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강변교회 원로)

부족하고 허물 많은 죄인에게 70 평생 몸과 마음과 생각의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지금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의 몸과 마음과 생각이 움직이는 대로 가벼운 글을 써 보려고 한다. 글의 주제는 없다. 마음과 생각이 움직이는대로 나의 기억 속에 담겨 있는 생각들을 소박하게 적어 본다.


먼저 (지금 필리핀에 가 있는) 세 살 난 손자 수혁이에 대한 생각은 나에게 소박한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최근에 말이 많이 늘어서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고 주절거리기를 좋아한다. 전화의 대부분은 수혁이가 차지한다. 엄마는 잠시……. 착한 엄마는 아주 잠시 전화한다. 내가 수혁이에게 “수혁이는 예쁘다. 수혁이가 보고 싶다”라고 말하면 수혁이는 깔깔대고 웃으면서 좋아한다. “엄마, 할아버지가 수혁이 보고 싶다 그래” 내가 또 “수혁이가 많이 많이 보고 싶다”라고 말하면 수혁이는 더욱 더 큰 소리로 깔깔대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엄마, 할아버지가 수혁이 많이 많이 보고 싶다 그래.” 이런 말도 한다. “할아버지 여기 와. 나 한국 가고 싶어” 그리고는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한다. “엄마, 난 외할아버지가 좋아. 친할아버지는 싫어” 엄마가 그러면 안 된다고 야단을 친다. “친할아버지가 수혁이 예뻐해 주지, 친할아버지가 좋아라고 해야지” 한참 가만히 듣고 있던 수혁이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그래두 난 외할아버지가 좋아.”

지난 주 토요일 주례하기 위해 강변교회에 가서 만난 몇몇 성도들에 대한 생각은 나에게 잔잔한 감동과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나를 보자마자 반가움에 겨워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던 김 모 집사의 순수한 사랑의 모습에 잔잔한 감동과 기쁨을 느꼈다. 환한 웃음으로 반가움을 온몸에 나타낸 박 모 권사의 순수한 모습에 감사와 기쁨을 느꼈다. 내가 항상 베다니 마리아라고 부르면서 칭찬하던, 기도와 헌신과 봉사로 다져진 백 모 권사의 잔잔한 미소의 인사에 나는 깊은 감동과 고마움을 느꼈다.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나의 손을 잡고 인사하던 허 모 권사의 침묵의 모습에도 나는 말이 필요 없는 가슴의 감동과 기쁨을 느꼈다. 그 외 여러 분들과 간단간단한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면서도 길고 오랜 사랑과 정을 느꼈다. 인생은 역시 만남과 나눔과 기쁨이다.

내가 인천공항을 떠나기 조금 전 인터넷에 들어가 메일과 방명록을 체크했는데 인터넷을 닫기 직전 강변교회 청년부 학생이 나에게 보낸 사랑과 감사의 편지를 읽고 감동과 기쁨을 누렸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란 말이 반복되었다. 믿음과 마음과 성품이 착하고 예쁜 학생이 보낸 진솔한 내용의 편지였다. 어려운 환경 중에서도 조금도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서 꿋꿋이 살아가는 학생이다. 때때로 조금씩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편 것이 그 학생에게 눈물의 감사와 사랑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어려운 형편에 처한 몇몇 사람들과 사랑과 도움을 나누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하면서 공부하고 있는, 연변에 있는 학생들의 얼굴들도 즐겁게 떠 오른다. 리예란, 렴춘희, 동아려, 량신복… 박범순씨와 은영이 혜영이의 얼굴도 떠오른다. 손혜리의 얼굴도 황인범의 얼굴도 최광혁의 얼굴도 떠오른다. 인생은 역시 만남과 나눔과 기쁨이다.

지금 나는 순복음노원교회의 유재필 목사님들과 함께 방콕으로 가고 있다. 최복규 목사님도 다른 비행기로 방콕으로 간다. 인도차이나 5개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할렐루야 축구단 선수들과 함께 모여 3일 동안 축구도 하고 먹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예배도 함께 드리면서 새 힘을 얻기 위해서다. 매년 한 번씩 이런 모임을 가진다. 최복규, 유재필, 나 세 사람도 저들과 함께 놀면서 저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방콕으로 가고 있다. 나는 최복규, 유재필 목사님들과 같이 성령과 말씀이 충만한 뿐 아니라 착함이 충만한 분들을 알게 되고 친하게 지나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쁘고 축복된 일인지 모른다. 두 분은 인격이 부드럽고 착하며 얼굴 모습이 부드럽고 착하며 도움과 나눔의 삶이 부드럽고 여유롭고 착하다.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나는 지금 지난날 내가 한국교회 지도자 몇 분과 가졌던 일화들을 생각한다. 아주 오래 전에 한경직 목사님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 한 분을 영락교회에 초청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나의 판단으로 그분은 대표적인 자유주의자였다. 나는 그때 무례하게도 한경직 목사님에게 전화 또는 편지로 한 목사님께서 자유주의 신학자를 영락교회에 초청하시면 어떻게 하겠냐고 불만을 토로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주일성수운동 캠페인을 벌일 때 가두 서명을 받기도 했는데, 나는 무례하게도 한 목사님께 명동에 나와서 가두 서명을 받아 달라고 요청했다. 한 목사님은 명동에 나와 의자에 앉아서 가두 서명을 받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무례한 부탁이었고 황송한 부탁이었는데 온유하신 한 목사님께서는 무례한 나의 요청을 들어주셨다. 한 번은 케직사경회를 내장산에서 개최하고 짐보이스, 한경직, 박윤선, 박종렬 목사님 등을 강사로 초청했는데 모두 들어 주셨다. 황송한 일이었고 감사한 일이었다.

나는 귀국 후 강원룡 목사님의 신학적 입장을 무례할 정도로 지나치게 비판했는데 후에 아카데미하우스에 초청을 받아 갔을 때도 여전히 비판했다. 강원용 목사님은 물론 박종화 목사님의 신학적 입장도 비판했다. 그런데 강원용 목사님은 나의 비판을 너그럽게 받아주었다. 오히려 비판을 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까지 했다. 결국 나는 그분의 폭넓은 역사적 안목과 신학적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분의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솔한 신앙고백을 귀하게 여기며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강 목사님은 그분의 마지막 저서인 “내가 믿는 그리스도”에 대한 추천의 글을 나에게 부탁하기까지 했고 내가 부탁하는 것을 무엇이나 들어주셨다. 그분의 측근은 그분이 별세한 후 나에게 이런 말까지 했다. “강 목사님이 김 목사님을 짝사랑했지요” 감사한 일이다.

조용기 목사님과의 관계에 대한 일화가 생각난다. 1989년 7월 제2차 로잔대회를 마치고 마닐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나는 언제나 이코노미 좌석표를 사서 이코노미 좌석에 앉곤 하는데 그날 비행기 승무원이 내 이름을 부르더니 나에게 비지네스 좌석을 주었다. -사실 비밀 이야기를 하면 장거리 여행을 할 때 이와 같은 일이 50% 가량 일어난다. 언젠가 러시아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로 가는데 러시아 스튜어디스(여승무원)가 한국에서 밥솥을 사 가지고 가면서 사용설명서를 영어로 설명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영어로 설명을 해 주었더니 비지네스 좌석에 앉게 해 주었다.- 하여튼 마닐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비지니스 좌석에 앉아 있는데 조금 앞 일등석에 앉아 있던 조용기 목사님이 내게로 다가와서 15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또 무례한 질문들을 했다. 조 목사님은 서서 이야기를 했고 나는 무례하게도 앉아서 이야기를 했다. 성령을 받으면 모두 방언을 하고 조 목사님이 안수기도를 하면 모든 병이 다 낫는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느냐고 질문했다. 조 목사님은 정중하게 나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성령을 받아도 모두 다 방언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 목사님이 안수기도를 해도 모든 병이 다 낫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야 병 고침을 받고 하나님의 뜻이 있어야 구원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자기는 지금까지는 알미안주의자였지만 지금은 칼빈주의자라고 말했다. 나는 조 목사님에게 그러면 이제부터 칼빈주의자라고 분명히 말하고 하나님의 뜻이 있어야 병 고침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라고 주문했다. 조 목사님은 사차원의 세계와 꿈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으로 귀한 만남이었다. 나는 그 대화의 내용을 국제대회에서도 밝혔다.

그 대화가 있은 후 2년이 지났다. 순복음신학교 학장을 만났다. 그분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근에 조 목사님이 학교에 오시면 칼빈주의에 대해서 자주 말씀하십니다.” 감사한 일이다. 부족하고 무례한 사람의 말들을 들어주시고 받아주신 여러분들에게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나타내 보일 수밖에 없다. 조용기 목사님은 그 이후 부족한 사람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늘 들어 주셨다. 감사한 일이다. 최근에 조 목사님이 보이신 사랑과 겸손과 포용의 자세에 진심으로 사랑과 존경을 표한다.

너무 글이 길어졌다. 1시간 30분 있으면 방콕에 내린다. 언제나 기도의 무릎을 끓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달려가는 좀 어수룩한 이영무 목사와 할렐루야 축구선수들을, 그리고 인도차이나 선교사들을 반갑게 만날 것이다. 역시 인생은 만남과 나눔과 기쁨이다.

2008년 2월 26일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