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 수련회에서 홍정길 목사(좌측에서 두번째) 등 제자들과 기도하고 있는 김준곤 목사 ⓒ C.C.C 제공

학생 복음화, 민족복음화를 위해 헌신해 왔던 김준곤 목사의 일생에 근간이 되는 사역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성령의 불덩어리를 심어준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설립이다. 1958년 ‘오늘의 학원복음화는 내일의 민족복음화요 오늘의 민족복음화는 내일의 세계복음화’라는 구호로 시작된 C.C.C는 지난 50여년간 40만여명의 대학생과 350만여명의 평신도를 배출했다.

특히 대학을 졸업한 이들 중 일부는 김 목사가 1968년도에 세운 ‘나사렛형제들’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에서 그가 꾸었던 민족복음화의 꿈을 실현시켜나가고 있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이들의 활동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세상 가운데 끼친 김 목사의 선한 영향력을 반증한다. 이들은 2005년 <나와 김준곤 그리고 C.C.C>라는 저서를 통해 김 목사를 향한 그리움을 표하기도 했다.

김 목사의 영적 리더십 아래에서 성장해 사회에서 지도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 중 최근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인물은 정운찬 신임 총리. 그는 고교생 모임인 하이 C.C.C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C.C.C 활동과 함께 선교사였던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로부터 신앙을 다져나갔던 정 신임 총리는 이후에도 남포교회와 ‘스코필드 성경 공부 모임’에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의료계에는 이건오 한동대학교 선린병원 원장과 황성주 박사, 한국에서 처음으로 심장이식 수술에 성공한 박국양 가천의대 길병원 심장센터 소장, 한국의 정신과 명의 100인에 선정된 이무석 전 한국정신분석학회장, 보건복지부 최연소 국장을 지낸 박하정 인구가정심의관, 박은호 전주남문가축병원장, 박창서 박의원 원장, 윤여표 전 충북대 약학대학장 등이 있다.

이건오 원장은 의료계의 대표적 인물로 부산 C.C.C에서 학생회장을 맡아 캠퍼스를 누비며 각 단과대학별로 대표 순장을 만들어 임명하는 등 대학복음화에 주력하다, 당시 각 도시마다 한 명 정도 있던 간사 직분을 김 목사로부터 직접 임명받았다. 군의관으로 포항 해병대 사단에 근무할 당시 김 목사와 함께 엑스플로 74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1주일간을 ‘탈영’했다가 들통 났지만 하나님의 역사로 처벌을 면했던 기억도 있는 이 원장은 이후 의료선교를 통한 성시화 운동에 불을 지폈다.

“C.C.C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고 말하는 황성주 박사는 “대학시절 C.C.C 사람으로서 날마다 성령 충만한 신앙생활을 하며 무한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졌다”고 고백했다. 정동 채플 제1기로서 매주 채플을 사모했던 것, 서울대 개교 20주년 기념일에 김 목사 초청 신앙강좌를 열고 서울대 복음화 선언문을 낭독했던 것, 1977년 김준곤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던 것을 잊지 못한다고 황 박사는 전한다.

두상달 칠성산업 회장, 주수일 칠성섬유 회장, 서일영 핸디인터내셔널 대표이사, 이상운 전 고합그룹 회장 등은 재계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두 회장은 대학생활 중반 명동거리를 거닐다 친구 따라 C.C.C에 우연히 들른 자리에서 “김 목사님의 메시지에 신비한 감동과 충격을 느꼈고 무언가에 홀린 듯했다”고 신앙을 시작하게 된 배경을 전했으며, 지금은 가정문화원 이사장, 중동선교회 이사장, 한국직장선교연합회 이사장으로 분주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외에도 교육계에 이광자 서울여대 총장, 신윤표 전 한남대 총장, 김의원 전 총신대 총장, 김성영 전 성결대 총장 등을 비롯해, 김덕수 전 해군 제독, ROTC 1기로 육군 대장과 15, 16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박세환 장로, 윤여표 식품의약품안전청장, 정정섭 기아대책 이사장, 김상철 전 서울시장, 임성순 전 외교안보수석, 탤런트 정영숙 권사, 전용태 법무법인 로고스 공동대표 등이 C.C.C 출신이며 전용태 대표는 김 목사가 시작한 성시화운동의 기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목회자로서는 잘 알려진대로 하용조 목사(온누리교회),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옥한흠 목사(사랑의교회),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가 대학 시절 신앙을 나누고 끈끈한 우애관계를 맺어왔으며 현재 한국교회를 이끄는 대표 지도자들로 평가받고 있다.

연예인교회를 창립하기도 했으며 현재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하고 있는 하 목사는 1965년 대학에 낙방, 재수하던 때에 처음 김 목사를 만났다고 회고한다. 홍정길 목사의 인도로 C.C.C에 처음 인도된 그는 “명동에 소재하고 있던 C.C.C 회관에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생명력 넘치는 설교로 당시 젊은이 치고 목사님의 설교에 감동받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기억했다.

그 해 8월 하계 수양회에 참석하면서부터 생애 엄청난 변화와 도전이 시작됐다는 하 목사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 이후 7년간 C.C.C 공동체에 흠뻑 빠져 살았다. 그는 김 목사를 통해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비전,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성령, 자유롭고 모험적이며 창의적인 사고를 배웠으며 ‘학생운동’, ‘비전캐스팅’, ‘건강’이라는 세가지 소망을 품게 됐다고 고백했다.

‘엑스플로 74’ 당시 전국 총순장으로 섬긴 김인중 목사(안산동산교회)는 1972년 초여름 130여 명의 학생들 틈에 끼어 김준곤 목사에게 훈련을 받다가 마지막 날인 6월 6일 4영리를 통해 제시된 복음 앞에서 하나님 앞에 손을 번쩍 들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고 고백했다. 이외에도 서경석 목사, 이철 피스메이커 대표(남서울교회), 박영률 전 한기총 총무, 박종구 월간목회 발행인, 극동방송 부사장 민산웅 장로, 주서택 청주주사랑교회 목사, 임만호 월간 창조문예 발행인 등이 기독교계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