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강변교회원로/선교목사, 한복협 회장).
나는 故 최진실씨를 잘 알지는 못한다. 예쁜 얼굴과 해맑은 미소를 지닌 국민배우라는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런데 TV와 언론에 보도된 고 최진실씨의 죽음에 대한 국민적 충격은 가히 공황적이었다. 모두들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며 오열하고 있었다. 나도 안타까움과 슬픔을 가슴에 지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래도 그러지는 말았어야지!” 모두들 안타까워하며 오열했다. 나는 고 최진실씨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서 혼자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좀 가까이 있으면서 따뜻한 이해와 동정과 사랑과 격려의 손길을 펼 수 있었더면 좋았을텐데…”


왜 최근에 연예인들의 자살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을까? 그리고 죽음의 길을 택한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신자들이었다고 하는데 왜 그랬을까? 오늘의 세상이 너무 현세적인 화려한 성공과 인기를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의 교회도 덩달아 현세적인 화려한 성공과 인기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데 현세적인 화려한 성공은 매우 위태로운 것이다. 허무하기도 하다. 연예들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다. 목사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라는 말을 만들어서 혼자서 중얼거리곤 한다.

현세적인 화려한 성공 추구의 삶은 무정하고 외롭고 냉혹하고 잔혹하다. 고 최진실씨는 “외톨이, 왕따, 섭섭한 세상, 숨 쉴 수 없다, 너무 힘들다, 죽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화려한 성공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가 너무 무정해지고 냉혹해지고 잔혹해진 것 같다. 돈이 제일이고 공부가 제일이고 성공이 제일이고 남보다 앞서는 것이 제일이다. 학교에서도 따뜻한 우정이나 존경심이 사라지고 살벌한 경쟁심과 반항심이 자리잡고 있다. 교회는 어떠한가? 소박하고 따뜻한 눈물섞인 이해와 동정과 교제와 사랑과 격려와 붙들어줌보다는 말과 감성과 음악과 프로그램과 행사가 풍성한 연예 장소로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의 한국교회는 피상적이고 형식적이고 감성적이고 물량적인 데 치우치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한 영혼과 사회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을 솔직하게 뉘우쳐야 할 것이다. 교회의 본질인 눈물과 회개와 성결과 용서와 사랑과 포용과 진실한 삶을 그 중심에 지녀야 할 것이다. 무정하고 냉혹한 현세적 삶에 지쳐서 쓰러져 있는 불쌍한 영혼들을 눈물과 이해와 동정과 사랑의 손길로 끌어안고 십자가의 복음을 통한 사죄와 구원의 기쁨을 전해주고 그리고 삶의 의미와 보람과 가치관을 심어주도록 새로운 각오를 다짐한다면, 오늘의 공허하고 공황적인 죽음의 충격이 차츰 삶의 의미와 가치를 되찾게 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작년 4월 미국 버지니아텍에서 일어난 33명 살인사건의 주범 조승희씨를 강도에 비유하는 대신, 21세기의 황금 만능주의, 향락주의, 이기주의, 무관심주의란 강도에게 맞아서 죽게 된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강도 만나서 죽어가던 조승희씨에게 관심과 사랑의 손길을 펴지 못한 것을 뉘우친다고 말한 조용기 목사의 고백을 들으면서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은 일이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 안에는 무정하고 냉혹하고 잔혹한 21세기 물질문명의 틀 안에서 상처를 입고 세상을 원망하면서 죽어가는 영혼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이제 관심과 눈길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성공으로부터 눈길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낮은 데로 어두운 데로 탄식이 있는 데로 울음이 있는 데로 관심과 눈길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8년 10월 3일 늦은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