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영란 대법관)는 강의석 씨가 모교인 대광학원과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최종적으로 강 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광고가 강 씨에게 종교교육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기독교학교들은 이를 ‘종교교육의 종식’이나 ‘설립목적 상실’ 쯤으로 받아들이며 절망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오히려 기독교학교의 종교교육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유환 교수는 25일 오후 서울 종로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소장 박상진 교수) 정책세미나에서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종교교육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유환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 교수, 김재웅 교수, 박현범 교목, 박상진 교수. ⓒ 김진영 기자

“대법원 판결, 기독교학교에 고무적인 일”

‘기독교학교에서의 종교 자유에 관한 대법원 판결과 향후 기독교학교의 방향 모색’을 제목으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 김 교수는 “이 판결은 학생의 종교자유와 종립학교의 종교교육의 자유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추구한 판결”이라고 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대법원의 판결은 원칙적으로 종교교육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법원은 종교의 자유와 사학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종교교육은 보장돼야 함을 천명했다.

문제는 현행 평준화 제도 하에서 대광고가 강 씨의 거부의사에도 불구하고 종교교육 참여를 강요했다는 데 있었다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대법원이 종교교육을 지적했다기보다 대광고를 지적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종래 평준화 체제에 편입된 일반적인 종립학교는 공식적으로 종파교육을 할 수 있도록 허용받지 못했다. 불법적인 것이었다”며 “그러나 이번 판결로 인해 (학부모나 학생의) 학교선택권이 제한된 상태 하에서도 종립학교의 종파교육은 합법적인 지위를 얻을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실제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종교교육을 실시한다 하여 그 자체만으로 …(중략)… 학교법인의 종교교육의 자유나 사학의 자유의 한계를 넘은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한계 내에서 실시되는 종교교육을 용인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한계’란 종교교육을 거부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종교교육을 실시하는 등의 방법을 의미한다.

결국 종교교육을 거부하는 학생에게 종교교육을 강요하지 않는 한, 오히려 기독교학교는 이번 판결로 인해 종교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공받았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인 셈이다.

김 교수는 “대법원이 종파교육의 조건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설시를 해준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며 “평준화 체제에 편입돼 있는 종립학교들도 교양교육으로써의 종교학교육이 아닌 종파교육을 합법적으로 실시할 수 있게 됐다. 기독교학교들에겐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함께 발제자로 나선 장신대 기독교교육과 박상진 교수 역시 “(대법원 판결은) 오늘날 한국의 사립학교, 특히 기독교학교의 자율성의 기초가 얼마나 부실하며 이로 인해 기독교교육이 심히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드러내 주었고, 이는 기독교학교가 근본적으로 새로워질 것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고 이번 판결을 종교교육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함을 역설했다.

“대법원 판결, 기독교학교엔 일종의 핍박”

그러나 서강대학교 교육대학원 김재웅 교수는 “기독교학교의 입장에서 이번 판결은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 사립학교의 설립 주체는 건학이념에 종교 선전을 포함시킬 수 있고 특정 종교의 교리를 내용으로 하는 종교교과를 의무적으로 부과하는 학칙을 제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교육정책(평준화를 의미-편집자 주)이 바뀌는 바람에 학교가 학생들을 마음껏 선발하지도 못하고 학생들도 학교를 선택하지 못하게 됐다. 종교교육을 통한 인성함양을 건학이념으로 하는 기독교학교의 경우 종교교육을 마음껏 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것을 일종의 핍박이라고 인식할 가능성이 있다”고 대법원의 판결에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숭의여자중학교 박현범 교목은 이번 판결의 배후에 있는 정부의 평준화 정책을 꼬집었다. 그는 “이번 대법원 판단의 문제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을 상당부분 제한하고 있는 평준화 제도 자체에 대한 위헌성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학생과 학교가 입고 있는 피해의 근본적인 원인은 위헌적 제도를 양산해 시행하고 있는 국가에 있다. 대법원은 원죄를 지은 국가에는 면죄부를 줬다. 학교만이 희생양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