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가 30일 오전 고 김준곤 목사의 빈소를 방문해 헌화하고 있다. ⓒ 송경호 기자

저는 김준곤 목사님을 그리면서 김 목사님은 무엇보다 먼저 십자가 사랑에 붙잡히고 십자가 사랑에 미친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김준곤 목사님께서 환상 중에 십자가가 보이면서 그 십자가에서 붉은 피가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 김준곤 목사님은 사도 바울처럼 십자가만을 알고 십자가만을 전하고 십자가만을 사랑하는 십자가 사랑에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둘째로 김준곤 목사님은 피 묻은 십자가 복음 전파에 붙잡히고 피 묻은 십자가 복음 전파에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이 이룬 민족 복음화 운동은 아마 길선주 목사님께서 이룬 민족 복음화 운동에 비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김 목사님은 민족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서 그의 전 생애를 불살랐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셋째로 김준곤 목사님은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골짜기를 걸으면서 용서와 사랑의 사람이 되었고 용서와 사랑에 붙잡히고 용서와 사랑에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1950년 10월 3일 전남 신안군에서 사랑하던 아버지와 사랑하던 아내가 공산폭도들에 의해서 총살을 당하는 슬픔과 아픔을 경험했고, 1982년 사랑하던 딸이 28살에 위암을 숱한 고통을 당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슬픔과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김준곤 목사님은 그런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골짜기를 걸어가면서 분노와 증오의 사람 대신 용서와 사랑의 사람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버지와 아내를 총살한 사람들을 잡아서 죽이려고 했을 때 김준곤 목사님은 앞장서서 그들을 죽이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 결과 신안군의 주민들이 김준곤 목사님이 나타내 보인 용서와 사랑에 감동하며 대부분 예수님에게로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 12:19, 20).

김 목사님의 용서와 사랑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북한 동포들에게 염소를 보내는 사랑운동을 펴 나아가게 되었고 기도와 사랑으로 보낸 염소들이 지금도 북한 땅 곳곳에서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 말씀을 더 드리면 십자가 사랑과 십자가 사랑에 녹은 김 목사님에게는 사람들의 가슴과 영혼을 움직이는 놀라운 감화력이 충만했습니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삶을 하나님께 헌신했고 교회에 사회에 귀한 일꾼들이 되었습니다. 김준곤 목사님은 불행하고 어두운 이 땅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소금이요 빛이요 사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신 김준곤 목사님에게 주님께서 하늘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유족들에게 하늘의 위로와 은혜를 충만히 채워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존곤 목사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러면 제가 지난 2005년 5월 2일 김준곤 목사님을 기리면서 썼던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오직 피 묻은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서 한평생 살아오신 김준곤 목사님! 목사님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돌린다. 60년대 민족의 수난 속에서 학원전도를 시작하여 수많은 젊은 청년들이 주님께 돌아왔으며, 그들과 함께 민족복음화의 환상을 꿈꾸고 헌신하셨다. 또한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부흥 발전과 연합을 위해서 혼신을 다해 오셨다.

김준곤 목사님에게 깊은 존경과 사랑을 표하며 그 분과 함께 사역했던 일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더듬어 본다.

1980년도 합동교단이 두 개 세 개로 갈라질 때 “합동추진위원회”를 만들어 합동을 추진하는 일을 했는데, 어려운 그 때 김준곤 목사님이 앞장을 서셨고 박윤선 목사님과 필자가 함께 그 일을 추진했었다.

1980년 9월 12일부터 15일까지 여의도광장 등에서 ‘나는 찾았네’란 주제로 <80 세계복음화 대성회>가 개최되었는데 김준곤 목사님이 준비위원장을 맡아 탁월한 지도력으로 전도대회를 준비하고 진행했으며, 10만 선교사 파송에 대한 놀라운 메시지를 전했다.

필자는 그 때 전도대회에 참석하며 주강사로 와서 메시지를 전한 독일 튜빙겐 대학교의 피터 바이어하우스 박사의 통역을 맡았다. 바이어하우스 박사는 “엑스폴로 74대회 때보다 더 놀라운 모임이다. 한 지도자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가, 진실로 지도자의 역량이 없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의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1981년부터 지금까지 김준곤 목사님은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필자를 많이 격려해 주시고 도와주셨다. 1981년부터 85년까지 부회장으로, 1988년부터 89년까지 회장으로, 1990년부터 현재까지 자문위원으로 계시면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도해 주셨다.

1984년 6월 6일부터 9일까지는 ‘세계교회기도성회’가 영락교회와 뚝섬에서 개최되어 70여 개국에서 제임스 오르 박사등 저명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다수 참석했는데, 그때 김준곤 목사님이 준비위원장을 맡아 기도성회를 준비하고 진행했으며 필자는 진행의 실무를 맡은 일이 있었다. 목사님은 기도와 금식의 사람으로 조용한 가운데 국내외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필자가 합동신학교의 책임을 맡고 있을 때 김준곤 목사님을 학교의 이사님으로 모시고 신학교의 행정과 발전에 대해 지도와 격려를 받은 일도 있었는데, 그 일을 전후하여 한국대학생선교회 출신들이 다수 합동신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고 목회 및 선교사역에 헌신하게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 북한 동포들의 어려운 식량난을 돕기 위해 대학생선교회를 중심으로 ‘염소보내기운동’을 적극 전개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계신다.

지난 25여년간 이 부족한 사람이 한국교회를 섬겨오는 동안 김준곤 목사님께서 많이 격려해주시고 지도해주시고 사랑해주시고 도와주신 일들을 뒤돌아보니 김 목사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다시 품게 된다. 다시 한번 감사 드리며 목사님의 남은 생애를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하시고 아름답고 빛나게 하시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