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강변교회 담임)

루터에게 있어서 정치는 결코 그의 중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의 중요 관심사는 철두철미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루터는 개혁운동의 진행 과정에서 정치와 무관할 수는 없었다. 결국 루터는 ‘두 왕국’의 개념을 제시했는데 거기에는 이원론적 요소가 없지 않았다. 루터는 ‘이원론적 양분’을 극복하기 위해 ‘실재론적 통일’을 시도했다.


“실재론적 이해: 두 통치 기관”

루터는 상호 적대적인 두 영적 실재인 두 ‘왕국’(kingdom)의 개념과 더불어 역사적 실재인 두 ‘통치 기관’(government)에 대한 개념을 피력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두 통치 기관을 세우셨다. ‘영적 통치 기관’과 ‘세속적 통치 기관’인 바 전자는 성령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들과 의인들을 산출하고 후자는 비그리스도인들과 악인들을 억제하여 외적 평화를 유지하게 한다. 두 통치 기관이 다 존재해야 한다. 하나는 의를 산출하고 다른 하나는 악을 견제하여 외적 평화를 가져온다.” (Temporal Authority”, p.282).

루터는 세속적 통치 기관을 법과 무력으로 통치하는 ‘국가’를 가리켰고, 영적 통치 기관을 말씀의 법과 사랑의 영으로 통치하는 ‘교회’를 가리켜 사용했다. 루터는 세속 통치 기관의 불가결성을 인간성의 타락에서 찾았다. 대부분의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무력에 의한 견제가 없다면 세상은 혼돈에 빠지고 말 것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통치 기관이 없다면 온 세상은 악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잡아먹게 되고 말 것이다. 결국 세상은 혼돈에 빠지고 말 것이다.” (Temporal Authority”, p.281) 루터에게 있어서 두 통치 기관의 관계는 일치의 관계도 무관의 관계도 아니다. 그 영역이 서로 다르면서도 서로 관련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포괄적 통치를 받는다.

“두 통치 기관의 분리”

루터는 지상의 두 통치 기관인 국가와 교회의 기능과 영역을 혼동하는 것을 커다란 오류를 범하는 일이라고 했다. 세상을 복음으로 통치하려는 것도 잘못이고 그리스도인들을 무기와 법으로 통치하려는 것도 잘못이라고 했다. 그런데 중세 교회는 스스로를 신의 도성과 동일시하며 세속 통치권까지 행사하여 국가를 다스리려는 잘못을 범했다. 세속 통치자들은 영적 통치권까지 행사하여 교회를 간섭하려는 잘못을 범했다. 과격파 분파주의자들은 세속 통치권을 전적으로 부인하려는 잘못을 범했다.

루터는 이와 같은 통치권의 혼돈의 오류를 지적하며 두 통치 기관의 분리의 필요성을 강조해서 주장했다. “세속 통치자들은 그리스도의 주인이 되기를 원하며 교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 것을 가르치기를 원한다. 거짓 승려들과 분파주의자들은 항상 주인이 되기를 원하며 세속 통치 기관을 어떻게 조직해야 할 것을 가르치기를 원한다. 이처럼 마귀는 양편에서 일하기에 매우 바쁘다” (Psalm, 101:5).

루터가 처한 당시의 역사적 상황은 루터로 하여금 두 기관의 분리를 강조해서 주장하도록 만들었다. 찰스 황제와 독일의 영주들은 루터의 개혁운동에 적대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따라서 루터는 세속권이 그리스도인들을 간섭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루터는 그의 「세속 통치권」의 제2부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그의 입장을 천명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 아무 것에 의해서도 지배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안에서 다스림을 받고 외부적 행위에 의해 다스림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그들에게 충분하다.” (Temporal Authority”, p.307)

“두 통치 기관의 통일”

루터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세계는 그리스도인들만이 사는 세계였고 그와 같은 세계에는 세속적 통치권이 필요 없었다. 또한 비록 악한 세상 안에서 살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원칙적으로 성령에 의하여 내적으로 지배 받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의 실제적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인류의 대부분은 불신자이고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들 가운데서 살며 죄악의 영향 아래서 살고 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와 질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죄악을 억제하는 세속 통치권이 필요한데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존중하고 그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그리스도인들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세상의 질서를 위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속 통치권이나 법률이 필요 없다면 왜 바울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롬 13:1)고 했고 베드로는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순복하라’(벧전 2:13)고 했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을 위해서는 법률이나 처벌이 필요 없다. 그것은 그들에게 필요하지도 않고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그것은 온 세상을 위하여 즉 평화를 유지하고 죄를 처벌하고 악인을 견제하기 위하여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발적으로 세속 통치권에 복종하고, 세금을 지불하며, 통치자들을 존경하고 통치권을 돕기 위해 모든 봉사를 제공한다. 자신을 위해서는 이와 같은 일들을 할 필요가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한 일에 자신을 내맡긴다.” (Temporal Authority”, p.279)

루터는 그리스도인들은 원칙적으로는 성령에 의하여 내적으로 지배 받기 때문에 세속 통치권의 직접적인 지배가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에 의해서 지배 받는 ‘의인들’인 동시에 아직 옛 성품에 의해서 지배 받는 ‘죄인들’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윤리적인 잘못을 얼마든지 범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도’ 세속 통치권에 의해 견제를 받음이 필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루터는 두 통치 기관이 모두 세상을 다스리시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관이기 때문에 서로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오른손’과 ‘왼손’에 비교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두 가지 방법이다. 하나님은 ‘오른손’과 같은 교회와 ‘왼손’과 같은 국가기관을 통해서 세상을 다스리신다.

“두 통치 기관이 모두 필요한데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된다.” (Temporal Authority”, p.282) 영적 개종과 외적 평화의 유지가 모두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두 종류의 통치 기관을 세우셨다. 하나님 자신이 두 통치 기관의 설립자요, 주인이요, 관리자요, 보호자이며 심판자이시다. 비록 세속 통치 기관이 사탄의 왕국이 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 기관을 다스리신다. 사탄 자신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봉사하게끔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