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선교 목사, 한복협 회장, 합신 명예교수)

나는 지난 2007년10월 22일 저녁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글을 썼다. 그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어린 아들 철원이를 비롯해서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중에 몇 사람들의 이름만 적어본다. 우선 박윤선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가식과 꾸밈이 없는 분이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하고 소박한 미소를 지닌 분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특별한 믿음과 사랑과 애정을 나타내 보이신 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나에게 자주 말씀하시던 분이었다. 그분은 무엇보다 기도와 말씀과 하나님께 사로잡혀서 사신 분이었다. 나는 박목사님이 세상에 계시던 마지막 한 주간 목사님을 매일 찾아 뵈면서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나는 지금 박윤선 목사님이 보고 싶다.” 그리고 그 글은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나는 장경재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나는 한경직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나는 김치선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나는 이성봉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나는 강원용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나는 이중표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나는 지난 2008년 8월 31일 밤 갑자기 “주님 앞에 섰을 때의 나의 모습”이란 제목의 글을 썼다. 그 글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저는 얼마 전에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가 앞으로 아버지 집으로 올라가서 주님 앞에 섰을 때 나의 모습이 어떠할까? 기뻐 뛰는 모습일까? 소리 지르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모습일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리 없이 흐느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송하고 부끄럽고 고마워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평생 사는 동안 주님 위해서 산다고 떠들었지만 사실은 불순종과 정욕과 위선과 교만으로 가득했던 것을 되돌아 보면서 얼굴도 들 수 없고 입도 열수 없어서 그저 고개를 떨구고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를 주님의 입에서 토해 내지 않으시고 한 평생 붙드시며 사용하셨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부끄럽고 너무 죄송하고 너무 고마워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흐느껴 우는 그런 모습이 주님 앞에 섰을 때의 나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치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죄인인 한 여인이 눈물을 쏟으면서 그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셨듯이 나도 그런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글은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저는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 그리고 길선주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등 신앙의 선배들 앞에 무릎을 끓고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표시하고 또 표시하는 나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내가 지옥의 형벌에 떨어지지 않고 아버지 집으로 올라오게 된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과 자비와 은혜와 사랑 때문이지만 둘째는 신앙의 선배들이 나의 몸과 영혼에 심어준 회개와 믿음과 눈물과 사랑의 씨앗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글은 내가 너무너무 부끄러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다가 어머니와 아버지와 어린 아들과 가족들과 사랑하는 성도들을 만나 너무 반가워하고 행복해 할 것이라는 글로 이어졌고 마무리 되었다. “저는 너무너무 부끄러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울다가 너무너무 반갑고 너무너무 고마워서 소리 내어 웃으면서 행복해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토록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지혜와 권능과 위대하심을 무릎을 꿇고 두 손 높이 들어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또 찬양할 것입니다.”

여기서 내가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박윤선 목사님은 이 세상에서의 나의 삶의 의식 중에는 물론 저 세상에서의 나의 삶의 의식 중에도 언제나 그 중심에 자리잡고 계신다는 것이다. 나는 지난 10여년 동안 설교를 준비할 때 다른 사람들의 주석은 거의 보지 않았지만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은 가끔 찾아보곤 했다.

나는 지난 2006년 10월 박윤선 목사님을 기리면서 “하나님께 붙잡힌 기도와 말씀의 사람 박윤선 목사님”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일이 있는데 그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지난 30여 년 동안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분은 나의 스승 박윤선 목사님이시다. 나의 한 평생에 있어서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등이 나에게 깊은 신앙적 감화를 미친 분들이지만, 박윤선 목사님은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분으로 내가 가장 존경하고 가장 좋아하는 목사님이 되셨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는 언제나 박 목사님과 상의하곤 했다. 박 목사님도 나를 퍽 좋아하셨다. 박 목사님은 시간에 상관 없이 나에게 전화를 거시고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곤 했다. 때로는 질문도 하셨고 때로는 ‘이 말은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마’ 라고 하시면서도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곤 했다. 나는 박 목사님이 언제나 좋았다. 신앙적 감화와 인격적 감화 때문이었다. 박 목사님은 인간적으로는 소년처럼 단순하고 순박하고 정다웠고 신앙적으로는 하나님만 아시는 분이었고 하나님께만 붙잡혀 사신 분이었다.”

“나는 마지막 1주일간 세브란스 병원에 계신 박 목사님을 거의 매일 찾아 뵙곤 했는데 그때야말로 기도로 일관한 기간이었다. ‘산에 가서 기도하다가 죽고 싶다’고 고백하시기도 했다. ‘소위 박 목사의 의를 제해 달라’고 호소하며 기도하시기도 했다. 박 목사님은 결국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라고 부르짖으며 주님 품에 안기셨다. 박 목사님은 기도로 일관된 삶을 사신 분이었다. 박 목사님의 삶은 평생토록 말씀을 사랑하고 연구하는 주경 신학자의 삶으로 나타났다. 박 목사님의 삶은 또한 겸손과 진실과 착함의 인격으로 나타났다. 그의 얼굴에는 항상 잔잔하고 순박한 소년의 미소가 깃들어 있었고 가식이나 꾸밈을 모르는 진실이 풍기고 있었다. 박 목사님은 또한 인간 관계나 교파 또는 문화적 관계에 있어서 폭 넓은 이해와 시야를 가지고 계셨다. 여성 사역에 있어서도 개방적인 입장을 취했다.”

“박 목사님은 개혁주의적 삶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었다. 하나님 중심적 뜨거운 신앙과 삶의 원리로 나타남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칼빈주의 신학은 배타적 분리주의가 아니라 적극적 포용과 교제의 삶인 것을 나타내 보여주셨으며 세상사에 무관심한 반 문화주의가 아니라 구제 사역과 선교 사역 등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는 문화 변혁주의인 것을 가르쳐 주셨다. 나는 나의 평생에 하나님과 기도와 말씀에 붙잡혀 사신 나의 스승 박윤선 목사님을 만나게 하시고 그 분과 함께 일하게 하시고 그 분으로부터 배우게 하시고 그리고 그 분의 사랑을 받게 하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나의 스승 박윤선 목사님께 무한한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표한다. 박 목사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나는 지금도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고 좋아하던 박윤선 목사님이 보고 싶다. 시인 고훈 목사는 한경직 목사님이 세상을 떠난 후 한 목사님을 목이 메어 부르면서 다음 다음과 같이 그의 허전함을 토로한 일이 있었다. "아무 말 없으셔도 무슨 일 안 하셔도 당신은 우리의 힘이셨습니다. 한 사람을 만인만큼 소중하게 만인을 한 사람 대하시듯 어떤 요구에도 거절 못하시고 누구의 의견에도 손들어주시고 단 한 사람에게도 섭섭함 주신 일 없으신 한국의 성자여! 한국의 작은 예수여! 모든 것 가지고도 아무것도 없으신 가난한 목자, 아무 것도 없으면서 모든 것 다 가지신 사랑의 목자여. 우리가 오늘 여기 이토록 슬픈 것은 아무리 둘러봐도 당신 같은 목자는 하나도 없는 이 텅 빈 세상이 너무 슬퍼서 입니다."

나도 지금 고훈 목사와 비슷한 심정으로 박윤선 목사님을 애타게 그리워한다. “목사님은 아무 말 없으셔도 무슨 일 안 하셔도 우리의 본이셨고 우리의 위로와 힘이셨고 우리의 즐거움과 기쁨이셨습니다. 목사님은 진실이 무엇인지를, 겸손이 무엇인지를, 믿음이 무엇인지를, 사랑이 무엇인지를, 소망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 이토록 허전하고 슬픈 것은 아무리 둘러봐도 목사님 같은 목자가 없는 텅 빈 세상이 너무 슬퍼서 입니다. 목사님 보고 싶습니다. 목사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