뷔제의 제자)의 설계로 리모델링 하였다. 용도/1층-사무실 및 유치원, 2층-예배실, 건축면적/약460㎡, 연면적/약985㎡(약300평), 예배실 수용인원/약750명(이상 필자추산)

[새문안교회 70년사 및 일부 사료로 재구성]

※<새문안>지는 새 성전 건축의 순조로운 기획과 진행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세계의 교회> 연재를 하고 있다. 세계의 교회 건축소개에 앞서 새문안교회 예배당의 변천 모습 사진자료와 설명을 게재한다. 필자는 전문 건축가들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