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 40:31)

성경은 때때로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독수리의 날개에 비유할 때가 있다. 이 본문에서도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 곧 주님을 바라는 자를 독수리의 날개에 비유한다. 일반적으로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하는 것은, 독수리의 날개의 강한 힘을 연상시켜 준다. 그러나 실제로 독수리를 잘 관찰해 보면, 높이 힘차게 날아올라서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게 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두어번 날갯짓 해서 조금 올라가서는 그냥 날아 다닌다. 정말 놀라게 하는 것은 오랜 비행시간이다. 그리고 그 긴 비행시간 동안 거의 날갯짓을 하지 않는 것이다.


독수리의 이런 장시간 비행의 비밀은 독수리의 날개의 깃털에 있다고 한다. 모든 깃털과 함께 특히 날개 끝에 있는 갈라진 깃털의 역할은, 날개 아래 위의 바람의 속도를 다르게 만들어서 자연 상승력을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작은 회오리 바람을 만들어서, 독수리의 비행을 거의 무한대로 만들어 준다고 한다. 또한 독수리는 매년 털갈이를 한다. 이것은 일년간 무거워지고 더러워진 깃털의 교환을 의미한다. 그리하여서 매년 새롭고 가벼운, 그리고 싱싱한 깃털로, 그 저력있는 비행을 계속 감당할 수 있는것이다.

본문의 번역은 이 ‘일반적인 오해’에 한 역할을 한다. ‘독수리의 날개치고 올라감같이’ 라고 번역한 것은 직역을 하면 ‘독수리 같이 그 깃털을 (새롭게) 자라게 함이여’라고 해야 한다. 대부분의 한글 영역들은 이 포인트를 놓치고 있다. 그러나 TANAKH 역은 직역에 유사하게 번역하고 있다(As eagles grow new plumes).

또한 문맥적으로 살펴 보자. 사 40:30절은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하고 대조가 되는 귀절을 적고 있다. 원기 왕성한 소년이라도 금방 피곤해지고, 건장한 장정이라도 금방 지치게 되어 있으나, 31절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같이 그 깃털을 (새롭게) 자라게 함과 같다고 할 때, 결코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신다고 해석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와 관련해서 시 103:5절은 적절하게 맥을 같이 한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5)

한 마디로 사 40:31의 말씀은 번역을 고쳐야 하고, 나아가서 그 이해가 새롭게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수퍼맨같이 놀라운 초자연적 능력의 소유자가 될 것이요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한, 그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인하여서 항상 새 힘을 얻어서 지치지 않고 끝까지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김하연 목사: Ph.D.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