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영옥 박사(영남신대 외래교수).
큰 바위 하나가 사막의 모래밭에 놓여있다. 한여름 인데다 정오의 태양이 사정없이 내리쬐고 있어서 암석의 반짝거리는 표면은 마치 불에 달구어 놓은 듯하다. 광물질들이 제각각 벌겋게 달아올라있으니 바람마저도 그 표면에서 타버릴 것 같다.

한 사람이 그 바위에 서서 장대처럼 생긴 지팡이로 이곳 저곳을 두드려 본다. 그의 태도는 매우 조심스러워 보이지만 손끝에서는 확신에 찬 의도가 묻어났다. 지팡이 끝에는 끌 같이 생긴 작은 쇠붙이가 달려 있다. 끌은 너무 작아서 연장이라고 할 것도 아니다. 고작 해야 그것은 나무에 구멍을 파거나 다듬는데 쓰이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바위 위에서 여러차례 왔다 갔다 하던 그 사람은 드디어 한 곳을 찾아 그 지점에다 지팡이를 세우고 몇 번 두드리는 시늉을 한다. “바로 여기구나!” 그의 말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그는 끌로 힘차게 바위를 찍었다. 그 동작은 마치 끌의 날을 세우고 나무로 머리를 만들어 망치로 때려 구멍을 내는 것과 똑같았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겁니까.“ 나는 소리를 질렀다.

“샘을 찾았소. 물이 솟아오르는 자리를 찾고 있었단 말이요.”

“그게 말이나 됩니까? 이 사막의 암석 밑에 무슨 물줄기가 있을 것이며 또 설사 지질학적으로 있다 한들 그 지팡이를 가지고 어떻게 물이 솟아나게 한단 말이요.” 겁없이 소리를 지르면서 나는 그 사람이 서있는 바위 위로 올라갔다.

그 순간 물줄기 한 개가 힘차게 바위를 뚫고 솟아올랐다. 이어 물줄기를 타고 무수한 물방울들이 햇볕에 굴절되고 또 반사되어 둥글게 활모양으로 휘면서 길게 펼쳐나갔다. 태양 반대쪽에서 영롱한 색깔들이 눈부신 빛을 만들면서 일곱 줄로 퍼져갔다. 무지개였다.

나는 눈이 부시어 더 이상 고개를 들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머리를 숙여 물이 솟는 자리로 눈을 돌리는데 바위 위에 큰 글자 세 개, 나의 이름 석 자가 쓰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은 아직도 끌을 바위에 고정시켜 둔 채 내 얼굴을 응시했는데 참으로 놀랍게도 그의 얼굴이 전혀 낯설지 않다. 오히려 형언할 수 없는 친밀감이 느껴졌다. 서로 안에서 오랫동안 함께 지니고 살아온 것 같은 친밀함이었다.

꿈은 때때로 현실보다 더 생생한 기억으로 찾아온다. 새로운 느낌과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와서 신선한 충격을 안겨 줄 때가 많다. 나 역시 이 일로 인해 내 생명 안에 마르지 않는 샘의 근원이 있으며, 그것은 또한 마르지 않고 솟아나올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늘 새롭게 깨닫는다.

우리가 인정하듯이 모든 생명 안에는 생명수의 근원이 존재한다. 삶을 산다는 것은 각자의 내면에 있는 생명의 물줄기를 뿜어 올리는 일이다. 그 물줄기를 타고 수많은 물방울들이 빛에 굴절되고 되비치면서 만들어내는 다채롭고 아름다운 빛깔들이 우리의 일상이다. 그래서 시인은 삶을 예술이라 하였다. 삶을 산다는 것은 예술가가 작품을 창작하는 것과 같음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은 청중과 일대일로 만나면서 그 생생한 순간의 느낌을 자신의 스타일로 수용하여 균형감각을 살려서 탄탄한 구조의 음악을 만들어 낸다. 연주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작곡을 하든 간에 그 순간이야말로 음악가로서 최대의 활력과 도전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들 주위에 있는 우리는 인간이 그토록 아름다운 음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를 알게 된다.

예술가가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작품을 만들듯 우리는 사람과 사물들을 진정성을 가지고 만나면서 일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삶의 현실이 불모의 사막 같을지라도 큰 바위덩이가 앞길을 가로막아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도록 압박해올지라도 한순간 한순간을 만족스럽게 연주하듯 삶을 대해야 한다. 그러면서 얻어지는 당당함과 기쁨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지 않는가. 우리 속에는 물이 솟아오르는 자리가 있음이다.

나는 지금도 그 분의 마음을 지니고 산다. 내 마음 속에 물이 흐르는 근원이 있음을 일깨워 준 일과 사랑으로 내게 와서 그 물줄기를 솟아오르게 해준 일, 그리고 수많은 물방울들이 빛에 닿아 만들어내는 무지개를 볼 수 있도록 해준 그 분을 잊지 않고 있다. 내 마음 속에 항상 그 분을 지니고 다니기 때문에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그 분을 내려놓은 적이 없다. 어떤 때는 내가 생각하고 꿈꾸고 소망 품는 것이 모두 다 그 분이 하는 일로 믿어진다.

참으로 아이로니컬한 일이지만 나는 그 분 안에서 비로소 가장 나다울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 분 안에서만이 내 영혼이 희망하고 내 마음이 품은 소망보다 훨씬 더 깊게 또 넓게 자랄 수 있기에 나는 여전히 이 힘든 그리움을 사랑한다.

[송영옥박사 기독문학세계 지난 연재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