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장).

나사렛 예수는 로마 시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통치하에 구레뇨(Quirinius)가 수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 (눅2:1-2) 유대 헤롯 왕 때(마2:1)에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 나셨다. 복음서 기자 마태와 누가는 예수의 탄생에 관하여 자세히 전해주고 있다. 이들이 예수의 출생에 관하여 자세히 기록한 이유는 예수의 출생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기인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처녀잉태

누가는 예수의 처녀출생 예고(눅 1:26-38)를 기록하고 있으며, 마태는 예수의 처녀잉태(마 1:18-23)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定婚)을 하였다. 유대 풍습에 따르면 결혼의 서약은 약혼식에서 행해졌다. 신부가 남편의 집에 거주하고, 육체적 결합이 이루어지기전에, 대개 1년 정도의 약혼 기간을 두는 것이 관습이었다. 이 약혼 기간에 마리아에게 임신 사실이 나타났다. 유대 풍습에 따르면 처녀가 임신할 경우 그녀는 돌로 쳐 죽여야 했다(신 22:23, 24). 누가는 마리아의 임신이 처녀임신이라는 사실이라고 밝히고 있다: 임신 이전에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녀가 메시아를 잉태하게 될 것을 예고한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게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0-31).

마리아는 아직 요셉과 동침하기 이전이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천사에게 묻는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 1:34). 천사는 성령으로 인한 잉태를 예고한다:“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5). 이에 마리아는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27)고 응답한다. 마리아는 자기에게 일어난 사실을 요셉에게 설명하려 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로 작정하였다.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의로운 사람이라 마리아를 고발하지 않고 조용히 파혼하고자 하였다(마 1:19). 이 때 요셉은 주의 사자의 음성을 듣는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 1:21). 천사는 요셉에게 마리아의 임신이 마리아의 불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한 잉태인 것을 말한다.

처녀생식은 그동안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최근 배아복제로 줄기세포를 만드는 과정에서 처녀생식의 과정이 있었다고 서울대 조사팀이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연구 진위에 관련하여 발표를 한 바 있다. 따라서 처녀생식이 과학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자유주의자들은 처녀탄생이란 있을 수 없으며 마리아와 요셉의 성적 결합에서 예수가 탄생한 것으로 해석해 왔다. 창조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는데 처녀탄생이란 형식을 취하는 것은 신학적으로도 필요한 일이다. 아담 이래로 내려오는 인간의 부패한 죄의 몸이 아닌 동정녀를 통한 순수한 몸을 취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취하시고 처녀의 몸을 빌려 인간의 세계에 오신 것이다.

천사는 잉태된 아기의 미래의 길에 대하여 알려준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2-33). 예수란 단어의 뜻은 구원자(redeemer))라는 뜻이다. 예수는 날 때부터 하나님에 의하여 “이스라엘과 인류의 메시야”로 그 삶의 길과 소명이 정해졌다.

이러한 메시아 아기의 잉태는 이미 구약의 예언자 이사야에 의하여 예언되었음을 말해준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마태는 예수를 “임마누엘”이라고 부르고 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마태는 예수가 임마누엘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예수는 다윗의 자손인 요셉과 정혼(定婚)한 마리아에게 나심으로 구약 예언자들이 약속한 다윗의 후손에서 메시야가 날 것이라는 예언을 이루고 있다. 누가는 예수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아들”,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예수는 다윗의 후손으로 왕권으로 가지고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을 예고한다. 예수는 요셉과 정혼한 시기에 잉태됨으로써 마리아는 당시 처녀가 임신했다는 일로 고발받아 돌로 처형되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섭리의 오묘함이 있다.

가이사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호적령

역사가(歷史家) 누가는 예수의 탄생이 그 시대의 중요한 시대사와 맞물려 감을 보고하고 있다. 로마황제 가이사 아우구스투스가 “천하로 다 호적하라”고 칙령을 내렸다(눅 2:1). 당시 수리아(오늘날의 시리아)의 총독 구레뇨(Quirinius)가 황제의 호적칙령을 집행하였다. 구레뇨는 로마황제가 보낸 수리아 총독이었다. 당시 구레뇨의 지휘 아래 수리아에서는 주민들의 재산을 조사하여 등록하게 하였다. 당시 유대 지방이 로마의 지방영토가 되었던 주후 6-7년 총독 구레뇨는 세금을 거두어 들이기 위하여 유대주민들과 그들의 재산을 등록하게 하였다.

다윗의 자손인 요셉은 당시 북부 갈릴리 지역의 마을인 나사렛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정혼한 아내 마리아는 아기를 잉태한 상황 속에서 만삭이 되어가고 있었다. 만일 호적칙령이 없었다면 예수는 나사렛에서 출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예언자들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하여 황제의 호적 칙령을 사용하시어 요셉과 마리아를 그의 고향마을인 베들레헴에 가게 하신다. 여기에 구속사와 세속사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안에서 맞물려 돌아감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신학자로서 누가는 신으로 숭배를 받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그가 실현한 로마의 평화(Pax Romana)에 대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및 그의 오심으로써 개방된 하나님의 평화(shalom of God)를 대비시키고 있다: 그는 영적 환상을 보고서 다음같이 기록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6).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출생

요셉은 호적(戶籍)하기 위하여 만삭된 아내 마리아와 함께 북쪽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출발하여 남쪽 유대지방의 베들레헴에 도착한다.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여관에는 머물 곳에 없어서 구유에서 머물게 된다. 그리하여 메시야 아기 예수는 말구유에서 탄생하게 된다. 인간적으로 보면 너무나 겸허한 출생이다. 예수는 다윗의 궁전도 아니고 여관도 아니고 짐승들이 거하는 구유에서 태어난 것이다.

아기 예수가 태어날 때에 로마 황제나 유대왕 헤롯이나 수리아의 구레뇨 총독도 오지 않았다. 물론 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을 리가 없다. 그리고 유대의 대제사장이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도 오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복음과는 직접적으로는 상관이 없는 이방의 동방박사가 찾아왔다. 그리고 천사는 유대민족으로는 종교적 권력과는 거리가 먼 순수한 목동들에게 기별을 전한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눅 2:10-12)

베들레헴의 가난한 마음을 가진 목자들은 종교 지도자들 대신에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에게 와서 경배하게 된다. 복음은 종교적 세속적 권력에게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전파된다. 세속적으로 부요한 자들(권력자나 명예자나 부자들 등)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이 주로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한국교회가 선교 이후 이렇게 1세기 만에 유례 없는 성장을 이룬 배경에는 한국 민족이 반도국으로 강대국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수없는 침략을 받으면서 형성된 고난과 한이 있다. 이것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민족적인 심리를 일구신 것이라고 생각된다.

동방박사와 별의 이야기

마태는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렀다”고 보고하고 있다. 동방박사들은 이방 민족의 대표로서 그들의 지혜 때문에 유명한 자들이다. 이들은 단지 별들을 보고 위대한 인물이 출생하게 됨을 알았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려 왔노라”(마 2:2)

당시의 고대 문화와 사회에서는 미래의 이상적인 세계 통치자에 대한 기대가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었다. 이런 위대한 인물을 지시하는 별들에 대한 사상이 있었다. 한국 역사에서도 고구려가 멸망한 후 만주지역에 발해라는 나라를 세운 대조영의 출생시에도 별의 이야기가 나온다. 창세기 기자는 별은 때와 징조를 나타낸다(창 1:14)고 말하고 있다. 별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수단이 될 수 있다(민 24:27).

헤롯의 유아 살해, 이집트로 피신

동방박사들은 꿈에 메시아 아기를 살해하려는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리하여 이들은 헤롯에게 아기의 출생장소를 알리지 않고 다른 길로 본국으로 돌아간다(마 2:12). 나중에 헤롯은 동방박사들에게 속한 것을 알고 분노한다. 그는 메시아의 출생을 인간적으로 저지하기 위하여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들”을 모조리 죽이는 학살을 감행한다(마 2:16).

유대 전승에 따르면 위대한 인물의 출생 시에는 이것을 인위적으로 저지하려는 시도가 행해지곤 하였다. 모세의 출생시에도 모세의 목숨을 노려서 이집트에서 영아살해 사건이 벌어졌다(출 1:15-22). 아기 메시아에 대한 헤롯의 두려움과 자기방어가 하나님 백성에게 곤경과 죽음을 몰아 온 것이다. 마태는 이러한 헤롯의 영아(嬰兒) 살해사건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석한다. 아기 메시아를 제거하려는 헤롯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메시아는 제거되지 않는다. 마태는 헤롯에 의한 영아 살해사건을 예언적으로 해석한다. 마태는 구약의 예언자 예레미아의 예언을 빌려서 이 사실에 관하여 구약 예레미아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해석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신앙의 눈을 가진 자만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역사적 예수는 신앙의 눈을 가져야만 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신앙이란 세속의 눈에는 닫혀 있는 구속사의 의미를 바르게 볼 수 있는 창(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