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목사(강변교회원로/선교목사, 한복협 회장)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인 김명혁 목사가 ‘중남아프리카 한인 선교사 대회’에 참석했다. 7월 8일부터 11일까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이 행사에서 김명혁 목사는 ‘선교사와 목회자의 리더십’이라는 주제를 맡아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의 리더십’, ‘사랑과 수고와 희생의 리더십’이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 강연했다. 본지는 김명혁 목사가 이번에 선교사들에게 전한 메시지를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한편 이번 대회에는 김명혁 목사 외에도 최복규 목사, 강승삼 목사, 김명규 목사, 김봉구 목사, 이건오 박사 등 10여명이 동행했다.

선교사와 목회자의 리더십 -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의 리더십 (1)
제6회 중남부 아프리카 선교사대회(08.7.8-11)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선교목사, 한복협 회장)


‘리더십’에 대한 강의를 부탁 받았다. ‘리더십’(leadership)이란 무엇인가? ‘리더십’의 사전적 의미는 ‘지도력’ 또는 ‘통솔력’이다. 나는 나름대로 ‘리더십’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리더십’이란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그리고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나타내 보이는 지도력과 통솔력과 감화력과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교사와 목회자의 리더십은 선교사와 목회자의 원형적 모델인 예수님이 지녔던 리더십을 지닌 사람이 나타내 보이는 지도력과 통솔력과 감화력과 영향력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예수님을 전적으로 본 받은 사도 바울이 지녔던 리더십을 지닌 사람이 나타내 보이는 지도력과 통솔력이라고 하겠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지녔던 리더십이란 과연 어떤 것이었나? 열두 영 되는 천사들을 불러들여 악한 세력들을 무찌른 능력의 리더십은 아니었다. 옳고 그름의 잣대로 창기와 세리들을 정죄하고 심판한 진리의 리더십도 아니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발이 상치 않는 신기함을 나타내 보인 이적의 리더십도 아니었다. 사도 바울의 경우 심오한 헬라의 지식과 유창한 로마의 웅변술로 사람들을 사로잡은 설교와 웅변술의 리더십도 아니었다. 현대 교회의 경우 각종 음악과 각종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의 감성을 사로잡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심리학과 엔터테인먼트의 리더십도 아니었다. 그러면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지녔던 리더십이란 과연 어떤 것이었나?

첫째, 약함의 리더십이었다.

예수님의 삶의 특성 중의 하나는 약함이었다. 약함은 버림에서 오는데 예수님은 모든 것을 내어 버렸다. 하늘의 영광도 하늘의 부요함도 하늘의 능력도 모두 다 내어버렸다. 그래서 가난해졌고 약해졌다. 예수님은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셨다”(고후 8:9). 곤욕과 심문과 희롱을 당하며 끌려갈 때에도 항의나 데모를 하지 않고 그 입을 열지 않았다(사 53:7,8).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서 자기의 목숨도 버렸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1). 결국 십자가는 약함의 상징이요 실체가 되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3,25). 예수님과 십자가와 복음의 특성은 약함이다. 기독교의 복음은 역설적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리더십도 역설적이다. 약할 때 강하고 어리석을 때 지혜롭게 되는 것이 기독교의 복음이고 기독교의 리더십이다.

영국의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인 존 스토트 박사는 2000년 7월 영국 케직 사경회에서 이런 말을 한 일이 있다. “기독교의 근본적 진리의 하나는 약함과 어리석음에 있다. 십자가의 복음 자체가 약하고 어리석은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할 때 헬라의 지혜로 포장하지 않고 로마의 웅변술로 각색하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고백했다(고전2:1-2). 설교를 너무 지혜롭고 유창하고 멋지게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말이다. 사도 바울은 참된 복음 전도자의 특성도 자신의 약함과 어리석음을 깊이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벌을 만들어 분쟁하던 고린도교회가 지도자들을 지나치게 높이며 우상화하려고 했을 때 참된 지도자 사도 바울은 그와 같은 시도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신을 묘사했다. “바울은 무슨 물건이며 아볼로는 무슨 물건이냐?”(고전 3:5). 몇 줄 다음에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단어로 “아무 물건도 아니라”는 멸시적인 말까지 썼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며 “나는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 까지 했다. 조금 더 내려가서는 “나는 만물의 찌끼” 즉 시궁창에 내버리는 음식물의 찌꺼기 같은 존재라고 까지 표현했다. 그리고 고린도 후서에서는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나에 대해서 약한 것들과 부족한 것들을 자랑하노라 그 이유는 내가 약할 때에만 강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약할 때에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고후 12:10). 존 스토트 박사는 오늘날 세계 곳곳을 다녀보아도 사도 바울처럼 자기의 약함과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진정한 기독교의 지도자들을 찾아보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고백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너무 강해지고 너무 지혜로워지고 너무 부요해졌는지 모르겠다. 일부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너무 위대해져서 거의 우상화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민교회 지도자 한 분이 수 년 전에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일이 있다. “한국의 목회자들은 너무 크고 높아서 쳐다 보면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한국교회와 지도자들이 예수님처럼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약해져야 하고 어리석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본다. 우리 주님이 약해지셨고 가난해지셨고 비천해지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가 약할 때에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머물게 하시기 때문이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라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위대한 사역자로 만드시기 때문이다. 기독교 복음과 기독교 리더십의 특성은 약함이다.

한국교회의 목회자들 중에서 한경직 목사처럼 폭 넓은 리더십을 나타내 보인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한경직 목사는 기독교계뿐 아니라 범 종교적으로 범 사회적으로 인정과 존경을 받으며 폭 넓은 지도력을 발휘한 지도자였다. 그런데 한경직 목사의 리더십의 특성의 하나가 바로 약함이었다. 한경직 목사는 젊은 시절부터 한 평생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인간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절감한 분이었고 또 자기 자신이 얼마나 연약하고 무력한 존재임을 체험한 분이었다. 그는 두려워하고 절망했으며 때로는 넘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연약함이 오히려 그를 진정한 목회자와 지도자로 만든 비결이었는지도 모른다.

한경직이 17세 되던 1919년 평양 영성소학교 교사로 봉직하고 있던 때 일본 고등계 형사들의 혹독한 고문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는 고문 당한 후 두려움과 무서움에 떨었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무력함을 비관하기도 했다. 한경직이 27세 되던 1929년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하고 예일 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때 폐결핵 3기라는 진단을 받고 그는 또 한번 인간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절감했다. 진학은 물론 인생 자체를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절망감과 위기감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의지도 건강도 아무 것도 믿을 것이 되지 못한다는 절망감을 경험한 것이었다.

한경직 목사는 신의주제이교회와 영락교회의 목회 시절에도 약함을 드러냈고, 6.25 전쟁 중에도 약함을 드러냈고, 군사독재 시절에도 약함을 드러냈다. 한경직 목사는 그의 생애의 마지막 2년 동안 노환으로 많은 고난과 약함을 체험했다. 한경직 목사는 어느 대담에서 괴로운 일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일생을 연약한 몸으로 살아온 것이 제일 괴로움이었지요.” 라고 대답한 일이 있다. 마지막 2년 동안 두 다리를 수술하는 고통도 겪었고 말을 잘 하지 못하는 답답함도 당했다. 특히 마지막 6개월 동안은 가래가 너무 끓어서 목에 구멍을 뚫고 지내는 극심한 괴로움도 겪었다. 그는 나의 손을 붙잡고 “늙는 것이 재미 없어!” 라고 그의 노약의 서글픈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경직 목사는 1969년 8월 3일에 행한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는 능력”이란 제목의 설교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예를 들면서 약함을 통해서 주어지는 은혜를 간증했다. 한경직 목사는 한 평생 자기 자신의 약함과 민족의 약함을 절감한 사람인 동시에 그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하고 간증한 사람이었다. 1972년 4월 23일에 행한 “약할 때에 강하니라”란 제목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인간이 약할 때는 흔히 겸손하여집니다. 건강하던 이가 중병에 걸려 약해지면 겸손하여집니다. 교만은 만죄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둘째, 인간이 약하여 질 때에 그 생각이 깊어집니다. 인생의 깊은 문제를 탐구하게 됩니다. 셋째, 우리가 약할 때에 기도를 더하게 됩니다. 벌써 오래 전에 내가 미국 뉴멕시코주 알바컬키라는 도시에 있던 요양원에 입원하여 있을 때, 제가 폐가 약하여 약 2년간 입원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에 병석에 고요히 누워서 ‘약할 때에 강하니라’ 하는 성구를 묵상하는 가운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약할 그 때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내가 약할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경직 목사는 약함의 리더십을 지닌 존경과 사랑을 받은 지도자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