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통신원] 집시들에게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류재광 기자  jgryoo@chtoday.co.kr   |  

헝가리 최영 집시 선교사로부터

▲체펠 마을 집시 가정의 난로의 모습

▲체펠 마을 집시 가정의 난로의 모습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경제 불황의 여파로 지난 연말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헝가리는 참으로 어려운 여건을 직면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IMF에 추가로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있지만 동유럽 헝가리 뿐 아니라 여러 나라들이 동시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IMF는 난색을 표하고 있으며 EU연합에 속한 서유럽의 나라들 역시 이웃 나라의 어려움들을 살필 여유가 없다.

만약 IMF에 다시금 요청한 구제금융을 받을 수 없고 EU연합에서도 헝가리의 어려운 형편을 외면하게 되면 디폴트(채무불이행) 수순으로 갈 것이라는 뉴스가 연일 나오고 있다. 사실 헝가리의 어려운 경제문제는 단지 헝가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웃 서유럽과의 복합적인 문제로, 경제의 회복이 헝가리 자체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닌 듯 싶다.

이러한 이유로 대다수 동유럽에 위치한 나라들의 형편이 비슷하지만 그 중에서도 헝가리의 경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더욱 악화된 형편이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재정지출을 줄이고자 사회, 복지 등에 관련한 보조금이나 연금수혜자들의 연금을 줄여가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헝가리에 있는 집시민족은 극빈층으로, 대다수가 국가에서 주는 보조금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집시들에게 그 동안 정부에서 지급해오던 유아 및 아동 보조금, 학비보조금, 실업자 수당 등의 보조금 등이 줄어들게 되자 많은 집시들은 당장 고리사채를 쓰는가 하면 외상으로 물건을 구입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난방이 필요한데 집시들의 가옥에는 가스나 유류를 이용한 난방을 사용하고 있는 가정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혹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소수의 집시 가정에서나 이러한 난방이 가동될까 대다수의 집시 가정들은 나무를 때서 겨울을 난다. 그래서 집시들에게 나무를 하고 장작을 패는 일은 겨울을 나는 동안 어린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늘 해야 하는 일이다. 아이들은 길을 지나다가 화목이 될 만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나무를 주워 집으로 가져가고 어른들도 이들의 교통수단인 자전거를 이용해 나무를 싣고 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집시들이 살고 있는 마을 주변을 살펴보면 천지에 널린 것이 나무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곳에서나 나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지방자치 단체의 소유이거나 개인 소유여서 이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나무를 하게 되면 불법이다. 만약 불법으로 나무를 하다 경찰에 적발되면 상당한 액수의 벌금을 내거나, 죄가 중하면 교도소에까지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루마니아 호닷 집시 마을의 겨울 전경

▲루마니아 호닷 집시 마을의 겨울 전경

겨울이 시작되면서 집시 남자들은 나무를 해야 하는데, 단속하는 경찰들의 눈을 피해서 나무를 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래서 시골 한적한 마을에서는 밤에 나가 땔 감을 구하기도 한다. 실례로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티사카라드 마을 집시 부자(父子)가 경찰들의 눈을 피해 한적한 밤에 나무를 베다가 나무가 넘어지면서 아버지를 덮쳐 허리를 다치는 중상을 당하게 된 경우가 있다. 또 어떤 집시는 요행이도 경찰에 붙잡히지 않고 불법으로 나무를 해서 제법 돈을 벌었다는 소문도 있다.

시골 마을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땔감이 될 만하면 무엇이라도 구할 수 있지만 도시에 살고 있는 집시들은 땔나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도시에 살고 있는 집시들은 평소에는 도시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그러나 겨울을 나는 동안에는 시골마을 보다 못한 것이 땔 나무를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경찰들이 도시로 들어오는 길과 나가는 길에 서 있다 보니 외부에서 나무를 해 올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어린 아이가 있는 어느 집시 젊은 엄마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옷가지를 태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집시선교를 위해서 도시에 위치한 집시 가정들을 방문해 보면 한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난방이 되지 않아 냉골인 방을 쉽게 볼 수 있다. 장작을 쌓아놓았던 바구니는 비어 있고 쌓아놓은 나무들을 보면 금세 타 없어질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몇 개 있을 뿐이다. 그것조차 밤에 불을 지피려고 아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긴 겨울 밤, 추위를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단잠을 잘 수 있는 것도 집시들의 삶에 비교해 보면 참으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금년부터 집시지도자로 임명하여 함께 집시선교 사역에 힘쓰고 있는 라슬로 형제는 지난 겨울 동안 산에 올라 나무를 베는 일자리를 얻었다. 라슬로 형제는 일한 노동의 대가를 현금으로 받는 대신 나무로 받았다. 일을 마치고 내려올 때는 자신의 급료 대신 받은 땔감을 자신의 차 화물칸에 가득 싣고 와 나무를 팔아 생계비에 보탤 수가 있었다. 아무튼 라슬로 형제는 나무를 베는 일자리를 얻은 덕분에, 겨울을 나는 동안 어느 집보다도 따뜻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했고 자신들을 위해서도 땔 감 때문에 걱정은 하지 않은 듯하였다.

어느 날 라슬로 형제와 함께 집시선교를 위해 샤토로야우이헤이라는 도시 인근 집시마을을 방문하던 중, 나이가 지긋하신 홀로 사시는 집시 할머니 집을 방문하게 됐다. 할머니의 방은 온기라고는 느낄 수 없는 냉골이었는데 추위로 인해서 몸도 마음도 굳어있는 형편을 보고 자신의 차로 땔감을 가득 실어 가져다 드렸다. 할머니는 라슬로 형제의 사랑에 감동하여 자신의 집에서 성경공부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또 다른 사례는 티사카라드 마을에서 집시지도자로 섬기고 있는 졸트 형제와 에리카 자매이다. 남편이 병으로 인해서 거동을 하지 못하는 집시 가정을 틈틈이 방문해서 장작을 패는 일을 도와줘 주위에서 크리스천의 모습을 실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겨울에 추위를 덜 느끼고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나는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말에도 “배부르고 등 따듯하고…….”라는 말이 있는데 아마도 “등이 따뜻하다”는 의미는 “추위를 느끼지 않고”라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된다.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본능적인 욕구는 “따뜻함”이 아닐까 싶다. 몸도 따뜻하고 마음도 따뜻한 삶, 누구나 동경하는 삶이라 생각하는데 집시 형제들의 손길을 통해서 자신의 민족인 집시들에게 “그리스도의 따뜻함”을 전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Rev. Choi, Young & Anna (최영 & 양안나)
주소: 3950, Sarospatak, Comenius Ut 24, Hungary
이메일: usmcy@hanmail.net/ usmc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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