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장)

예수의 복음 사역은 제자들을 부르심으로 구체화된다. 이들은 20대의 청년들이었다. 예수의 복음운동은 청년들의 운동이었다. 예수는 열두 청년들을 그의 제자로 부르신다. 이들 중에 많은 자들이 먼저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었다. 마태는 열두 제자들을 이름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마10:2-4).


주님이 사랑한 네 제자

베드로, 안드레, 요한의 형제 야고보, 요한은 주님이 사랑한 네 제자였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항상 열둘 가운데 예수의 수제자들로서 항상 예수와 함께 있었고 예수와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베드로는 그의 형제 안드레를 통하여 예수의 제자가 된다. 안드레는 베드로에게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요 1:41)고 전한다. 안드레는 분명히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드레의 믿음은 그의 스승 세례자 요한의 증거, 예수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증언을 듣고 생겨난다. 베드로의 본이름은 요한의 아들 시몬이었다. 그가 안드레에게 이끌려 예수께 오니 예수께서 시몬을 보시고 “네가 요한의 아들이나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신다”(요 1:42). 게바란 번역하면 베드로, 즉 반석이다. 베드로는 예수의 복음 사역에서 반석의 역할을 한 제자였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가장 힘든 순간에 스승의 뜻을 가장 잘 헤아리고 용기와 신뢰를 주는 제자였다. 후일에 예수는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5천명을 먹이신 후 왕을 삼으려는 군중들을 피하여 산으로 피하신다. 그리고 예수는 다시 자기를 쫓아오는 군중들에게“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5)라는 설교를 하신다. 이 기이한 설교를 듣고 많은 군중들이 예수를 떠난다(요 6:67). 그 때 예수는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너희도 가려느냐?”(요 6:67). 이 때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가 확고하게 예수에 대한 신뢰를 표명한다: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요 6:68). 가이사라 빌립보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예수의 질문에 대하여 베드로는“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는 신앙고백을 한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후에 세우지게 될 교회 신앙고백의 전형이 된다. 교회는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 즉 구세주로 믿는 신자들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다.

안드레는 베드로의 형제였다. 그는 베드로보다 먼저 예수를 발견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형제 베드로를 예수에게 데려왔다. 안드레가 아니었더라면 베드로가 기독교 역사에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안드레는 세례자 요한의 회개를 통한 부흥운동에 깊은 감동을 받은 청년들 중 하나였다. 그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로서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그의 스승이 한 말,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36)을 듣고 그의 친구와 함께 예수를 따른다. 안드레는 예수께 묻는다: “랍비여, 어디 계십니까?”(요 1:38) 예수는 대답하신다: “와 보라”(요 1:39). 안드레는 그의 친구와 함께 그날 예수와 함께 거한다. 복음서 기자는 이것이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예수와 함께 거한 시간이 “십시”(요 1:39), 즉 오후 4시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안드레는 나중에 예수의 복음 사역 중에 빈들에서 군중들이 시장하여 방황했을 때 어린 나이 추종자들이 가져온 떡 덩이를 찾아내어 예수에게 가지고 온 자였다(요 6:8). 안드레는 복음에 호감을 가진 헬라 사람들을 빌립과 함께 예수께 데리고 오는(요 12:20-22) 전도자의 역할을 하였다.

요한은 예수의 사랑을 받은 제자였다. 그는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자에 대하여 분개한 사람이었다(막 9:38). 그리고 주를 영접하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불을 내리기를 요구한 자였다(눅 9:54).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높은 자리를 탐한 사람이었다(막 10:35이하). 그러나 그는 예수에 대한 사랑을 변치않고 유지한 자이다. 그리하여 그는 “주의 사랑하는 제자”라고 불렸다(요 13:23). 그는 모든 제자들이 다 도망을 가고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어 운명하는 시간에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그 현장을 지킨 신실한 사람이었다(요 19:26). 그는 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세상의 마지막에 될 일, 즉 예수의 재림과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요 22장)에 관하여 하나님의 묵시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쓰는 영예를 얻은 자이다.

야고보는 세배대의 아들로서 그의 형제인 요한과 함께 한 자리에서 복음서에 두 번 나타난다. 그는 최초의 순교의 영광을 얻은 제자이다(행 12:2).

의심많은 도마와 세리 마태

도마는 의심이 많은 자였다. 예수가 수난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했을 때 제자들은 만류하였다: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요11:8). 그러나 도마는 대담하게 “우리도 주와 함께 즉으러 가자”(요 11:16)고 하였다. 그는 예수가 부활한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는 “내가 그의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0:25)고 의심하였다. 여드레 지난 후 예수께서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셔서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고 말씀하신다. 이 때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라는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한다. 의심많은 도마가 이 때 한 신앙고백은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한 베드로의 고백보다 더 인격적인 고백이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적 고백이었으나, 도마는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매우 실존적이고 인격적인 고백, 나사롓 예수와 자기와의 관계를 고백하였다.

마태는 세리였다. 그는 세무서에 앉아 있다가 그곳을 지나가시는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나를 좇으라”(마 9:9)는 부르심을 받고 예수를 좇았다. 당시 세리(稅吏)는 유대를 지배한 로마에 대하여 세금을 납부하여 주는 자로서 매국과 부패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세리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마태의 중심을 보시고 예수는 그를 제자로 부르신 것이다. 마태는 자기의 옛 생활을 청산하기 위한 표시로 연회를 베푼다. 그리고 그는 자기 친구들이 예수를 만나도록 이들을 초대한다. 그리하여 예수에게 “세리와 죄인의 친구”(마 9:10)라는 호칭이 붙여진다. 바리새인들의 이러한 힐난(詰難)에 대하여 예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신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마 9:12).

나머지 여섯 제자

나머지 여섯 제자는 복음서에 별로 기록이 없다. 빌립은 열심히 질문하는 사람(요 1:43 이하, 요 14:8이하)이며, 가나안 사람 시몬은 열심당이며 민족주의자이다. 가나안인 유다는 예수의 고별말씀을 듣고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요 14:22)라고 말한 자이다. 가롯 유다는 예수를 판 자(마 10:4)이다. 바돌로메(요 1:45이하), 다대오(마 10:2)는 이름만 언급되어 있는 자들이다.

열두 제자: 세상적으로는 천하거나 소외받는 사람들

이들 열두 제자들은 세상적으로 어부, 세리 출신으로 무식하거나 소외받는 자들이었다, 예수는 이러한 세상의 천한 사람들을 택하시어 하나님의 나라 복음의 사역을 이루시고자 하신다. 열두 제자들은 각기의 특성을 가진 여러 지방 출신의 사람들이었다. 예수는 이들을 택하여 자기의 제자로 삼으시고 그의 복음의 사역을 시작하셨다. 예수는 그를 추종하는 많은 제자들 가운데 이 열둘을 사도로 선정하여 이들을 갈릴리 지역의 선교를 위하여 파송하였다. 열두 제자들은 둘씩 짝지어 여행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열두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와 숙식을 같이 하면서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받는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가 누구이신가를 알기에 이른다. 나사렛 예수의 역사성과 진실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자는 역사적으로는 예수와 같이 기거하고 생활하면서 가르침을 받은 이 열두 제자들이다. 이들 가운데 나사렛 예수에 대한 전기(傳記)로서 복음서를 집필한 자는 마태와 요한이다. 누가복음을 저술한 누가는 복음사역에 있어서 바울의 동역자(사도행전)였다. 누가는 바울로부터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난 생생한 체험을 들었다, 마가복음을 저술한 마가는 바울의 동역자(행 2:12, 행 13:5, 행 15:36-39) 그리고 베드로의 동역자(벧전 5:13)로서 베드로로부터 역사적 예수에 관한 생생한 자료를 듣고 복음서를 집필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제자들 및 제자들의 증언에 기초하여 기록된 사 복음서는 역사적 예수의 진실성에 접근하는데 가장 귀중하고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는 역사적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 운동은 제자운동

나사렛 예수는 그 시대의 엘리트를 택하거나 세상적으로 학식이 많은 자들을 택하지 않았다. 예수는 세상적인 기준에서 볼 때 천하고 무식하거나 멸시받는 사람들을 부르시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일꾼이 되게 하셨다. 예수는 바리새인들이 세리와 죄인들을 제자로 부르심에 대하여 힐난하신 것을 들으시고 말씀히신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 하나님 나라 운동은 제자운동이다. 하나님 나라는 천한 자들이 부르심을 받아 거룩하게 되는 운동이다. 죄인이 부르심을 받아 칭의(justification)를 받는 운동이다. 지식인의 운동이 아니라 순수한 자의 운동이다. 이념인의 운동이 아니라 부름받은 사명자의 운동이다.

하나님 나라 운동에는 지식이나 이념이나 재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헌신(commitment)과 소명(mission)과 결단(decision)이 필요하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눅 5:10). 이러한 제자들의 태도에 관하여 누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눅 5:11). 제자들은 자기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좇았다. 예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를 따른 이들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다. 이들 젊은이들은 여태까지는 생계를 벌기 위하여 살았다. 그런데 이 젊은이들은 나사롓 예수를 만나 그의 복음을 듣고 난 후 소명과 헌신의 사람이 되었다. 이들은 자기만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도록 하는 제자운동하는 자가 되었다.

하나님 나라는 제자운동이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종교인이 되거나 어느 교파에 소속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인격적으로 영적인 실재로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에 속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 나라가 바로 나사렛 예수의 인격 속에서 실현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은 나사렛 예수를 영접하고 그와 동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