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영옥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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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1849년 12월 22일 아침 9시, 세묘노프 광장으로 가려고 한다. 얼어붙은 유리창의 사륜 마차에 실려 도스또옙스끼는 사형장에 도착한다. 마차에서 내려보니 눈 덮힌 연병장 한쪽에 사형대가 차려져 있었고, 바로 그 옆에 수염이 텁수룩하게 길고 초췌해진 페트라셰프스키가 서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근처엔 다른 호송병들이 데리고 온 수인들이 서로 껴안고 반기며 함성을 질렀다. 그들은 모두 몇달동안 고독한 독방에서 지내왔다. 때문에 비록 사형장일지라도 서로가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있었다.
이어 수인들은 일렬로 묶이고 한 승려가 맨 앞에서 그들 모두를 사형대 위로 인도해갔다. ‘받들어 총’ 하는 명령과 함께 요란한 북소리가 연병장을 떠나갈듯 울렸다. 그 소리와 함께 한 법무관이 판결문을 읽었다.
“법무장교단 일행은 국가재판 위원회의 심리를 쫓아 국가질서의 전복을 기도한 전원에게 유죄를 인정하여 모두 총살형에 처한다.”
그런 후 맨 먼저 페트라셰프스키가 사형대로 끌려가고, 이어 몸벨리와 고리예프가 형틀에 묶였으며 모두 머리에 자루 같은 것이 뒤집어 씌였다. 그 때 페트라셰프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몸벨리, 다리를 되도록 높이 올려라. 그렇지 않으면 감기에 걸린 채 천국으로 가게 된다.”
여기서 잠깐 나는 형장에 선 페트라셰프스키의 신념에 대하여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형 집행 전에 그가 작성하였던 진술서의 부기를 보자.
“나의 진실에 대한 확신은 조금도 동요가 없다. 나를 유죄로 할 수는 있어도 나를 죄인으로는 만들 수 없다. 악당들의 올가미는 교활하다. 그러나 신은 힘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진실 속에 있다. 냉정하게 나는 기다린다. 십자가에서 죽음에 임한 예수의 말이 내 귓전에 울려 퍼지고 있다. 죽음 앞의 평안이 내 마음에 찾아든다.”
누군가 말했다. 천재란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지 의연할 수 있는 재질과 능력을 가진 자라고. 페트라셰프스키 역시 천재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그분의 뜻에 대하여 정직한 소망을 품고 있었다.
한편 교수대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태도는 침착하였다. 어떤 사람은 참회를 하기 위하여 사제 앞에 걸어 나갔다. 대열의 둘째 줄에서 총살형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 중의 하나가 도스토옙스끼였다.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하여 일약 문단의 혜성으로 떠오른 27세의 신예 작가였는데, 그의 위대성은 이미 <가난한 사람들>에서 예술적 색체로 형상화된다.
총살형 발사 명령을 기다리는 그 몇분간 교회의 금색지붕의 꼭대기가 햇볕을 받고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도스또옙스끼는 그 지붕과 지붕 사이에 반사하는 빛을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빛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빛이 자기의 새로운 본체처럼 느껴졌다. 이제 3분만 지나면 자기도 그 빛에 융합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잠시 생각을 바꾼다. 만약 내가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만일 생명을 보전할 수 있게만 된다면 나는 무한한 시간을 느낄 수 있을텐데….
그렇게 자신에게 이야기를 한 후 도스또엡스끼는 스페시네프의 곁으로 가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은 오늘 그리스도와 더불어 있을 것이다(Nous Semos avec le Chr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