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고향이라고 하는 크레센트시티(초승달 도시), 뉴올리언즈의 프렌치쿼터지역은 관광지이기 때문에 비교적 카트리나의 영향으로부터 빠르게 복구가 됐다. 그러나 이 도시의 옛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이 단장된 도시의 모습이 매우 생소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친근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재즈의 고향이라고 하는 그 상징적 이미지다. 그래서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카트리나마저도 재즈의 리듬에 하나의 운율을 더해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뭐랄까, 꼭 집어 보여줄 순 없지만 동경이나 그리움 같은 정서에서만 피어오르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래서 옛 도시의 추억이 여전히 당신 속에 살고 있다면 당신은 변해버린 프렌치쿼터의 분위기에서도 여전히 재즈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비록 물결처럼 몰려다니며 발을 구르던 사람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지라도 무명악사들의 색스폰 소리가 들리고 그들 폭발적인 춤이 광기를 피워 올리는 것과 온몸의 아우성 같은 사람들의 박수소리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도시는 재회할 때마다 더욱 아름다워진다.

사실 재즈는 흑인 영가에서 이어져온 또 하나의 영혼의 음악이다. 그 옛날 먼먼 아프리카로부터 수입돼온 흑인 노예들의 노래였다. 노예로 팔려와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처참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기원한 영가는 자연스럽게 교회 찬송가에 섞이고 백인사회에 스며들었다. 그 후 남북전쟁이 일어나 노예제도가 폐지되고 흑인들은 다소나마 삶을 즐길 자유를 얻게 됐을 때 그들은 두고 온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에 실었다. 노래로서 원시림에 이는 바람과 푸른 하늘을 꿈꿀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이 무렵, 군대에서는 종전과 함께 악기를 불하하였고 손쉽게 악기를 만지면서 자연스럽게 악단이 만들어졌다.

악단의 중심멤버는 흑인과 프랑스인의 혼혈아인 크레올이었다. 크레올은 흑인과는 달리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흑인의 단순한 형태의 음악에 예술성을 부여하면서 전문악단을 편성하였다. 그들은 길거리와 공원, 결혼식과 장례식, 카니발과 피크닉 어디에서나 연주를 했다. 댄스홀과 술집에서도 연주했다 .이것이 재즈의 역사다.

역사가 이러하니 따지고 보면 재즈란 특정한 곳에서 발생한 음악이라고 단정짓기 어렵다. 흑인 노예가 성행한 이래로 수십년 동안 점차적으로 발전해온 음악 양식이다. 초기에는 jass, jas, jaz로 불리워져 그 어원조차도 확실치 않다. 단지 흑인의 영가 부르스 노동요 등이 미국적인 전통 음악에 접목되고 유럽의 민요나 오락음악, 군대음악의 기법을 첨가해 연주하게 되면서 재즈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발전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찌되었든, 재즈를 귀담아 듣고 있으면 누구나 공통된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고통과 환희라는 삶의 두 얼굴이다. 재즈 속에서 느끼는 삶의 고통은 더 깊고 더 무겁다. 그 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비애와 과거에의 향수가 눈물겹게 서려있다. 그와 함께 미래에 대한 약속이 있다. 그 약속이 자유가 아닌가 한다. 재즈에 닿는 영혼마다 족쇄가 풀어지고 행복한 파우스트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자유 때문이다.

내가 지금 이 도시에 다시 서서 흔들리며 출렁거리고 있는 것 역시 이 자유에의 열망이다. 휘영청 높은 달 빛, 오래전 한날 밤에 프리져베이슨홀의 연주회가 끝나고 거리로 나왔을 때도 밤하늘에는 둥근 달이 환하게 떠 있었다. 그 밤처럼 마지막 강물이 출렁이며 달빛에 섞인다.

나는 밤거리를 돌면서 루이 암스트롱의 ‘What is Wonderful World?’를 흥얼거려 본다. 그의 재즈가 어떻게 비애의 끝에 닿아서 다시 환희로 폭발하는지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운율은 동경하는 영혼에게 내리는 존재의 축복이다.

-송영옥 박사는

▲송영옥 박사.
<한국수필>에서 수필로, <문단>에서 단편소설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국제 PEN클럽 정회원이다. 창작집으로는 <미운 남자>, <하늘 숲>, <해지는 곳에서 해 뜨는 곳까지>, <閃 囚구를 떠돌고 쏀덛>,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와 영한시집 , 그리고 문학이론서 <기독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있다.

세종대,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경북대 대학원에서 헨리 제임스 전공으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75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Y's Man International에서 국제여성부장(International Director for Y'Menettes)을 두 차례 역임했고, 신문·잡지의 연재계약으로 전 세계 60여 나라를 여행, 문화 예술 기행을 했다. 현재 대신대에서 기독문학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