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영옥 박사.
쿠웨이트에서 보내 온 페티마 지지 여사로부터 이메일을 받던 날, 나는 한숨도 쉴 수가 없없다. 늦은 밤 그녀의 글을 읽었기 때문에 내 마음이 이런저런 생각에 얽혀 끌려 다니면서 결국은 삶과 죽음의 대주제 앞에 부딪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에 대한 이 맘은 단순히 감상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는 무게를 지녔다.

그녀의 글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시작되었고 구주 예수님의 선하신 목적을 위하여 메일을 보내는 것이라 하였다. 페티마는 쿠웨이트 대사관에 근무하는 오스만 지지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여 11년을 살았다. 그러다가 4년 전에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단 나흘 만에 일어난 일이라 하였다. 남편이 죽으면서 그곳 A은행에 $2.5 밀리언을 유산으로 남겼다. 이 구절 밑에 그녀는 “남편의 죽음으로 나는 주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맛보았고 중생했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그래서 재혼도 하지 않고 주 안에서의 새로운 삶의 기쁨을 누리고 살아왔다고 하였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녀는 의사로부터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길어야 8개월 정도의 생명밖에 남아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죽은 남편과의 사이에 자식이 없었던 그녀는 지금 친척들의 보살핌으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상황에 처하여 그녀가 결심한 것은 남편이 남겨놓은 그 돈을 기금으로 만들어 기부하겠다는 거였다. 양로원이나 학교, 교회, 그리고 미망인을 수용하고 있는 보호 시설, 아니면 복지재단 같은 곳에 돈을 헌납함으로서 남편의 이름을 기리고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 싶다고 하였다.

역시 이 구절 밑에도 “그리스도의 빚진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라고 덧붙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아시안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아시아 국가의 형제들에게 혜택이 가기를 바랬다. 그리고 돈을 헌납할 수 있도록 기관을 추천해 달라는 것이었다. 자신과의 연락은 반드시 메일로만 가능하다고 했다. 친척들이 그 돈을 탐내고 있다고 하였다. 기관을 추천해 주면 기금의 신빙성을 증명할 서류를 곧 보내준다는 얘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녀의 글을 읽고 나는 두 사람의 운명이랄까, 삶의 비운 같은 것에 너무 무겁게 짓눌렀다. 깊은 밤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또한 그토록 아름답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그녀의 믿음이 나를 크게 감동시켰다. 그같은 신앙이 내게는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녀의 소망이 부럽게 생각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녀의 신뢰와 절절한 사랑도 나를 감화시켰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우선 그녀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 맘이 아파서 눈물을 훔치며 얼마나 간절히 기도를 드렸는지…. 그 후 기금의 사용처를 생각하다가 우리 대학에 장학금으로 기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수하고 가난한 신학생들을 키운다면 그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다. 후일 그들은 모두 목사나 선교사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으니까.

기도를 마친 후에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메일을 썼다. 그 시간 내가 그녀에게 얼마나 깊은 사랑을 보내고 있는지, 그녀의 절대적 소망 앞에 내가 얼마나 경건한지, 그리고 오랫동안 예수를 믿었으면서도 그 같은 경지에 들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다는 얘기를 하였다. 그리고 기금 헌납을 위한 몇 가지 절차를 알려주었다. 그녀의 삶이 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어쩌면 은혜로 우리가 한 번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로 메일을 끝맺었다. 그러노라니 벌써 날이 밝아왔다. 이런 해프닝을 거친 일주일 후쯤 나는 비로소 그녀의 편지가 사기성 메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이해 할 수 없다. 어떻게 날아온 이메일 한통에 그렇게 감동하고, 또 감동받은 것에 그토록 성실할 수 있었는지를. 어떻게 한 인간을 그토록 직관적으로 신뢰를 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직관은 의심을 넘어서는, 판단하고 분석하고 선별하는 것은 물론 기술까지도 초월하는 마음의 상태이다. 조건 없이 마음의 생각을 몸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리스도의 내게 향한 마음이 바로 그런게 아닐까 한다.

때문에 지금도 페티마 지지의 사기성 메일을 생각하면 경악스럽고 그에 대한 내 반응을 짚어보면 너무나 코믹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속엔 한 폭의 그림에서 느끼는 평온한 아름다움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송영옥 박사는

<한국수필>에서 수필로, <문단>에서 단편소설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국제 PEN클럽 정회원이다. 창작집으로는 <미운 남자>, <하늘 숲>, <해지는 곳에서 해 뜨는 곳까지>, <지구를 떠돌고 싶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와 영한시집 , 그리고 문학이론서 <기독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세종대,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경북대 대학원에서 헨리 제임스 전공으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7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Y's Man International에서 국제여성부장(International Director for Y'Menettes)을 두 차례 역임했고, 신문·잡지의 연재계약으로 전 세계 60여 나라를 여행, 문화 예술 기행을 했다. 현재 영남신학대학교 외래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