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욱 목사
언젠가부터 한국 목사님들 사이에 ‘레마’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내용인 즉 말씀을 읽고 깨달아야 하는데, 그 깨달은 말씀을 ‘레마’라고 부르는 것이다. 어느 순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깨닫는 말씀이 ‘레마’이니 ‘레마’를 받아야 된다고 강조하는 분들이 있다. 이 분들은 말씀이 깨달아져서 감동이 되고 마음이 변화되고 생활이 변화되는 것은 레마로 깨달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지어 레마로 깨달아지지 않으면 성경은 성경이 아닌 일반 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수많은 목사님들이 이 말을 듣고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공공연히 말씀을 읽을 때 레마로 깨달으라는 말을 한다.

필자는 ‘레마를 받으라’, ‘레마를 깨달으라’는 말에 강하게 반대한다. 왜냐하면 깨달아진 말씀이 레마의 말씀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근거가 전혀 없는, 터무니 없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레마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유감이다. 왜 유감인지 그 근거를 밝히려고 한다.

첫째는, 레마라는 말이 헬라어 원어로 볼 때 전혀 근거가 없다. 헬라어에서 말씀은 ‘로고스’이다. 한편 레마는 일반적으로 명령, 선포, 말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로고스와 구분 없이 사용된다. 헬라어에서 로고스는 영적 의미가 부여된 데 반하여, 레마는 어떤 영적 의미도 부여되지 않는다. 레마는 단순히 사람이 말하는 말, 소리가 담긴 말 그리고 사람의 귀에 들려지는 말일 뿐이다. 교회 역사와 신학 역사에서 레마에 대하여 신학적 의미를 부여한 적이 없다. 만약 레마가 영적 의미를 갖고 있었는데, 수많은 신학자들이 그 의미를 놓치고 지나갔다면 신학자들의 연구가 눈에 보이는 것조차도 발견하지 못하는 매우 부족한 연구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레마는 로고스처럼 말씀이라고 해석된다고 하여 어떤 영적 의미를 갖고 있지는 않다.

둘째는, 칼 바르트의 주장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칼 바르트는 말씀의 신학을 펼치며 말씀이 사람에게 깨달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깨달아지지 않는다면 말씀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친다. 바르트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말씀으로 보지 않고, 성경의 어느 부분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사로잡을 때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았다. 위의 레마를 주장하는 사람은 칼 바르트의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이상한 것은 레마를 말하는 이들은 대부분 보수적인 신학 사고를 가진 분들이다. 그들은 칼 바르트를 자유주의자라 하여 싫어한다. 그럼에도 보수적 성향의 사람이 자유주의자의 의견을 사용하고 있으니 스스로 모순적 행동을 하고 있다. 이는 보수적 신학을 한다고 자처할 뿐이지 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자유주의적 표현이 어떤 것인지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이다.

셋째는, 레마를 주장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주장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내가 깨닫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하였다. 내가 깨닫지 못했다고 해서 성경을 일반 책과 똑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내게 맞추는 것이며, 자신이 성경을 성경되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매우 교만한 주장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주장을 인본주의적 주장이라고 한다. 그런데 보수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런 인본주의적 함정에 빠져 들고 말았다. 내게 깨달아지지 않았어도 성경은 성경이다. 성경을 성경 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다. 깨달아지지 않았다면 깨닫지 못한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며, 성경의 권위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이제 레마 유감에 대한 결론을 내리려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깨달아지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수용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은 레마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성령의 감동과 조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씀을 깨닫는 것은 우리의 지혜가 탁월하기 때문에 된 것이라고 말하기보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해야 한다. 성령은 우리 안에 말씀으로 존재하신다. 그 말씀은 로고스이다. 칼빈은 ‘성령 충만’은 곧 ‘그리스도 충만’이라고 한다. 즉 성령이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는 것이고, 말씀이 내 안에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깨달아진다면 그것은 내 안에 살아계신 로고스가 내 안에서 일하는 것이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순간 성령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는 것일 뿐 레마의 말씀이 생생히 나타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말씀을 레마로 받는 행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말씀은 로고스이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성령께서 우리를 조명하신다. 성령은 로고스를 내 안에서 더 확실하게 로고스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면 그 말씀은 로고스이어야 하며 결코 레마일 수는 없다.

선종욱 목사(복음적설교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