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영옥 박사.
크로포트킨거리에 있는 톨스토이 기념관 건물은 1922에 지어졌으나 기념관으로서 빛을 본 것은 1939년 러시아 정부가 톨스토이의 자료 수집을 결정하면서 였다. 지금은 그의 원고 사본, 조상, 육성녹음 테이프 영상물 등 16만여점의 방대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 내가 그의 기념관에서 특별히 관심을 가진 것은 육필 원고와 편지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1883년에 시인 투르게네프가 톨스토이에게 보낸 편지였다. 이 편지는 톨스토이의 말년의 삶을 짐작하게 만든다.

“이것이 죽어가는 자의 충성에서의 소원입니다. 부디 문학으로 돌아와 주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당신에게 내려주신 본래의 일입니다. 우리 러시아 국토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시여 나의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톨스토이는 전통 귀족가문에서 태어났고 아름다운 아내를 부인으로 맞아 행복한 가정생활을 했다. 36세 때 4년간에 걸쳐 완성한 <전쟁과 평화>와 45세때 시작해 5년 후에 완성한 <안나 카레리나> 등 당시 그의 두 대작은 온 세상으로 하여금 그 앞에 고개를 숙이는 명성을 안겨주었다. 후일 톨스토이는 그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한량없이 행복하였다.” 이 두 소설을 집필할 당시 톨스토이는 더 바랄 것이 없는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그렇게 자신의 영향력이 확대돼 가던 어느날, 그는 죽음의 공포를 겪게 되고 인생의 어두운 심연으로 눈을 돌리며 신앙의 깊은 성찰로 돌아선다. 투르게네프의 편지는 그 당시 톨스토이의 방황을 염려해 보낸 것이었다. 자연과 인간의 묘사에 있어 타인의 추종을 불허할 영향력을 지닌 톨스토이가 책상 위에는 성서와 신학논문 몇 개만 올려 놓았는데, 이 일은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큰 우려를 하게 만들었다. 톨스토이는 마치 문학을 포기한 사람처럼 보여졌던 것이다. (<부활>은 이 고뇌 속에서 태어난다.)

이러한 심경의 변화는 그로 하여금 생의 마지막 날들까지 치열한 정직함과 순결한 신념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고뇌를 작중 인물들의 목소리를 통해 상상력으로 형상화하면서 면밀한 심리묘사로 삶의 진정성을 투사하는 한편, 역사적 탐색으로 성장의 고뇌를 겪는 젊은이들에게 확실한 비전을 보여주게 된다. 독창적인 형식의 전기 소설로 형상화한 그의 파란만장한 말년의 삶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슬프고 더 깊이 감동적이다.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은 거대하고 치열한 균열과 성찰의 틈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이러한 저자 자신의 만년을 들려주고 있다.

나는 중학생 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나타샤에게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나타샤가 겪는 난생 첫 무도회의 기쁨, 사랑, 그리고 그 사랑에 기대어 허물어진 겉잡을 수 없는 욕망과 몽상이 그러했다. 불이 켜진 크리스마스 이브에 눈덮힌 숲속을 썰매로 달리는 정경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으로 나를 흔들었다.

안나는 놀라운 정열로 이성이 마비되는 예술의 불가사의한 열정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오페라 극장에서의 밤의 사건과 그 사랑에 몸부림치는 육체의 열광도 아름다움이게 하였다. 넋을 정화시키는 순수이게 하였다. 그녀는 항상 부드러웠고 그녀의 내면은 생명이 고동치는 모습이었다.

나타샤의 그처럼 건강하고 줄기차게 흘러나오는 생명력이 바로 톨스토이의 최고의 眞이며 美인 것을 나중에 문학을 공부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톨스토이 기념관이 내게 낯설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송영옥 박사는

<한국수필>에서 수필로, <문단>에서 단편소설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국제 PEN클럽 정회원이다. 창작집으로는 <미운 남자>, <하늘 숲>, <해지는 곳에서 해 뜨는 곳까지>, <지구를 떠돌고 싶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와 영한시집 , 그리고 문학이론서 <기독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세종대,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경북대 대학원에서 헨리 제임스 전공으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7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Y's Man International에서 국제여성부장(International Director for Y'Menettes)을 두 차례 역임했고, 신문·잡지의 연재계약으로 전 세계 60여 나라를 여행, 문화 예술 기행을 했다. 현재 영남신학대학교 외래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