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링크 우성화 대표는 기도로 경영의 어려움을 극복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도하는 대통령이라면 티켓링크의 우성화 대표(44)는 기도하는 CEO다. 우 대표는 여성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경영의 어려움을 기도로 이겨내면서 티켓링크를 연매출 2백억을 달성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티켓링크는 국내 최대 티켓 예매업체로서 국내 2백여 기획사, 80여 개의 공연장, 1백여 개의 극장 및 배급사, 35개의 전 프로구단 및 단체 등의 티켓 판매를 대행하고 있다. 우 대표가 티켓 예매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96년. 1987년 대학을 졸업한 후 한 이벤트업체에서 경력을 쌓아왔던 그는 미국 출장 중 우연히 목격한 뉴욕 브로드웨이의 예매 시스템을 보고 이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당시만해도 국내에는 티켓을 예매하는 문화가 자리잡지 않았기 때문에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다. 예매 시스템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표를 판매하던 기존의 티켓 판매상들을 설득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기득권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티켓 예매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 경기장이나 공연장, 영화관 등의 경영진들을 일일이 발품 팔아 만났다. 그들은 우 대표의 제안에 동의하지 않았기에 피해 다니거나 매몰차게 대하기 일쑤였다. 마음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모태신앙이었던 우 대표가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

“그 때부터 집 근처에 있던 소망교회 새벽예배를 매일 나가기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었던 일이에요. 내성적이고 수줍음도 많이 타는 제가 하는 말을 듣고 그들이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요.”

기도하는 과정 중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 사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인도하셨다.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 싶다가도 새벽기도를 하면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어느 새 일을 추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지금 돌아보면 순간 순간 기적 같은 일들을 베푸셨어요. 하나님께서 우리나라 문화계를 정말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예매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은 국내 문화공연계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우 대표는 이 사업에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헌신했다. 그 결과 불모지와 같았던 국내 공연 문화계에 티켓 예매 시스템을 도입하고 인프라를 구축한 일꾼으로 평가 받게 됐다.

선한 영향력 끼치는 대표기업으로 자리매김

예매시스템으로 문화계에 투명성을 높이는 역할을 해온 티켓링크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티켓링크에서는 수익의 일정금액을 문화소외계층의 공연관람에 할애하는 ‘기부운동’을 진행 중이다. 평소 문화공연을 접하지 못하는 전국의 비영리 어린이 보호단체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공연관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천사관람제’ (angel.ticketlink.co.kr)를 운영해 ‘객석기부’의 형태로 평소 공연문화에서 소외됐던 계층들을 끌어안고 있다.

우 대표는 “어린 시절에 공연을 봤던 경험은 쉽게 잊혀지지 않고 사회성과 창의성 함양에도 도움이 된다”면서 “다양한 계층을 만족시킬 만한 공연이 차고 넘치지만 평소 높은 가격 때문에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소외계층을 위해 천사관람제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우 대표의 이웃사랑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공연기부’ 뿐만 아니라 얼마 전 기름유출로 피해를 본 태안의 어린이들을 위해 교회를 통해 기부했다. 티켓링크에서 발매한 티켓의 이면에는 ‘God is love(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글자를 새겼다.

척박했던 벤처기업의 시절을 지나 이제 안정적인 중견기업으로 우뚝 선 지금도 우 대표는 여전히 사업의 모든 일을 결정할 때 먼저 기도한다. 기도하지 않고 의사결정을 하면 항상 곤란한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고 한다. 특히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사장실 한 켠에는 1평 남짓한 기도실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우 대표는 “그동안 직원들에게 너무 엄격하게 대했던 것이 회개가 됩니다. ‘사랑의 말이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훈계보다는 사랑이 더 효과적인데 말이죠. 이제는 직원들에게 ‘우리 사장님은 뭔가 다르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