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장).

나사렛 예수의 역사적 실재성을 나타내는 역사적 증거 가운데 하나가 예수의 족보이다. 예수가 족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인물임을 가장 명확히 말하는 것이다. 족보는 가계보로서 가문의 혈통을 나타내는 사회문화적 전통이다. 마태와 누가는 그들의 복음서에 예수의 족보에 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마태와 누가가 예수의 족보를 작성한 것도 족보를 중시하는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른 것이다. 유대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을 언급할 때는 그 사람의 아버지, 할아버지 등 직계 혹은 방계의 몇 대를 언급하는 관습이 있다. 이것은 특히 구약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요셉의 아들 므낫세 종족들에게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찾아왔으니 그의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민 27:1).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습 1:1)

유대사회에서는 족보는 “신원 확인”의 역할을 하였다. 나사렛 예수의 경우에는 신구약 성경 몇몇 곳에서 아예 긴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 한 예로 마태는 긴 족보를 바로 복음서 첫 부분에 삽입하였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의사 누가 역시 전혀 기억도 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누가복음 3장의 족보에 길게 삽입하였다. 마태나 누가는 처녀로 잉태된 예수를 유대인들이나 그 시대 사람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긴 족보를 복음서의 첫 부분에 삽입한 것이다. 이 족보는 나사렛 예수의 역사적 실재를 증언하는 것이다.

마태복음의 족보

마태는 그의 복음서 시작에 “아브라함과 다읫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마 1:1)라는 제목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그는 유대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마태복음의 족보는 법정족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태는 예수가 이스라엘 출신임을 증명하려는 것보다는 이스라엘의 전체 역사가 예수 안에서 성취된다는 것을 전하고자 한다. 특히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신 약속이 예수에 이르러 성취되었다는 것을 증언하고자 한다. 마태 글의 제목은 정확하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관한 책이다. 말하자면 예수의 계보 책, 또는 예수의 출신에 관한 책이다. 글의 제목은 마태복음 전체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계보 내지 예수의 탄생 이야기까지만 해당된다.

마태는 법적 아버지인 요셉을 족보에 기록하고 있다. 마태는 족보를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에 이르는 내림차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마태는 누가 누구를 “낳고”라는 형태로 내려가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족보를 42대로 잡고 있지만, 구약에 등장하는 많은 왕들과 영웅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마태복음의 족보에는 마리아와 같이 “정상적”이 아닌 방법으로 아이를 낳은 다말, 간통녀 밧세바, 이방출신 룻과 같은 여인이 있다. 이런 여인들은 과거가 있는 여인으로서 보통사람 같으면 족보에 넣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마태는 의도적으로 넣었다.

누가복음의 족보

누가는 예수로부터 시작해서 아담까지를 오름차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누가는 아담으로부터 예수님에 이르는 총 대수를 75대로 기록하고 있다. 누가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족보도 42대가 아니라 55대로 소개하고 있다. 누가는 누구의 “아들”이란 형태로 올라간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인물들, 특히 다윗과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 사이에 있는 40명의 인물은 거의 들어보지 못한 인물들이다. 그래서 누가족보는 형통족보라고 한다. 누가는 아담에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는 예수가 가져다 주는 구원은 온 세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가 아담의 후손인 것을 말하고 있다. 인류 전체와 예수의 깊은 연대성을 말한다. 22절의 요셉의 아들인 예수는 38절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한 아담에게까지 소급한다. 23절에 “사람들의 아는대로 요셉의 아들이니”라는 표현은 예수의 처녀 출생에 대하여 특별한 사정을 고려한 표현이다. 이러한 특수한 예수의 출생은 바로 다윗을 거쳐 아브라함과 아담을 거쳐 하나님에게까지 거술러 올라간다. 이것은 누가복음 족보의 독특성이다. 누가는 마리아를 족보에 기록하고 있다. 아담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인류의 전 세대의 운명을 전환 시킬 것이다.

누가는 이 족보 서술에 있어서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삽십세쯤 되시니라”(눅 3:23절상)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30세의 나이란 이스라엘에서 다른 위인들도 역시 그들의 일생의 사업을 착수할 나이다. 요셉은 30세에 이집트의 국무총리가 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요셉이 애굽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삽십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창 41:46). 다윗도 삼십세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다스리기 시작하여 70세까지 통치한다; “다윗이 30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년을 다스렸으되”(삼하 5:4). 나사렛 예수도 유대의 전통에 따라서 30세에 그의 공생애를 시작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기록이 나사렛 예수의 생애가 구체적인 역사적 실재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누가는 들어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두 족보의 차이점과 공통점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는 몇 가지 점에서 상이하다. 첫째, 마태의 족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에 이르는 내림차순으로 기록되어 있는 반면, 누가의 족보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담까지를 오름차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마태는 누가 누구를 “낳고”라는 형태로 내려갔고, 누가는 누구의 “아들”이란 형태로 올라갔다. 이것은 다만 기록 양식의 차이일 뿐 족보 자체는 다르지 않다.

둘째, 두 사람이 족보를 기록하는 순서와 인물들이 다른 것은 물론 총 대수(代數)도 상이하다. 마태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까지의 족보를 42대로 잡고 있다. 그러나 누가는 아담으로부터 예수에 이르는 총 대수를 75대로 기록하고 있으며,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까지의 족보도 55대로 소개하고 있다.

셋째, 마태는 구약에 등장하는 많은 왕들과 위인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이에 반해 누가는 들어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즉 마태복음에 기록된 인물들은 대부분 구약성경에서 이미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누가복음에 기록된 인물들, 특히 다윗과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 사이에 있는 40명의 인물은 거의 들어보지 못한 인물들이다. 도대체 어떻게 한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이렇게 다른 조상들을 기록할 수 있을까?

히브리인들은 족보를 기계적으로 기록하기보다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사람들을 생략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실수로 일부 세대를 빠뜨린 것이 아니라 성경기자의 기록 목적에 따라 의도적으로 한 세대 혹은 여러 세대들을 생략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누가복음 3장과 마태복음 1장, 창세기 5, 10-12장, 역대상 1-10장 등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이다.

마태와 누가의 족보기록에서 한 가지 공통점은 두 사람 다 자신이 소개하고 싶은 예수의 모습을 고려해서 족보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왕으로서의 예수를 소개하고자 했던 마태는 예수의 왕통을 강조하기 위해 누가가 기록하고 있지 않는 다윗으로부터 솔로몬, 르호보암을 거쳐 남쪽 유다의 여러 왕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고, 또 왕들은 아니라 할지라도 구약에 등장하는 여러 큰 인물들의 이름을 예수의 족보에 삽입하고 있다.

이에 비해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고자 했던 누가는 다윗까지는 동일하지만 다윗 이후는 구약 성경에서 듣도 보도 못한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다. 사람으로 오신 메시아 예수를 강조하고자 했던 누가는 다윗 다음으로 솔로몬이 아닌 나단(나단 선지자가 아닌 것이 분명)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 이후 등장하는 맛다다, 멘나, 멜레아, 맛닷, 요림, 에르, 엘마담, 고삼, 앗디, 멜기 등등도 전혀 구약에서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물론 누가가 예수님의 족보에 삽입하고 있는 요셉, 유다, 시므온, 레위 등도 열두 지파와 무관한 사람들이다.

인물중심의 족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족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족보기록이 매우 선택적임을 지적할 수 있다. 마태복음 1장 8-9절에 보면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역대상 3:11-12절을 보면 “그 아들은 요람이요 그 아들은 아하시야요 그 아들은 요아스요 그 아들은 아마샤요 그 아들은 아사랴요 그 아들은 요담이요”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다음 두 구절을 보면 웃시야와 아사랴는 동일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유다 온 백성이 아사랴로 그 부친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 때에 나이 십륙세라.”(왕하 14:21); “유다 온 백성이 웃시야로 그 부친 아마샤를 대신하여 왕을 삼으니 때에 나이 십륙세라”(대하 26:1). 따라서 마태는 그의 독자들이 요람이 웃시야의 고조 할아버지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가정을 하고 요람 이후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 등 세 사람을 생략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고냐에서 스룹바벨에 이르는 족보를 보더라도 마태는 스알디엘만을 기록하고 있는데 역대상에는 스알디엘은 없고 대신 시드기아와 브다야가 등장한다.

둘째, 족보에 사람들을 선택적으로 넣게 되니 당연히 성경기자에 따라 족보의 대수도 달라진다. 예를 들면 마태는 다윗으로부터 바벨론 이거까지 14대라고 기록하고 있지만(마 1:17) 실제로 다윗으로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하는 유다 최후의 왕 시드기아까지는 14대가 아니라 22대이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를 열왕기상, 하에 기록된 유다왕 계보와 비교해 보면 마태는 아하시아, 아달랴, 요아스, 아마샤,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시드기야 등 7명의 왕들을 아예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

성경 기자는 족보를 기록할 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인물들만 선별적으로 포함시켰다. 이는 성경의 족보에서는 기록자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을 생략하는 것이 매우 일반적임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레위로부터 모세까지는 43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출애굽기 6장이나 역대상 6장에서는 레위->고핫->아므람->모세 등 4대만을 연결시키고 있다. 또 역대상 7장에서는 레위의 조카인 에브라임으로부터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 자손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여호수아까지를 10대로 기록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성경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인물들을 족보에서 생략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성경의 족보에는 필요한 사람들, 특히 기록자가 생각할 때 의미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만을 선별해서 기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성경의 족보 기록은 역사 교과서처럼 엄밀하게, 그리고 기계적으로 족보를 기록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의미 있고 중요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기록된 족보를 아래에서는 “위인 족보”(Heroic Genealogy)라고 부르기로 한다.

족보가 갖는 함축성: 성육신의 실재성과 계시의 연속성

첫째, 족보는 나사렛 예수가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육신의 실재성을 말하는 것이다. 족보는 아담에게까지 거술러 올라간다. 예수가 실재 아담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성경의 족보에 소수의 “위인들”만을 기록했다는 것은 할아버지가 손자를 낳았다고 기록하기도 하는 히브리인들의 족보 기록 관습으로 생각해 볼 때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히브리어로 아들 ‘벤’(ן󰔲 bên)이란 단어는 “아들”이란 뜻으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손자, 아니 몇 대 아래 후손을 나타낼 때도 사용된다

유대인들의 조상-자손 동일시 관습은 복음서에서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유대인들에게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담대하게 도전하였다(요 10:30). 이것은 자신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한, 나아가 하나님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생각하며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둘째, 마태의 족보는 계시의 연속성을 말해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문전에 서 있다. 그러나 과거와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나사렛 예수는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메시야이며, 다윗왕권의 참 후계자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모든 약속의 상속자이다. 누가의 족보는 예수가 선택된 민족의 상속자일 뿐 아니라 새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는 사람들의 형상을 하나님의 아들로 회복시키시는 제2의 아담이다. 예수는 모든 인류에게 그들의 근본적인 인간의 목적을 성취하도록 하고 있다(눅 3:23-24).

이 족보들은 역사의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강조한다. 그의 구속 약속은 역사의 각 세대를 거친다는 것이다. 어떤 인간의 잘못이나 오류조차도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킬 수 없다. 더욱이 이 족보에는 4 여인의 이름이 적혀 있다. 다말은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여인(창 38장)이 있고, 라합은 매춘부(수 3장)였고, 룻은 이방 여인(룻기)이어고, 바셋바는 간음한 여인(삼하 11-12장)이었다.

예수의 족보는 인간 역사 속에서 하나님 구속의 경륜을 드러내는 함축성을 지닌다. 예수 족보의 의미는 하나님이 구체적인 인간의 혈통 속으로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어떠한 인간의 허물과 죄도 우연성도 하나님의 구속을 저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혈통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도구라는 점을 알려준다. 은총의 역사는 인간의 구체적인 혈통의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초대교회의 이단 영지주의가 도외시한 이 혈통의 역사를 인정하시고 사용하셨다. 하나님 자신이 이 인간 혈통의 역사에 들어오신 것이다. 그러면서도 예수의 처녀탄생은 인간 혈통의 역사를 너머서는 하나님의 구속계시 사건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의 족보는 나사렛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성육신의 실재성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