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만석 목사
파키스탄인 A씨(31)는 2001년 9월 단기 상용비자로 한국에 입국한 후 불법체류를 하면서 염색공장 등에서 일하다 2003년 6월 강제출국 당했다. 그러나 그는 2개월 만에 한국에 다시 들어왔다. 불법체류로 강제출국 당한 사람은 보통 5년 동안 재입국이 불가능하지만, 이 사람은 형 B씨(36)의 여권에 자기 사진을 붙여 6명의 자녀와 부인을 동반해 대구 이슬람사원의 성직자(이맘)로 속이고 재입국했다. 그는 2007년 법무부 출입국관리소로부터 밀입국 혐의로 조사를 받을 때 파키스탄에서 발행된 자신의 사망증명서를 가져와 무혐의 처리됐다고 한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그는 이슬람권에서 온 20여명의 유학생들에게 탈레반을 찬양하고 테러 교육을 시켰으며(조선일보 이하 2010.2.22) 탈레반 지도자 잘랄루딘 하카니로부터 주한 미군의 정보를 조사하여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연합뉴스 2월19일)고 말하고 다녀 경찰 조사 중이라고 한다.

그의 이런 활동은 철저히 베일에 감춰질 뻔했는데, 그가 약 1000억원 상당의 중장비 330대를 밀수출하는 일에 관여한 혐의로 조사받던 중 제보자를 찾아가 진술을 번복하지 않으면 가족들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면서(연합뉴스 2월 26일자) 자신의 신분이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이 B씨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으나, 강제출국 당시 그의 사진과 형의 이름으로 입국한 위조 여권의 사진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정밀 분석한 결과 동일인이 분명하다는 회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 여권으로 17차례나 파키스탄을 오가며 이슬람 성직자 행세를 했다. 그가 탈레반과 연루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미국 CIA의 감시대상 인물명단에서 확인되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출입국자 관리에 관한 문제다. 출입국관리소의 보고에 의하면 최근 5년간 타인 명의 여권으로 입국하다가 적발된 사례가 평균 2100건 정도 된다(한국일보 2월28일). 그러나 이 사람처럼 타인의 인적사항에 자신의 사진을 붙여 들어오면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까. 수염을 기른 중동 사람들은 수염만 깎아도 식별이 어렵다. 따라서 육안으로 보아 여권의 사진과 비슷하면 입국을 허락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방법이다.

더구나 성형수술을 하여 본인의 얼굴을 바꾸든지 아니면 타인의 얼굴과 유사하게 만들어 놓으면 무슨 수로 식별할 것인가? 외국에서는 지문 채취 제도를 도입하여 이러한 사건을 예방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외국인 지문날인제도를 시행했으나 2004년 국제화 시대에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불편을 주면 안 된다는 취지로 없애 버렸다. 외국인 지문날인제도는 속히 다시 도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테러요원들이 잠입할 수 있는 대문을 열어놓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본다.

둘째 이슬람의 문제이다. 우리는 지금 다문화평화공존시대에 살고 있다. 문화라는 것은 종교를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을 어우르는 개념이다. 이제 특정 종교를 혐오한다든지 차별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슬람은 좀 다르다. 종교는 주로 영적인 부분을 다루는 것이지만 이슬람은 개인의 삶의 모든 분야를 통제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옷을 입는 것, 음식을 먹는 것, 목욕하는 것, 화장실 가는 것, 부부간의 잠자리하는 법, 이방인 친구를 사귀는 것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교육, 법률 등 모든 분야를 이슬람의 율법에 의해 규정하고, 그것이 알라의 뜻이니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권면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이기 때문에 무슬림들이 타문화권에 가면 그 사회와 서로 조화롭게 융화되지 못하고 필연적으로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있다. 또 여기에는 개인의 자유나 인권은 이슬람을 위해서 양보 내지는 희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이슬람을 하나의 종교로 보고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관용적 태도를 보였던 유럽이나 선진국들은 인권이니 자유니 운운하면서 이슬람을 분별없이 받아들인 결과 무슬림이 급증한 지금의 상황을 맞이했다. 이제 유럽은 이슬람을 막을 수 있는 단계가 지났다고 본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테러만 막으면 되지 왜 종교를 들먹거리냐’는 것이다. 그것은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에 테러를 독려하는 명령이 있기 때문에 이슬람을 막지 않으면 테러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꾸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있다.

‘믿는 자(무슬림)들이여. 너희 가까이에 있는 불신자(이슬람 외의 종교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투쟁하고 그들로 하여금 너희가 엄함(잔혹하다는 것, harsh)을 알게 하라.’(꾸란9:123, 최영길역) ‘불신자(이슬람 외의 종교를 믿는 모든 자)를 어디서 발견하든지 즉시 죽여라.’(꾸란9:5) ‘소동이 사라지고 모든 종교가 알라의 이름으로 통일될 때까지 싸움을 계속하라.’(꾸란8:39)

‘군대와 말로써 너희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에 대항할 준비를 하라 하셨으니 그것으로 알라의 적들과 너희들의 적들과 그들 외의 다른 위선자들을 두렵게 하라(테러를 가하라, strike terror). 너희들은 그들을 알지 못함이요 알라는 그들을 아심이요 너희가 알라를 위해 바친 하찮은 것이라도 그릇됨 없이 정당한 보상을 받노라.’(꾸란 8:60)

셋째 이 사건은 개인적 실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여권 발급에는 신원조회가 따르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의 사망진단서를 떼 온 것도 이상하다. 다른 세력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대구 이슬람사원의 건물은 파키스탄 사람들이 돈을 모아 지었다고 한다. 파키스탄 근로자들이 대구에 대형 건물을 지을 정도로 헌금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수입의 대부분을 송금하기 때문에 거액의 헌금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분명히 제 3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구 이슬람사원의 무슬림들을 생각해 보자. 그 사람들은 A씨와 함께 동료 근로자로 거의 2년 가까이 사귀었던 사람들이다. 염색공장에 다니던 사람이 강제출국 당한지 두 달 만에 자신들의 모스크에 이맘(이슬람 성직자)이 되어서 다시 들어왔는데 어떻게 모를 수 있다는 것인가? 이것은 개인의 욕심에 의해 우발적으로 저지른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생각하기도 싫고 또 아니기를 바라지만, 혹여 탈레반이 한국에 침투하려는 전략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2008년도 국정원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간 19차례에 걸쳐 74명의 국제 테러요원들이 한국에서 적발되어 강제출국 당했다고 한다. 탈레반 요원이 모스크의 이맘으로 위장하여 들어올 정도면 정신차려야 할 때가 된 것을 의미한다. 아직도 발각되지 않고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철저히 찾아내어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국은 더 이상 테러 안전국이 아니다. 한남동 모스크 옆의 이슬람 서점에서는 테러를 촉구하는 위험 서적들이 무료로 배포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이슬람 테러세력의 침투에 대응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다. 모든 무슬림들을 테러범으로 보고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점이다. 설령 테러요원일지라도 그들은 잘못된 가르침에 속고 있는 피해자들이기 때문에 미워하기 보다는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들을 돌이켜서 진리를 발견하게 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책임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단순히 자기들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웃을 괴롭히고 죽이라는 꾸란의 가르침을 보다가 ‘원수를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사랑하라’(눅6:27~28)고 하신 성경말씀을 보니 새삼 더욱 위대해 보인다. 

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