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제가 2008년 1월 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후 주일 또는 주중에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방문하고 있는데 매년 두 번씩 방문하는 교회는 강변교회와 그레이스선교교회뿐입니다. 오늘 그레이스선교교회에 여섯 번째로 와서 “예수님의 선교 행적”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두 주 후에 그레이스선교교회가 중국으로 선교여행을 떠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선교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것은 감사한 일이고 선교 여행을 많이 가게 된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선교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지 못하고 선교를 잘못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늘 아침 선교가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 선교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조동진 목사님의 인터뷰 기사가 지난 5월 3일 국민일보 미션라이프에 실렸습니다. 조동진 목사님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선교를 진단하면서 한국교회 선교의 가장 큰 잘못은 한국인끼리 모여 한국식 교회를 세우려고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현지인이 원하는 복음을 전하지 않고 우리가 전하고 싶은 복음만 전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 선교는 발전 단계에 있지 않고 혼란기에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선 사도적인 유전자를 다시 찾아야 하며 선교의 정의와 목표를 하나님 나라에 두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2만 명이 넘는 선교사들이 파송돼 있지만 이들 중에 ‘킹덤 미션’에 입각해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숲에서 바늘 찾기처럼 힘들다고 지적했습니다. 선교는 자기만족이나 파송 교회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킹덤 미션’이란 ‘사도적 유전자’를 가진 선교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 순종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교세 확장이나 교파 선교나 선교 프로젝트가 아닌 예수님 그 자체를 증거하는 일이며 오실 예수님을 알리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선교는 힘의 대결이 아니고 그들의 믿음과 문화를 존중하면서 대화하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귀 담아 들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예수님의 선교 행적”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선교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선교를 바로 하기 위해서는 선교의 모델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배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선교의 모델이신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주는 말씀이 요1:14과 막10:45이라고 생각합니다. 요1:14과 막10:45에 나타난 “예수님의 선교 행적”을 바라보면서 선교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로 선교는 되는 것입니다. 선교는 becoming 입니다.

선교의 모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본래 말씀이셨고 본래 하나님이셨는데 육신을 가진 사람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1:14). “The Word became flesh.” 선교는 되는 것입니다. 선교는 becoming 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육’ 즉 ‘Incarnation’이라고 합니다. 본래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살과 피를 가진 사람이 되신 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고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물론 헬라인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죽는 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미련한 일이고 약한 일이고 멸시를 받을만한 일이라고 비난을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사람이 지렁이나 구더기 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선교는 다른 종류의 존재가 되는 일입니다. 선교는 백인이 흑인이 되는 일이고 미국 사람이 한국 사람이 되는 일이고 한국 사람이 태국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성 프랜시스는 본래 앗씨시의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일부러 가난한 거지가 되었고 일부러 병든 환자가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한센병자가 되기를 그렇게도 소원했습니다. 선교는 나 자신을 포기하고 나 자신과 다른 종류의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그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선교의 모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선교사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삶에 지친 그래서 목이 마른 수가성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그 여인과 비슷한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수가성 여인처럼 행로에 피곤하여 주저 앉으셨다고 했고 수가성 여인처럼 목이 말랐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요4:6,7). 너무너무 황송한 일이지만 그것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고 죄인들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예수님께서 취하신 선교적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선교는 되는 것입니다. 선교는 becoming 입니다. 나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선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선교는 dwelling together 입니다.

선교의 모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본래 하늘에서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천군 천사들과 함께 영광 중에서 사셨지만 하늘 영광을 떠나 세상에 오셔서 세상의 사람들과 함께 가난과 고난의 삶을 사셨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선교는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선교는 dwelling together 입니다.

선교는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선교는 ‘성육’의 사건을 본 받아서 리빙스톤이나 슈바이쳐처럼 백인이 아프리카의 흑인들과 함께 사는 것이고 언더우드 선교사 4대 손들처럼 미국 사람이 한국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고 신홍식 선교사처럼 한국 사람이 태국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은 한센병자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선교는 나 자신의 평안한 삶을 포기하고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그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선교의 모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선교사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시자마자 어머니 마리아 아버지 요셉과 함께 사셨고 나중에는 제자들과 함께 사셨고 그리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9:10-13). 예수님은 세리와 창기와 병자들과 죄인들을 찾아가서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고 대화를 하시면서 그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너무너무 황송한 일이지만 그것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고 죄인들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예수님께서 취하신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선교는 함께 사는 것입니다. 선교는 dwelling together 입니다. 나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독일의 저명한 선교신학자인 준더마이어(Sundermeier) 박사는 올바른 선교는 ‘콘비벤츠’(Konvivenz) 즉 ‘함께 사는 삶’이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콘비벤츠는 브라질의 도시나 농촌에 있는 소집단들이 이웃 돕기 운동에서 유래한 것으로, ‘서로 돕고, 서로 배우며, 함께 축하’하는 공동체적 삶의 형태를 갖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준더마이어 박사는 서로 돕고, 배우고 함께 축제를 경험하는 콘비벤츠의 원리를 무엇보다 복음서에 기록한 예수님의 삶에서 입증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사람들 가운데 살았으며 그들과 함께 동고 동락 하였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하여’ 살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았다. 특히 예수님은 사람들과 자주 함께 식사를 나누었는데 이러한 식탁 공동체야 말로 예수님의 선교에 중심이 된다. 왜냐하면 함께 하는 식탁은 ‘공동체’와 ‘잔치’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교적 교회는 타자와 함께 사는 교회이다.” 선교는 함께 사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살면서 나타내 보이신 모습은 죄인들을 멸시하고 정죄하는 대신 모든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면서 용서와 사랑으로 섬기신 종의 모습이었습니다. 섬김의 삶이 예수님의 선교적 삶의 특징이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22:27). 예수님은 문둥병자의 몸을 어루만져주셨고 열병환자의 손을 어루만져주셨고 소경의 눈을 어루만져주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자기는 건강한 자나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병자와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시면서 모든 병자들과 모든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면서 용서와 사랑으로 섬기셨습니다. 그리고 원수에게까지 긍휼과 용서와 사랑을 베풀라고 말씀했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선교는 함께 사는 것이고 모두를 긍휼과 용서와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 선교적인 삶을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이 사셨습니다.

셋째로 선교는 함께 놀아주는 것입니다. 선교는 playing together 입니다.

이것은 제가 만들어낸 말이지만 틀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설교만 하고 강의만 하고 가르치기만 하고 함께 놀아주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선교는 설교만 하고 강의만 하고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놀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셨고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도 하시고 대화도 하시면서 함께 놀아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005년 11월 12일자 기독교개혁신보에 실렸던 글을 여기 그대로 소개합니다. “나는 선교지를 여행하면서 현지인들과 선교사들과 자녀들에게 위로와 격려와 사랑과 힘과 기쁨이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내가 지난 10여 년 동안에 발견한 한 가지 사실은 설교나 강의가 반드시 저들에게 위로와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때로는 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놀아주는 것이 위로와 기쁨이 된다는 사실이다. 내가 2년 전 브라질을 방문한 일이 있다. 이틀 동안 밤마다 강성철 선교사와 총신 제자 한 사람과 젊은 선교사 한 사람과 볼링을 친 일이 있다. 아주 재미가 있었다. 물론 내가 모두 이겼다. 그런데 내가 생각지도 못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강성철 선교사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이다. 그 젊은 선교사가 많은 스트레스와 좌절을 경험하고 있었는데 스승인 나하고 이틀 동안 볼링을 치고 나서 위로와 격려와 힘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용기를 가지고 선교에 임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말을 들었다.”

“내가 5년 전에 불라디보스톡에 간 일이 있었다. 어느 날 20여명 선교사 자녀들과 서너 시간 동안 열심히 논 일이 있었다. 게임도 하고 선물도 나누어주고 농구도 같이 하고 그네도 같이 타고 씨이소도 같이 타며 신나게 놀았다. 어린이들이 나를 너무 좋아했고 모두 너무 기뻐했다. 유치부 어린 아이 하나는 내가 떠날 때 예쁜 상자를 선물로 주었다. 그네를 함께 탄 아이였다. 그 상자 속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정예찬 2000.6.10’ 하루 오후에는 선교사 사모들 대 여섯 명을 데리고 바다 가에 가서 놀다가 왔다. 맛있는 바다 가제도 사 주었다. 너무너무 좋아했다. 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가 스승이 되는 내가 그들을 데리고 바닷가에 가서 함께 놀아준 것이 그들에게 많은 위로와 기쁨이 되었다.” “나는 두 주전에 한 주간 동안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왔다. 러시아 목회자 50여명과 한인 선교사 20여명이 한데 모여 “연해주 목회자 수련회”를 가졌다. 내가 저들에게 강의도 하고 설교도 했지만 내가 주력한 것은 저들과 함께 교제하고 음식을 먹고 놀아준 것이었다. 도착하던 날 저녁 46명의 한인 선교사 가족들과 한국식당에서 음식을 나누었다 고등학생이 된 은덕이라는 여학생이 나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5년 전 내가 블라디를 방문 했을 때 어린 아이들 20여명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그 때 은덕이는 초등 학생이었다. 은덕이는 그 사진을 고이 간직하였다가 다시 자기들을 찾아온 나에게 보여준 것이었다. 나는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다.”

선교는 함께 놀아주는 것입니다. 함께 놀아줄 때 그들의 마음이 열립니다. 그들의 마음에 감동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그들의 마음에 사랑이 들어가고 복음이 들어가고 예수님이 들어가십니다. 선교는 함께 놀아주는 것입니다.

넷째로 선교는 모험심과 담력을 가지고 달려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도 제가 만들어낸 말이지만 틀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는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계산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믿음도 그렇지만 선교는 계산하지 않고 근심 걱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모험심과 담력을 가지고 달려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든지, 홍해를 건너가든지,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돌든지, 풀무 불에 들어가든지, 사자 굴에 들어가든지, 계산하지 않고 근심 걱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모험심과 담력을 가지고 그저 달려가는 것이 믿음이고 선교라고 생각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도 두려워하지 않고 뚫고 나가는 것이 믿음이고 선교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1-3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15:57). 믿음은 “모험심과 담력”이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선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선교는 “모험심과 담력”이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이런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사람이 되시고 사람들과 함께 사시다가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죽으신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과 담력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보았습니다. 그것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선교사 예수님의 대단한 “모험심과 담력”의 모습이라고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모험심과 담력”을 은혜와 선물로 주셨습니다.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심과 담력”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무엇이든지 새로운 것을 해 보고 싶은 “호기심”을 선물로 주셨고,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무엇이든지 꼭 하고야 마는 “모험심과 담력”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색갈이고 선교의 색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한 평생 모험적인 일들을 즐기면서 살아오고 있습니다. 저는 한평생 하늘을 날아가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제가 모험심과 담력을 가지고 달려간 일들 중에서 다섯 가지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1) 제가 주일 성수와 신앙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11살 때 혼자서 38선을 넘은 일은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달려간 믿음과 선교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2) 제가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해서 단 돈 100불을 가지고 배를 타고 미국에 가서 12년 동안 공부한 일도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달려간 믿음과 선교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3) 제가 귀국 후 정부의 주일성수 방해정책을 비판하다가 남산 중앙정보부에 붙잡혀 가서 심문을 받으면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책망과 충고와 권면의 말을 한 일도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달려간 믿음과 선교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4) 제가 평양을 방문해서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소신껏 말하고 소신껏 행동한 일도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달려간 믿음과 선교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5) 제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과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꽉 막힌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캄캄한 밤에 혼자서 넘어간 일도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달려간 믿음과 선교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프간 국경을 혼자서 넘어간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하겠습니다. 저는 2005년 12월 15일 밤 1,400만원 상당의 선물 보따리를 가지고 강변교회가 아프간에 세워준 학교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타직 국경과 아프간 국경을 넘어 아프간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아프간 방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타직 국경과 아프간 국경이 막혔습니다. 우리 일행 7명이 비자도 없이 타직 국경에 도착했을 때 국경 통과가 폐쇄되었습니다. 국경 수비 군인들이 우리들보고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돌아갈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하도 강하게 돌아갈 수 없다고 말을 하니까 멀리서 저를 바라보고 있던 장교 한 사람이 저를 오라고 했습니다. 제가 아프간에 세운 학교 준공식에 참여하여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가지고 온 학용품을 전달하여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타직 국경과 아프간 국경을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 장교는 저를 사무실로 데리고 가더니 타직 국경을 넘어 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었습니다. 결국 저와 저의 일행 7명은 모두 타직 국경을 넘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아프간 국경을 넘어서 아프간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늦은 밤이었고 비자도 없었고 아프간 국경도 폐쇄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혼자서 아프간 국경을 넘어 가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캄캄한 밤에 국경 통과의 허락도 받지 않고 3.5km나 되는 아프간의 국경을 혼자서 넘어간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을 모두 타직 땅에 남겨두고 저는 조그만 가방 하나를 들고 혼자서 아프간을 향해 3.5km나 되는 캄캄한 밤 국경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3.8선도 넘었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또 걸어서 결국 아프간 땅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아프간 경비 군인에게 붙잡혔습니다. 저를 국경 수비대장인 들라워 장군에게로 데리고 갔습니다. 저는 들라워 장군과 20여분 동안 그의 사무실에서 대화를 했습니다. 그는 내 말을 들은 다음 “대우 넘버 원, 현대 넘버 원, 코리아 넘버 원, 노 프로블렘” 이라고 말하면서 국경 통과를 허락해주었습니다. 타직에 남아 있던 우리 일행도 모두 아프간 국경을 넘을 수가 있었습니다. “모험심과 담력”이 다시 통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그 후 달리고 또 달려서 학교 준공식이 거행되는 아프간의 무라취드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학교로 들어가는 길목에 어린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서서 우리 일행을 뜨겁게 환영했습니다. 이윽고 학교 주공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그 지역의 모슬렘 지도자들이 참석했고 그 지역의 군인들과 경찰 지도자들이 참석했고 400여명의 어린 학생들이 참석했고 그 지역의 교육부 차관이 참석했습니다. 저는 아프간에 두 번 방문했지만 설교나 강의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공식적인 기도를 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학교 준공식 행사를 하는 중에 아프간 어린이들이 나와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분명한 한국말 발음으로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저는 너무너무 놀랐습니다. 보통 때 그런 노래를 하든지 그런 말을 하면 테러를 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테러를 하지도 않았고 아무도 반대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선교는 반드시 설교도 아니고 강의도 아니고 모험심과 담력을 가지고 달려가서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펴는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다섯째로 선교는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는 것입니다.

선교의 모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제물 되는 삶을 사시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마17:22,23).

저는 2005년 12월 31일 강변교회에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2006년도 새해의 기도 제목을 다음과 같이 정한 일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과 눈물을 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 되는 죽음을 죽게 하시옵소서!” 저는 금년 2010년 1월 1일 금년 새해의 소원과 기도 제목을 다음과 같이 정한 일이 있습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눈물의 제사를 드리게 하시옵소서!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제사를 드리게 하시옵소서! 온유와 겸손과 착함의 제사를 드리게 하시옵소서! 수고와 고난과 희생의 제사를 드리게 하시옵소서!"

제물 되는 삶과 제물 되는 죽음이 없이 선교가 이루어진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1866년 9월 5일 대동강 변에서 27살의 젊은 나이에 순교의 제물이 된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의 제물 되는 죽음이 없었다면 1885년 조선땅에 선교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제물 되는 죽음이 16년 후인 1882년에는 조미 수호 통상조약이 체결되게 했고, 그 2년 후인 1884년에는 알렌 의사가 조선에 들어오게 했고, 그 다음 해인 1885년에는 아펜셀라 선교사 부부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조선 땅에 들어오게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한 사람의 제물 되는 삶과 제물 되는 죽음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흐름에 얼마나 길고도 깊은 고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놀라움과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헨리 아펜셀라와 호레이스 언더우드는 조선에 와서 ‘희생적인 삶’ 즉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교회와 조선의 교육과 조선의 의료 사역의 기초가 놓여졌습니다. 저는 언더우드 가의 3대가 조선 구원의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여 조선 사람들에게 끝이 없는 사랑을 쏟아 부으면서 희생적인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희생적인 제물 되는 죽음을 죽어 지금 양화진에 모두 함께 묻혀 있다는 사실 앞에서 지극한 경외감과 존경과 사랑을 느끼면서 한 없이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교는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는 것입니다. 제물 되는 삶과 제물 되는 죽음이 구원의 역사와 선교의 역사를 만듭니다. 토마스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의 제물 되는 삶과 제물 되는 죽음이 조선땅에 구원의 역사와 선교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아침 선교가 무엇이며 선교사가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선교가 무엇이고 선교사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선교사의 모델이 되시는 예수님의 선교 행적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로 선교는 되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선교는 함께 사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셋째로 선교는 함께 놀아주는 것입니다. 넷째로 선교는 모험심과 담력을 지니고 그저 달려가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선교는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푸셔서 우리들도 예수님의 선교 흔적을 우리 몸에 지니고 예수님의 선교 행적을 우리 삶에 나타낼 수 있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선교의 모델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 우리들도 조금씩, 조금씩 주님 닮은 선교적인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들도 주님 닮은 선교적인 삶을 조금씩, 조금씩 살아갈 수 있게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