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배본철 교수(성결대, 교회사)는 지난 한 해 필리핀, 아프리카, 영국 등 세계를 돌며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스스로 이 순회를 ‘세계순회 성령사역’이라 이름 붙였죠. 그는 이 순회를 통해 “신념과 주장을 좀 더 힘 있게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배 교수가 가졌던 신념과 주장은 무엇일까요. “나의 거듭난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은혜”라고 고백하는 배 교수가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글에 녹여 본지에 기고했습니다. 질풍노도의 기간을 지나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을 좇아 세계를 순회했던 모든 과정을 매주 화요일 소개합니다. 배 교수와 함께 성령이 운행하는 세계로 다시 떠나봅시다.

보라카이 조셉

보라카이 조셉(Joseph)에 대한 얘기를 좀 해야 하겠다. 이 청년은 한국 사람이고 조셉이라는 이름은 필리핀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보라카이에서 열린 선교사 세미나 때였는데, 그날 세미나를 마치고 몇 분 선교사들과 함께 해변에서 커피 한 잔씩을 나눌 때였다. 우리가 차 마시는 자리에 보라카이에서 목회하시는 최 전도사님과 함께 나타난 그의 용모는, 미안한 표현이지만, 조폭과 방불했다. 이 표현은 나뿐 아니라 거기에 있던 분들에게 공통된 것이었으니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최 전도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 조셉 형제가 이제 방금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몇 주간 자기와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란다. 자기를 소개하는 조셉의 말투는 그야말로 간단명료했으며 얼굴에는 거의 표정이 없었다. 우리는 그가 전에는 험한 세상을 살다가 마침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보라카이에서 관광 가이드로 일하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나는 조셉에 대한 기도를 빼놓을 수가 없었다. 보라카이에서 일로일로로 돌아오고 나서도 말이다.

그런데 한두 주가 지난 후 갑자기 최 전도사님이 조셉 청년을 데리고 일로일로로 올라오셨다. 조셉의 어깨에는 큰 가방이 메어져 있었다. 최 전도사님은 성탄절 준비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일로일로에서 구해 내려가기 위해서 조셉을 데리고 오셨다는 것이다.

그 다음날 새벽기도 시간에 나의 가슴은 조셉에 대한 기도로 불타올랐다. 최 전도사님에게 부탁하여 이 친구를 다만 몇 일간이라도 나와 함께 머물게 해달라고 하는 부탁을 드려야겠다는 소원이 일어난 것이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난 후 교회당 밖으로 나가니, 마침 기도를 마치고 잠시 밖을 거닐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나의 뜻을 내보였고, 최 전도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사실 승낙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되는 것이 최 전도사님의 기도였다. ‘약 3주간 연말까지 일로일로에서 조셉을 신앙훈련 시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데리고 올라왔다는 것이다! 마침내 최 전도사님은 먼저 보라카이로 내려가고, 그 때부터 나는 조셉과의 영적인 교제에 들어갔다. 나는 그를 ‘보라카이 조셉’이라고 불렀다.

그날 이후 조셉은 우리와 함께 거하면서 날마다 급격히 변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와 함께 로마서를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적절한 신앙서적들을 추천해주고 거기에 대해 독후감을 쓰게 했다. 성경이나 신앙에 대한 질문들을 내게 하면 거기에 대해 답변을 주고 함께 토론했다. 아내는 조셉에게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가정에 대해서 일대일로 알짜배기 특강을 해주었다. 조셉의 말이, 일로일로에 와서 처음 며칠간은 정말 철장에 갇힌 기분이었으나, 점점 하나님 앞에 영혼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셉은 단 하루도 새벽기도나 예배 시간에 빠진 적이 없었다.

조셉은 거의 매일같이 울며 기도하였다. 찬양예배세미나 때도 매일 눈물을 흘리더니만, 마지막 날 밤 기도회 때는 마치 사자 같은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아버지, 주여~~!”

그 큰 부르짖음 소리에 기도하던 한국인이나 필리핀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모두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강단에서 기도회를 인도하던 나도 깜짝 놀라서 쳐다보니, 조셉이 견딜 수 없이 뜨거운 성령의 감동 속에서 고개를 좌우로 마구 저어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다음날 새벽. 그는 여느 때처럼 누구보다도 일찍 예배당에 나와 기도하고 있었다. 나는 그와 나란히 옆 칸 긴 의자에 앉았다. 그날 나는 조셉과 영 안에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내게 일어나는 감동이 그에게 전달되는 것을 알았다. 어느 순간 내 속에서 갑자기 방언에 대한 감동이 일어나는데, 그 다음 순간 조셉의 입에서 이상스런 발음이 걷잡을 수 없이 튀어나왔다.

“추추추춧.... 추추추추춧!”

나는 나대로 기도에 열중하느라 자세히 귀담아 듣지는 못했지만, 얼핏 듣기에도 여러 가지 방언이 차례대로 막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랄리야스마스 알라라스.....”

때로는 격렬하고 예리하게, 때로는 부드럽고 사랑에 넘친 느낌으로. 마치 오랜 동안 꽉 막혀 있던 조셉 영혼 깊은 곳의 샘이 터져서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 나중에 조셉의 말에 의하면, 터키나 카자흐스탄 어느 지역의 언어 비슷한 방언을 자기가 한 것 같다고 한다. 물론 그가 한 방언이 실제 그 나라 말이 아니라는 점은 그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 다음날. 그 날은 조셉이 3주간의 영성훈련을 마치고 보라카이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그는 돌아가면 보라카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단단한 결단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신학을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이른 아침 그는 홀연히 떠나갔다.

그 후 몇 주가 지났을 때, 오 선교사님과 나는 보라카이로 찾아가 조셉에게 세례를 주기로 결정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토요일 아침 보라카이를 향해 출발해서 주일 오전 예배 마치고 다시 돌아오는 스케줄이었다. 게다가 보라카이 도착하면 즉시 한인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기로 되어 있었고, 그 다음날 아침 설교하고 세례 주고는 점심도 못 먹고 돌아오는 코스다. ‘세상에! 보라카이 같은 유명한 관광지에 하룻밤 밖에 못 머물러야 하다니! 그것도 바다에도 못 들어가고 예배드린 후 곧바로 되돌아 와야 하다니!’

토요일 아침 일로일로를 출발해서 네다섯 시간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나서 부두에서 배타고 보라카이로 건너오니 시간은 늦은 오후였다. 여장을 풀자마자 곧바로 성경공부 모임으로 향했다. 참 감사했다. 몇 년 전에는 황무지와 같던 이곳에 한인교회가 세워지다니! 그리고 이렇게 매주 성경을 연구하며 기도하는 모임이 지속되고 있다니 너무 감격스러웠다. 젊은 부부들이 여러 쌍 참석하였다. 이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하기 원하시는 일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일일까? 나는 신구약을 쭉 훑으면서 성령 하나님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성경의 내용들을 성도들과 함께 나눴다.

그래도 성경공부 모임 이후에 해변가의 한 레스토랑에서 포크리브(pork rib)를 즐길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예상했던 그 맛이 아니었다.
‘어, 이 맛이 아닌데?’ 작년인가 와서 먹었을 때는 야들야들한 등심 살코기가 너무 맛있었다. 직접 장작으로 돼지고기를 구웠을 뿐 아니라 희미한 불빛 아래 훈훈한 바닷바람에 어우러지면서 더 맛있게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맛이 영~ 아니다. 갈비가 너무 크고 또 질겼다. ‘새끼 돼지를 사용해야 하는데 나이 먹은 늙은 돼지의 갈비인 것 같아.’

한편 마음엔 섭섭함을 금할 길이 없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역시 하나님 외에 어떤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여지없이 무너뜨리신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사실 내 마음 속에 은근히 보라카이에 가면 부드러운 포크리브를 다시 즐길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일 아침 보라카이한인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선교사님들과 함께 조셉 청년의 세례식을 베풀게 되었다. 보라카이 푸른 해변에서 세례를 베푸는 일은 즐거웠다. 몇몇 외국인들이 우리가 세례식 하는 장면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관광지로서 유흥과 환락에 깊이 물들어 있는 이곳에서 거룩한 세례식을 집례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의미 있고 멋진 일인가! 더군다나 단 한 청년을 세례 주기 위해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한 나절 그리고 또 배를 타고 달려오게 되었으니, 이 청년은 과연 얼마나 복된 청년인가!

조셉이 감격스럽게 세례를 받는 동안 주위에서는 성도들이 찬양을 부르고 있었다. 세례 받고 난 후 조셉은, 새롭게 거듭난 자신의 삶은 오직 주님의 인도하심만을 따르며 살겠다고 성도들 앞에서 다짐하였다. 세례식을 마치고 오 선교사님과 나는 다시 부지런히 일로일로를 향해 차의 시동을 걸었다. ‘아름다운 보라카이 해변에서 그래도 세례 주러 바닷물 속에 들어갔다 왔으니 됐네.’ 덜컹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서 이런 생각과 함께 마음에 행복감이 젖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