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기 목사

오래 전 미국에서 겪은 일이다. 한인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한 여인이 자주 남편에게 심한 구타를 당했다. 남편의 구타를 견딜 수 없었던 이 여인은 그 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하소연했지만 어느 누구도 이 여인의 문제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남의 가정 문제에 함부로 간섭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여인의 하소연을 듣고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여인은 남편의 심한 구타로 목숨을 잃었다. 나를 포함해서 그 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한 생명이 죽어가는 것을 방치했다는 죄책감에서 지금도 벗어날 수가 없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여인은 목회자와 교인들을 찾아다니면서 살려달라고 외쳤던가. 우리 모두는 폭력의 수렁에 빠져들어 죽어가는 그 여인을 단지 안됐다는 마음으로 쳐다보는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다.


장례식이 끝난 다음 그 여인의 남편은 정신감정을 받았고 성격이 병든 사람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의 성장 과정은 그를 그런 폭군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구타해서 허리가 마비되는 환자로 만들었고, 그의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폭력으로 평생 환자로 살았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한 사람이었으나, 마음속은 성장과정에서 받은 상처로 인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걷잡을 수 없는 자신의 분노와 미국 이민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약자인 아내에게 폭력으로 쏟아냈다.

폭력의 종류는 많다. 신문지상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조직폭력에서부터 학원폭력, 언론폭력, 성폭력, 강대국의 폭력, 종교의 폭력, 권력을 가진 자의 폭력, 부모가 자녀에게 가하는 아동폭력에 이르기까지 폭력의 종류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어떤 폭력이든 간에 폭력을 행하는 사람이나 집단의 배후에는 마음의 상처가 자리잡고 있다. 6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권력의 폭력자 히틀러 역시 성장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 이런 면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 계속 품고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폭력을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소유하고 있다. 가장 큰 마음의 상처는 가정폭력에서 싹튼다.

가정폭력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주고받거나 한 쪽이 일방적으로 가하는 신체적인 폭력이나 언어적인 폭력이다. 가정폭력의 또다른 형태는 힘을 가진 부모가 자녀에게 육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가하는 폭력이다. 이런 폭력 속에서 자라는 아이는 성장한 후에 똑같은 폭력을 행할 수 있다. 가정폭력에 대한 연구조사들은 한결같이 폭력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가정폭력은 또다른 폭력 가능자를 양산한다. 가정에서 양산된 폭력 가능자가 교회로 가면 교회폭력을, 정치계로 가면 정치폭력을, 학교로 가면 학교폭력을 발생시킬 수 있다. 고로 가정폭력은 사회, 교회, 국가를 위기로 몰아가는 폭력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폭력은 암과 같다. 암은 세포의 일부분이면서 한 생명 전체를 죽인다. 우리 사회에 암처럼 퍼져가고 있는 가정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교회와 지도자들은 눈을 떠야 한다. 그리고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배우고 폭력을 다루는 훈련에도 힘쓰는 교회 지도자가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