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신학대학원 개원 기념식 이후 김영한 원장(좌측에서 세번째), 당시 어윤배 총장(좌측에서 네번째) 등이 축하케익을 자르고 있는 모습.

올해로 개원 10주년을 맞은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은 원장인 김영한 박사를 중심으로 한 많은 교수진 및 관계자들의 노력과 눈물의 기도로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


동 대학원의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숭실대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았던 1997년부터 시작됐다. 현 원장인 김영한 박사는 당시 암수술을 한 뒤 6개월간 항압요법을 받는 등 생사의 고비를 간신히 넘긴 상태였다.

20년간 숭실대 교목으로 있었던 김영한 박사는 기독교대학인 숭실대에 신학과 및 신학대학원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꿈이 이뤄지지 못했는데 벌써 데리고 가십니까. 한스럽습니다”라고 기도했다. 김 박사는 당시 기도에 대해 “숭실에서의 내 존재 이유란 ‘신학적 실존’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이에 김영한 박사는 1997년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숭실의 기독교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을 다시 신청했다. 이미 이전에도 수 차례 시도했지만 번번히 무위로 끝났던 일이었다. 그러나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장이던 김 박사는 당시 기독교사회연구소장이던 철학과 이삼열 교수와 함께 교육부 장관을 찾아가 이 대학원 설립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결국 그 해 10월 24일 설립 인가를 얻기에 이르렀다.

이후 동 대학원은 신학과는 김영한 박사, 목회상담학과는 당시 사회복지학과에 봉직하던 박종삼 교수, 기독교사회학과는 당시 철학과 이삼열 교수가 주임을 맡아 총 3개 학과 45명 정원의 규모로 역사적인 출범을 했다. 당시 45명을 뽑는데 근 250여명이 몰려와, 교수들은 환호하는 동시에 “이렇게 반응이 좋은데 왜 우리 숭실은 스스로 자신의 전문성을 여태까지 외면해 왔던가”라고 자문했다.

이로써 숭실대 역사상 100년 만에 기독교 신학 관련 대학원이 생기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그 다음해에 기독교학과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김 박사는 “히스기야의 병상에서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서 암의 시련과 고통 가운데서 드린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주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10주년을 맞은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개원기념예배에서 이사장 박종순 목사, 총장 이효계 박사, 신대원장 김영한 박사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송경호 기자
동 대학원은 2000년 3월 기독교문화학과를 설립해 15명 증원을 인가받아 60명 정원으로 4개 학과가 됐고, 2008년 3월부터는 기독교사회복지학과를 개설해 5개 학과로 운영되고 있다. 대학원 차원에서 기독교문화학을 가르치는 유일한 기독교대학원이 됐을 뿐더러, 설립이념인 사회봉사신학을 효과적으로 실천하고 이에 필요한 인물들을 배출하기에 이른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기독교학대학원은 총 318명의 석사학위 동문을 배출했고, 이들은 초교파적으로 한국교회 여러 교단에서 소장 및 중견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기독교학대학원은 111년 전 자신의 사랑방에서 숭실학당을 시작한 선교사요 학자인 배위량(Baird) 목사의 헌신적인 청교도 신앙과, 1938년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학교의 문을 서슴지 않고 닫았던 윤산온(McCune) 목사의 순교적신을 신학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현재 이 대학원에는 150명의 원우들이 목회의 새로운 비전을 발견하기 위해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 신학적 비전으로는 복음주의적 교회연합적인 영성신학, 성경중심의 종교개혁적인 문화변혁신학, 목회 및 선교지향적 사회봉사신학을 연구하고 교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