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신학회(회장 김성영 박사)와 한국개혁신학회(회장 권호덕 박사)는 올 봄 정기 학술대회의 주제를 같은 것으로 정했다. ‘새 관점’이라 불리는 신학사상이 바로 그것인데, 정확한 명칭은 ‘바울에 관한 새 관점’(New Perspective on Paul)이다. 올초 한국성경신학회(회장 박형용 박사) 역시 같은 주제로 논문 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한국의 대표적 복음주의 신학단체들이 연이어 이 주제를 다룰만큼 ‘새 관점’에 쏠린 신학계의 관심은 크다. 비록 이 관점이 논의된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에선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풀러신학대학원 김세윤 교수가 쓴 ‘바울 신학과 새 관점’(두란노)이 지난 2002년 번역 출판됐었고, 국내 교수로는 백석대학교 최갑종 교수가 90년대 초반부터 이 주제를 연구해온 정도다.

그렇다면 ‘새 관점’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것은 기본적으로 구원론에 관한 또 다른 차원의 논의이고, 더 자세히는 유대교 율법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현재 한국의 복음주의적 구원론은 ‘이신칭의’(以信稱義), 곧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이 그 핵심이며 이는 루터와 칼빈으로 이어진 종교개혁에 뿌리를 둔다. 또한 이 구원론은 로마서를 비롯한 사도 바울의 서신을 통해서도 입증되는데, 바울은 당시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유대인들의 ‘율법주의’를 배격하고 조건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강조했다. 구원을 이해하는 이러한 관점은 유대인들이 ‘은혜’가 아닌 ‘행위’를 구원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사실 위에서 더욱 극명히 드러난다.

그런데 만약 유대인들에게 ‘율법주의’가 없었고 그들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있었다면, 그리고 바울도 궁극적으론 율법주의를 비판했던 게 아니라면 지금의 구원론은 상당한 수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새 관점’의 출발점이 바로 여기서부터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유대교를 오해하고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구원론 논의도 잘못 진행됐다는 것이다.

“유대교 역시 하나님의 은혜 강조한 종교”
“율법의 행위 강조한 ‘율법주의’는 없었다”

다소 파격적인 이 관점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미국의 신학자 샌더스(E. P. Sanders)다. 유대교 문헌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미국 유니온 신학대학교의 유대교 랍비 밑에서 공부했고 예루살렘에서 유대 문헌들을 연구했다. 지난 1977년 출판된 그의 책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Paul and Palestinian Judaism)는 20세기 신학 분야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이 책 422 페이지에서 ‘새 관점’을 언급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다. ①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그런 다음 ②그들에게 율법을 주셨다. 이 율법은 ③선택을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이며 ④이스라엘로 하여금 이에 순종할 것을 요구한다. ⑤하나님은 순종에 대해선 보상하시고 불순종에 대해선 심판하신다. ⑥율법은 언약관계의 유지 및 재확립을 제공한다. ⑦하나님의 자비에 의해 언약 안에 머무는 자들은 모두 구원받을 그룹에 속한다.

▲‘새 관점’을 지지하는 세 명의 신학자들. 왼쪽부터 샌더스, 던, 라이트.

샌더스는 ①과 ⑦을 근거로 들어 선택과 구원은 인간의 성취가 아닌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유대교는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으려는 율법적 종교가 아니며 오히려 기독교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선택을 강조한 종교라는 것이다. 샌더스는 유대인들의 이러한 율법 인식을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 nomism)로 명명했다. 이것이 기존의 ‘율법주의’와 다른 점은 율법을 구원의 수단으로 보지 않고 단지 언약 백성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는 것이다. 율법 이전에 먼저 선택과 언약이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샌더스의 언약적 율법주의에서 은혜는 이스라엘이 맺고 있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며, 율법의 행위는 그 관계를 유지시키는 것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선한 행위는 언약 안에 머무르는 조건이지, 그것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바울도 유대인들의 이러한 생각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게 샌더스의 견해다.

그럼 갈라디아서나 로마서 등에서 지속적으로 암시되는 율법에 대한 바울의 부정적 인식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10~14절과 로마서 3장 19~20절 등에서 분명 율법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새 관점’의 편에 서서 이 의문에 답한 사람이 바로 영국 더럼대학교의 제임스 던(James D.G.Dunn) 교수였다. 그에 따르면 바울이 유대교의 율법 혹은 율법의 행위를 비판한 것은 그것이 유대인들의 독특한 민족적, 종교적 표지로 작용해 십자가 사건을 통해 마련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동등성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결코 구원과의 직접적 관령성 하에서 ‘율법주의’를 지적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던의 이러한 해석은 바울 서신을 일종의 사회학점 관점에서 풀이한 것으로, 기존의 해석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수직적 이해에 기초한 것이라면 던의 해석은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수평적 이해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샌더스와 던의 ‘새 관점’을 이어받아 종교개혁 신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신칭의’를 또 다른 차원에서 이해한 이가 바로 영국의 복음주의 신학자 라이트(Nicholas Thomas Wright)다. 라이트에 의하면 바울의 이신칭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수직적 구원교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개인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인가를 말해주는 교회론이며 에큐메니칼 교리라고 라이트는 주장한다. 이는 칭의가 마치 법정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언약 백성이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결코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인 인간에게 전가돼, 그 전가된 의로 말미암아 인간이 의롭게 된다는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고 라이트는 말한다.

또한 라이트는 이신칭의를 두 단계로 나눠 설명하기도 한다. 먼저는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자신의 백성으로 선언하는 단계이며, 다음은 그리스도가 재림하고 개인이 하나님의 심판대에 설 때 성령이 모든 삶을 근거해 그를 최종적인 자신의 백성으로 선언하는 단계이다. 결국 칭의와 성화를 하나의 칭의 교리 안에 통합시킨 셈이다.

▲ 유대교 문헌으로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 사이에 쓰여진 ‘사해사본’ ⓒ 크리스천투데이 DB
‘새 관점’은 이미 유럽과 미국의 일반 교회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30년도 채 되지 않은 이 관점이 이처럼 빨리 그 저변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새롭게 발견된 유대교 문헌과 유대인들을 향한 인식의 변화에 기인한다.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 등에 반영됐던 서구사회와 기독교의 반 유대인 정서(the anti semitism)가 점차 희석되면서 유대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났고 1세기 유대교를 보여주는 문헌들이 속속 발견되자, 기독교라는 안경을 벗고 유대교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에 개인을 강조하는 서구 패러다임이 동양의 가족 혹은 공동체적 패러다임으로 대체된 것도, 성경을 하나님과 개인 사이의 수직적 관점에서 개개인 사이의 수평적 관점으로 이해하는데 작용했다. 이 가운데 특히 유대교 문헌들이 ‘새 관점’ 형성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 샌더스 등이 유대교 문헌을 연구하면서 유대인들에게 은혜와 사랑이라는 개념이 존재했고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율법주의’도 없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또 다른 ‘율법주의’로 발전할 가능성 커”
“바울 서신은 서신 그 자체로 해석돼야”

이 ‘새 관점’에 대해 한국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이것이 유대교 이해에 있어 어느 정도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바울 서신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수평적 시각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내리지만 대체로 경계하는 입장이다. 언약 백성의 지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율법을 강조한 것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언약 백성이 될 수 없고 나아가 구원에도 이를 수 없다는, 또 다른 ‘율법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대교 문헌이 ‘언약적 율법주의’를 보여주지만 이와 함께 ‘율법주의’ 또한 보여주고 있다는 것도 ‘새 관점’을 비판하는 이들의 주요 지적이다. 그리고 설사 문헌들이 ‘언약적 율법주의’를 보다 강하게 드러낸다 해도 단지 문헌만 가지고 당시의 현실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는게 이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현실과 그것을 기록한 것 사이에는 때로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사가 설교를 통해 아무리 거룩한 삶을 강조해도 현실에서 그것을 실천하고 따르는 자들이 많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새 관점’을 지지하는 이들이 당시의 유대교를 판단함에 있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신약성경을 두고 유대교 문헌에 주로 의존한다는 점이 ‘새 관점’에 대한 가장 큰 반대 이유다. 신약성경, 특히 바울의 서신들에서 일관되고 흐르고 있는 ‘율법주의’ 비판을 지나치게 사회학적 관점에서 이해한 나머지 개인과 하나님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죄와 구원의 문제를 흐린다는 것이다.

한국에 처음으로 이 ‘새 관점’에 대해 알린 백석대학교 최갑종 교수는 “예수님과 바울 당시의 유대교가 획일적 율법주의가 아닌, 언약적 율법주의였다는 ‘새 관점’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며 “기존의 해석도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1세기 유대교를 획일적인 ‘언약적 율법주의’로 해석하려는 시도에는 더 큰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는 “칭의가 아무리 사회학적 의미를 내포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사회학적 의미로 환원시킬 순 없다”며 “유대교 문헌들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그것을 복음서 해석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선 안 된다. 바울 서신은 어디까지나 서신 그 자체로 해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이승구 교수도 “라이트의 생각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삶 전체를 놓고 행하시는 것, 곧 ‘행위에 근거해서’ 하시는 것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며 “행위를 갖고 심판하신다는 이 계속되는 라이트의 주장은 ‘반 펠라기우스(semi-Pelagianian)주의’적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사람들이 자신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것을 낼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성령님의 능력으로 어떤 선행을 한 것이 마지막 날에 공로로 여겨진다는 것이 바로 천주교회적 반 펠라기우스 사상이 주장하는 바였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이 교수는 또 “라이트의 문제는 근원적으로 자기 나름의 독특한 성경 해석에 사로잡혀 전통적 성경 해석에 대한 비판이 너무 크게 나타나게 된 것”이라며 “‘새 관점’의 구원론은 기존의 구원론을 전적으로 뒤집는 것이고 이는 종교개혁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연결된다”고 ‘새 관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한국복음주의신학회는 오는 24일 오전 10시 경기도 수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한국교회와 구원론-새 관점에 대한 복음주의적 대응’을 주제로 제55차 정기논문발표대회를 가질 예정이며 백석대 최갑종 교수가 주발제자로 나선다. 한국개혁신학회는 다음달 8일 오전 10시 서울 사당동 총신대학교에서 ‘바울에 대한 새 관점적 접근과 개혁신학’을 주제로 제28차 정기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며 이은선 교수(안양대), 류응렬 교수(총신대) 등이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