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장)

세례자 요한이 수감된 후에 예수는 그의 복음 전파사역을 갈릴리에서 시작하신다. 예수 자신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나 쿰란공동체처럼 예수와 제자들은 금욕적 생활을 하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예수는 세례자 요한과 비교하여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기는 자”라는 평가를 받았다(마 11:18-19). 역사적 예수는 그의 복음사역에 방해가 되는 한 당시 유대인들처럼 안식일 법을 엄격하게 준수하지 않았다. 예수는 유대교적 제의에서 나오는 사고의 굴레들을 깨뜨려 버린 것이다.


소외된 지역 갈릴리

나사렛 예수의 복음 전파사역은 쿰란 공동체의 종말론적 하나님의 도래에 대한 기대 속에서, 그리고 세례자 요한의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라”는 메시지의 종말론적 선교사역의 지평 속에서 보다 역사적인 삶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수 자신은 당시의 경건한 사람들처럼 세례자 요한의 설교를 듣고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예배하고 회개의 표로써 세례를 받기 위해 요단강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예수는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는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활동했던 것과는 달리 나사렛 예수는 마을의 일반 공중에게 나아가 복음을 전파하였다. 광야란 예수에게 일시적인 은둔과 연단의 장소이자 하나님과 교통하는 장소였다.

유대 북쪽에 위치한 갈릴리는 당시 유대에서 소외된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위대한 사람의 고향일 수 없고 그들이 활동할 곳이 되지 못했다(요 1:46, 요 7:52). 갈릴리는 이방인의 지역이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흑암에 앉은 백성”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마 4:16)이라고 예언자 이사야 때부터 일컬어졌다. 예수님은 바로 소외된 계층이 사는 이 지역에서 복음 전파를 시작하셨다. 그것은 마치 한국교회 초기 양반들이 주로 살았던 영남 지역보다는 상인들이 많이 살았던 평안도 지역에 복음이 먼저 전파된 것과 같다.

하나님 나라의 선포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나사렛 예수는 그의 복음 전파사역을 시작하신 것이다. 갈릴리에서 복음 전파사역을 시작하였을 때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복된 소식을 선포하였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이것은 나사렛 예수의 복음의 메시지였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 인간의 무력봉기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열심당원들이 가졌던 무력 사용 방법을 따르지 않았다. 예수가 복음사역을 시작하신 갈릴리 지역은 지리적으로 로마의 정치권력으로부터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북쪽지역이었다. 예수는 나중에는 로마의 정치권력이 직접적으로 미치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신다. 수많은 민중들이 예수를 따른다. 그래서 유대의 종교 지배계급은 위협을 느끼고 새 교리를 설교하는 예수를 없애고자 모의한다. 그리하여 예수는 백성을 선동하고 미혹한다는 고발을 받고 로마 통치를 대신하는 총독에 의하여 십자가 처형을 받게 된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그의 메시아 사명의 완수였다. 예수의 메시아상은 영광의 메시아가 아니라 고난의 종이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된 소식

헤롯에 의하여 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은 예수가 복음을 전파한다는 소식을 제자들로부터 듣고 예수에게 자기 제자를 보내어 묻는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눅 7:19). 그 때에 예수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질병과 고통 및 악귀 들린 자들 많이 고치시며 많은 소경을 보게 하시고(눅 7:21) 대답하신다: “너희는 가서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눅 7:22).

예수는 안식일에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 안식일의 규례대로 이사야의 글을 찾아 읽으신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사 61:1, 눅 4:18-19). 예수는 이사야의 예언이 오늘 그의 복음 전파사역에서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1). 예수는 구약 예언이 자기의 복음 전파사역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선언하신 것이다. 누가는 역사적 예수가 가진 메시아 의식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적 예수가 스스로 선언하신 메시아적 자의식이다. 예수는 자신의 복음 사역이 구약 예언자들의 전통에 기인하고 있으며, 복음이 세상적인 특권 계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위한 것이라고 선언하고 계신 것이다.

가난한 자에 대한 편향은 성경적 종교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가난한 자들은 그들의 빈곤에 대해 유대사회로부터 유익을 받지 못했다. 때문에 하나님은 사회 구성원의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특별한 보호를 명하신다. 재판관들은 가난한 자와 과부나 고아 같은 보호자가 없는 사람들의 송사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구약 잠언기자는 다음같이 말한다: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은 하나님에 꾸어주는 것이라, 그가 그의 행실에 대하여 갚아주시라”(잠 19:17). 이런 맥락에서 예수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눅 6:20)라고 산상설교를 하실 때에 전정한 예언자의 전통에 서 계신 것이다.

죄인들의 친구

예수는 유대인 가운데 소외되고 멸시받는 세리와 창녀들에게 회개의 복음을 전했고, 저들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었다. 이들은 당시 경건하고 존경받는 사람들로부터 도덕성의 울타리에 의하여 격리를 당하는 자들이었다. 경건한 사람들이 세리들과 창녀들과 접촉하게 될 때 이들은 순결성을 훼손당하고 경건한 사람들의 공동체에 속할 권리마저 박탈당할 수 있는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쿰란 공동체의 경우에는 정회원으로 가입하려는 지원자가 3년 동안 훈련을 받은 다음 비로소 정회원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때까지는 부정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예수는 세리들과 함께 지내고 세리 중 한 사람인 마태를 직업을 그만두게 하고 제자로 삼았다(마 9:9-10). 사회적으로 소외받은 계층들과 예수의 이례적인 사귐은 당시 바리새파와 에세네파에 속한 유대인들에게 충격이었고 이들은 매우 못마땅히 여겼다. 이것이 역사적 예수의 독특성이었다. 이것이 바리새파와 에세네파 사람들이 예수와 외적 정결의식에 관하여 논쟁을 유발시킨 것이 되었다(막 7:1-23).

예수는 그의 십자가에서의 숙명적인 죽음에서 조차 두 강도와 같이 있었다. 그는 죽음의 순간조차도 죄인들의 친구가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언자 이사야는 이미 그의 예언서에 다음같이 기록하였다: “그가 범죄자중의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사 53:12). 그래서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가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이들과 같이 식사하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힐난한다: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이에 대하여 예수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고 대답하셨다.

고난의 종

나사렛 예수는 섬기고 자신을 희생하고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것이 그의 삶이었고 그는 영광의 길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나사렛 예수는 자신을 고난의 종으로 이해하였다. 마가는 이러한 예수의 자의식에 대하여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막 10:45). 이러한 역사적 예수의 메시아적 자의식이란 당시 유대인들이 기대하였던 유대 왕권을 배경으로 하는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하는 정치적인 영광의 메시아나, 구름을 타고 오는 묵시록적 인자가 아니었다. 역사적 예수가 지닌 메시아 의식이란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는 고난의 종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