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박사, 창조론 오픈포럼서 두 이론 비교
국내 창조과학자들은 지적설계론을 진화론과 배치되고 창조의 과학성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동지로 여긴다. 과연 지적설계론자들 역시 같은 생각일까.
조직신학자 조덕영 박사는 최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자유관에서 열린 제5회 ‘창조론 오픈포럼’에서 이 질문에 답했다. 조 박사는 지난 1984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창조과학회 간사로 있었고 지금은 양승훈 박사(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와 함께 창조론 오픈포럼을 이끌고 있다.
성경 창세기의 창조 기록을 과학적 사실로 수용하는 창조과학은 신앙에 과학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이후 등장한 지적설계론 역시 무신론적 진화론을 반박하면서 피조물을 설계한 지적 존재가 있음을 역설했다. 조 박사에 따르면 두 이론은 일면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전혀 다른 이론임을 알 수 있다.
두 이론 간 구체적인 차이를 조 박사는 다음과 같이 여덟 가지로 분류했다.
1. 우선 신학관에 있어 창조과학은 신학에 냉소적인 반면 지적설계는 자연신학적이다. 즉 창조과학은 창조과학과 입장이 다른 신학에 대해 냉소적이지만 지적설계는 이 운동이 자연신학적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 신학화 작업이 보다 수월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것이다.
2. 신앙관에서 있어 창조과학은 종교적 신념에 기초한 반면 지적설계는 종교적 전제가 없다.
3. 성경관에서는 창조과학이 성경 내용에 있어 문자적 접근을 하지만 지적설계는 성경과 무관하다. 지적설계 논쟁을 주도하는 자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들은 성경의 창조 이야기에 의존하지 않는다.
조 박사는 “대단히 근본주의 경향이 강한 한국의 창조과학 운동이 지적설계 논쟁에 우호적 관심을 갖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컬 하다”고 했다.
4. 창조 연대를 설명함에 있어 창조과학은 성경의 설명에 따라 지구가 6천년 내지 1만년 전 생성됐다는, 소위 ‘젊은 지구론’을 따르지만 지적설계는 창조 연대에 대한 전제가 전혀 없다. 또한 지적설계는 창조과학이 주장하는 홍수지질학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5. 생명의 기원 문제와 관련해서도 창조과학은 창세기에 나타난 종류대로의 창조를 고수하지만 지적설계는 세속 생물학의 단일 계통설과 다중 계통설 모두와 양립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6. 종교관에 있어 창조과학은 기독교를 전제하고 지적설계는 기본적으로 불가지론(不可知論)이나 주요 유일신교 모두를 인정한다.
7. 창조과학이 주장하는 세상의 설계자는 성경의 하나님이다. 그러나 지적설계에는 그런 전제가 없다. 즉 창조과학이 종교적 교리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비해 지적설계는 피조물을 설계한 지성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있다.
8. 진화론 문제에 있어서 창조과학은 물질과 우주의 기원, 생물 기원에 있어 모든 진화론적 사고를 거부하고 있고 지직설계 역시 무신론적 진화론에는 분명 회의적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조 박사는 “진화론이 만일 설계의 구도로 해석된다면 앞으로 지적설계는 일정한 진화론은 수용도 가능하다는 쪽으로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여덟 가지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국내 창조과학자들이 지직설계론자들을 동지로 여기고 있는 것에 대해 조 박사는 “아마도 창조과학이 지적설계보다 먼저 시작된 운동이었기에 창조론 운동의 후발주자인 지적설계에 대한 막연한 동지 의식이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했다.
조 박사는 그러나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는 색깔이 너무도 다른 운동”이라며 “창조과학이 폭을 좁힌 운동이라면 지적설계의 폭은 대단히 넓다”고 덧붙였다. 지적설계의 폭이 넓은 것은 이 이론이 설계와 설계자를 내포하고는 있으나 성경을 배제한 채 모든 종교와 과학자, 철학자를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였다는 점 때문이다.
아울러 조 박사는 “미국에서는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는 전혀 다른 운동”이라며 “한국창조과학회가 지적설계에 대단히 호의적인 것은 참으로 어색한 일이다. 이것이 창조과학의 반지성적 경향을 증거하는 것일 수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과학자들이 지적설계를 받아들인다면 국내 다른 의견을 가진 창조론자들을 적대시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조 박사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