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장).

아픔과 슬픔의 장면들은 수요일에도 목요일에도 금요일에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엄마가 북에 잡혀가서 아빠 또는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불쌍한 아이들이 왕청에도 화룡에도 안도에도 용정에도 도문에도 연길에도 훈춘에도 수없이 많았다. 지체장애나 암이나 간염 등으로 고생하는 부모 또는 홀부모 아래서 불행하게 살아가는 아이들도 이곳저곳에 수없이 많았다. 용정에 살고 있는 8살 난 한은 희는 여관에서 보일러공으로 일하고 있는 아빠와 함께 한 평 되는 경비실에서 먹고 자고 공부하면서 불쌍하게 살고 있었다.


훈춘에서 살고 있는 8살 난 황유정은 엄마가 북으로 잡혀갔는데 아빠와 함께 온기가 하나도 없는 두 평짜리 냉방에서 먹고 자고 공부하며 불쌍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유정이는 예쁜 얼굴에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내가 준 학용품 선물을 받아들고 너무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아빠의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가면서 내가 준 연필깎이와 초콜릿과, 스티커를 두 주머니에 꼭꼭 챙겨 넣고 갔다. 친구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집에 두고 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애처로운 눈물이 흐른다.

안도에 사는 일곱 살 난 현민애와 연길에 사는 김설경, 엄지민, 정윤복, 장림어린이들은 엄마들이 모두 북으로 잡혀갔는데 할머니, 아빠 또는 고모와 함께 불쌍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엄지민은 내가 준 학용품 선물을 자기 앞에 놓고 꼭꼭 챙기고 있었다. 슬픔과 아픔의 이야기들은 이어지고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조그만 관심이 눈물 속에 예쁜 꽃 피게 해

그러나 슬픔과 아픔 중에서도 예쁘게 피어난 아름다운 꽃들이 있었고 눈물 속에 피어난 행복한 웃음꽃들도 있었다. 용정 지신마을에 살고 있는 8살 난 강금화는 눈물 속에 피어난 예쁜 꽃이요, 행복한 웃음꽃이다. 작년 5월 금화네 집에 찾아갔을 때 엄마 노래를 부르다가 북으로 잡혀간 엄마를 생각하며 울음보를 터트린 금화를 나는 1년 내내 잊을 수가 없었다. 3월 26일 수요일(작년 5월에도 수요일이었다) 금화의 집을 다시 찾아갔다. 방에 들어가 금화를 덥석 들어 안았다. 금화가 보고 싶었다고 말하니 금화는 “나도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금화의 얼굴에는 귀여운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많이 컸고 많이 밝아졌고 많이 예뻐졌다. 소학교 2학년이 된 금화는 뻐꾸기 노래도 예쁘게 불렀고 피리도 예쁘게 불렀다. 자기가 그린 그림들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자기가 받은 상장들도 보여 주었다. 용정시에서 받은 “우수 3호 학생”으로 선정된 상장도 보여주었다. 지덕체를 겸비한 최우수 모범생에게 용정시가 주는 명예스런 상장이었다. 미술 우수상 상장도 보여주었다. 나는 얼마나 기쁘고 좋았는지 모른다. 조그만 관심과 사랑의 손길이 슬픔과 아픔과 눈물 속에서도 이렇게도 밝고 예쁜 꽃을 피어나게 했다는 말인가!

나는 지금 토요일 아침 백두산으로 달려가는 버스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내 무릎 위에는 금화가 엎드려 잠을 자고 있다. 너무 귀엽고 예쁘다. 금화에게 백두산 구경을 시켜줌으로 금화가 더 밝고 더 멋지고 더 자랑스럽게 살도록 격려해주고 싶었기 때문이고, 금화와 하루라도 더 같이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목요일(3월 27일) 도문에서 동아려를 만난 것은 또 하나의 기쁨이요, 즐거움이었다. 엄마 잃고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아려는 지난 4년 동안 나와 후원자들의 사랑의 관심과 도움의 손길을 받으면서 예쁘고 착하게 자라고 있다. 지금 연변대학 예술학원 1학년에 다니고 있는데 신앙생활도 예쁘게 하고 있고 착한 일도 많이 하고 있고 노래를 너무 잘 부르고 있다. 나를 만나자마자 내 품에 안기며 반가워했다. 그리고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를 잘 불렀다. 감동적으로 은혜롭게 불렀다. 그래서 우리들은 모두 아려가 앞으로 국민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내 뒷자석에는 아려가 집사람과 함께 앉아 있다. 아려도 격려해주고 싶었고 하루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서 백두산에 함께 가게 했다. 아려야말로 슬픔과 아픔 속에서 피어난 예쁜 꽃이요, 눈물 속에서 피어난 행복한 웃음꽃이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와 함께 슬프지만 그러나 착하고 예쁘고 멋지게 자라고 있는 라해연이도 백두산에 데리고 가기를 원했지만 사정이 있어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다.

아이들 돌보기 위해 15년 이상은 건강하고 넉넉했으면…

금요일(3월 28일) 훈춘에서 채홍실을 만난 것은 또 하나의 큰 기쁨과 즐거움이었다. 1년 전 홍실이를 만났을 때 북에 잡혀간 엄마를 잃고 슬프게 살고 있는 홍실이와 아빠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쥐들이 떼를 지어 들락거리는, 거의 쓰러져가는 집에서 살고 있는 부녀의 삶은 불행 그 자체였고 절망 그 자체였다. 말도 없고 어둡고 정신 이상이었다. 결국 나는 강변교회 성도들의 사랑의 손길로 쓰러져가는 홍실이의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어 주었고 결연금을 매달 보내주었다.

그런데 1년 만에 만난 홍실이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내게 안기며 반가워했다. 내 옆에 앉아서 애교까지 부렸다. 13살 난, 사내같이 생긴 홍실이가 사진을 찍을 때 마다 자기 얼굴을 내 얼굴에 가까이 대기도 했다. 홍실이 아빠는 나를 보자마자 반가워하며 새 집 앞에서 나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홍실이와 함께 우리 일행이 식당을 향해 떠날 때 홍실이 아빠는 오래오래 집 앞에 서서 우리 일행을 아쉬워하며 배웅해 주었다. 몸과 정신이 정상적으로 살게 되기를 기도했다.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훈춘지역의 어린이들과 지역 대표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홍실이는 아이들과 함께 앉기를 거부했고 지역 대표들과 함께 앉기도 거부하며 바로 내 옆자리에 와서 앉으며 “아바이” 옆에 앉아야 된다고 했다. 말도 행동도 너무 활발해졌다. 얼굴에 웃음도 잃지 않았다. 감사했다. 홍실이야말로 슬픔과 아픔 속에서 핀 예쁜 꽃이었고, 눈물 속에서 핀 행복한 웃음꽃이었다.

나는 지난 며칠 동안 이런 생각과 소원을 마음에 지니게 되었다. “하나님 아버지, 나로 하여금 최소한 15년 이상을 건강하고 넉넉하게 살게 하시옵소서” 동아려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4년, 라해연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8년, 채홍실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12년, 강금화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15년이 걸리는데 저들이 모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저들을 보살피며 도와주기 위해서는 최소한 15년 이상을 건강하고 넉넉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눈 덮인 천지의 맑은 물을 마시다

또 하나 눈물 속에서 핀 행복한 웃음꽃은 훈춘 경신진에 있는 민흥농장을 운영하는 오금숙 회장이다. 10여 년 전 사기피해로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이다. 오금숙 씨는 지난 9년 동안 우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의 삶은 의욕과 착함과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한 삶으로 바뀌었다. 28마리 토끼를 가지고 시작한 농장이 이제는 훈춘뿐 아니라 북한과 러시아까지 알려진 모범농장으로 발전했다. 훈춘시와 연변주정부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상패와 상금까지 받게 되었다. 오금숙 회장의 사랑의 손길 아래 15명의 아이들이 장학금을 받고 80여 가정이 재활을 하게 되었고 4개의 전문촌(소, 딸기, 오미자, 잡곡재배)이 생기게 되었다. 작년에는 500여만원 상당의 토끼 100마리를 북한에 기증하기까지 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오금숙 씨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의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오금숙 씨야말로 눈물 속에서 피어난 행복한 웃음꽃이었다.

하나님의 손길은 이상하고 신기하다. 슬픔과 아픔 속에서도 예쁜 꽃이 피어나게 하시고 눈물 속에서도 행복한 웃음꽃이 피어나게 하셨으니 말이다. 우리들의 손이 비록 더럽고 추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손을 만지고 붙잡기만 하면 우리들의 손도 예쁜 꽃과 행복한 웃음꽃을 피어나게 하는 이상하고 신기한 손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여! 아! 신기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이여!

눈 덮인 백두산을 천지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기분은 최고, 최상의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백두산 정상에서 천지를 내려다보기는 했지만 천지까지 눈 덮인 길을 걸어서 올라가서 천지의 맑은 물을 마시기는 처음이었다. 몸과 마음이 시원하고 깨끗해지는 듯했다. 아려와 금화는 장백산의 아름다움을 감탄하며 백두산에 온 것이 좋고, 정말 좋다고 거듭해서 말했다. 우리 일행인 이현정 목사 부부, 이영숙, 한길자, 김덕자, 박종덕, 김순한, 김학찬, 동아려, 강금화는 눈 덮인 천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또 찍으면서 웃으며 행복해했다. 우리 일행들이야말로 분명히 장백산 눈 속에 핀 아름다운 꽃들이요, 행복한 웃음의 꽃들이었다(3월 29일 눈 덮인 장백산 천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