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강변교회 담임)

루터에게 있어서 정치는 결코 중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의 중요 관심사는 철두철미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말씀이었다. 그러나 루터는 개혁 운동의 진행 과정에서 정치와 무관할 수는 없었다.


“루터와 정치”
루터에게 있어서 정치는 결코 중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1522년 바르트부르그의 피신 생활로부터 빗텐베르그로 되돌아온 루터는 그곳에서 진행되고 있던 과격파 개혁운동을 비판하며 그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인간적인 성급한 방법으로 개혁을 시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에 근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씀이 일을 이루시도록 우리는 우리의 노력이나 간섭을 배제하면서 수종들어야 할 뿐이다. 우리는 말씀을 전파할 뿐이고 그 결과는 오직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맡겨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오로지 설교하고 가르치고 저술할 뿐 아무도 무력으로 억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말씀이 일을 이루시도록 수종들 뿐이다.” (“Eight Sermons at Wittenberg, The Second Sermon”)

그러나 루터는 개혁 운동의 진행 과정에서 정치와 무관할 수는 없었다. 1520년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루터는 그의 개혁운동을 지원하고 있던 세속 통치권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촬스 황제가 루터의 성경을 몰수하려 했을 때 루터는 세속 통치권이 영적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고 이를 반박했다. 루터는 1522년 말경 그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세속 통치권에 대한 그의 입장을 밝히는 「세속권 어디까지 복종할 것인가?」라는 작품을 저술했는데 루터는 그 가운에서 두 왕국에 대한 개념을 피력했다. “우리는 온 인류를 두 종류로 구분해야 한다. 즉 하나님의 왕국에 속한 자와 세상의 왕국에 속한 자로 구분한다. 우리는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왕국을 만족시키고 외적으로는 세상의 왕국을 만족시킨다.” (Temporal Authority, To what Extent It Should Be Obeyed”)

두 왕국에 대한 개념이 루터가 직면했던 역사적 상황의 산물만은 아니었고 루터에게 전혀 새로운 개념도 아니었다. 프란츠 라우(Franz Lau)가 지적한 대로 “루터에게 있어서 두 왕국에 대한 개념은 그의 신학 체제 전반에 걸쳐 깊숙이 흐르고 있는” 신학적 개념이었고 기독교 전통에서 항상 찾아볼 수 있는 개념이었다. 신약은 ‘육’과 ‘영’ 또는 ‘현세’와 ‘내세’를 구분하는 ‘이원론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고, 어거스틴은 그의 역사 신학을 ‘두 도성’의 관점에서 기술했다.

“이원론적 이해: 두 왕국”
루터는 두 왕국(kingdoms, Reiche)을 어거스틴의 ‘신의 도성’(civitas Dei, una Dei) 과 ‘지상의 도성’(civitas terrena, altera diaboli)과 같은 의미의 적대적인 두 영적 실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했다. “두 왕국은 상호 끊임없는 전쟁을 계속하는 바, 하나님의 왕국과 사탄의 왕국 사이의 중간 왕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Bondage of the Will”) 사람은 하나님의 왕국에 속하지 않으면 세상의 왕국에 속하게 된다. 두 종류의 사람들을 지배하는 삶의 원리와 동기도 상이하다. “사람은 두 왕국 중 하나에 속하게 된다. 한 왕국에서는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에 의해 지배되는 대신 자기 자신의 의지와 생각에 의해 지배된다. 다른 왕국에서는 자기 자신의 생각에 맡겨지지 않고 하나님의 의지와 생각에 의해 인도된다.” (“Bondage of the Will”) 어거스틴 역시 두 도성에 속한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상이한 원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애’(amor sui)와 ‘신애’(amor Dei)라고 지적했다.

루터의 ‘이원론적’ 세계관은 그의 체험적 신학에 근거하는 바 인간의 죄성과 사탄의 끊임없는 공격을 체험한 그의 체험의 신학에 근거했다. 루터는 바울과 어거스틴처럼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자기 안에서 ‘영’(spirit)과 ‘육’(flesh)이 끊임없이 싸우고 있음과 자기 속에 자리잡은 ‘생래의 죄성’을 항상 의식하고 있었다. 루터에게 있어서 ‘육체’는 인간의 몸과 신체적 특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에 대적하는 모든 죄성을 의미했다. “성경이 육에 대해서 언급할 때 항상 영에 대적하는 것으로 묘사한 것을 보면 육체란 성령과 대적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Bondage of the Will”)

루터는 또한 사탄의 실재를 항상 심각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사탄의 세력이 하나님을 대적해서 항상 역사하고 있음을 의식했다. 말씀의 원수들과 모든 거짓 교훈들과 분파 운동의 배후에서 역사하는 것이 사탄임을 항상 의식하고 있었다. 루터의 ‘밧모섬’인 바르트부르그의 피신 생활 중에서도 루터는 사탄을 심각하게 의식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이 적막 가운데서 나는 사탄과의 싸움을 천 번도 더 하고 있다. 사탄의 변신체인 인간들과 싸우는 것이 하늘에 있는 영적인 악의 세력과 싸우는 것보다 훨씬 쉽다. 나는 자주 넘어지지만 하나님의 오른손이 나를 다시 붙잡아 일으키신다. 지금이야말로 힘을 다해 사탄과 대적하며 기도할 때이다. 그놈은 지금 독일을 공격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실까 봐 두렵다. 내가 지금 기도에 너무 게으르기 때문이다.” (Bainton, Her I Stand”) 물론 사탄과 그의 모든 활동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에 존속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최대의 원수이다. 하나님의 세력과 사탄의 세력은 항상 심각한 대결을 이루고 있다. (“Bondage of the Will”) “세상과 세상의 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취할 수도 없고 취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은 가만히 게실 수도 없고 가만히 계시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 두 신들은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소란이 있을 뿐이다.”(“Bondage of the Will”)

만약 이와 같은 루터의 이원론적 ‘두 왕국’ 개념을 역사적 제도인 교회와 국가에 그대로 적용시켜 이해한다면 잘못된 극단적인 이원론적 사회 정치 윤리관이 초래될 것이다. 많은 루터학자들이 그와 같은 오류를 범했다. 그래서 루터의 ‘극단적인 양분법 윤리’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나타나기도 했다. 루터 자신이 이와 같은 비난을 전적으로 모면할 수는 없다. 그는 때때로 영적 실재를 가리키는 ‘왕국’(Reiche, kingdom) 을 역사적 제도를 가리키는 ‘통치 기관’(Regimente, government)과 혼동하여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이원론적 양분’을 극복하기 위해 ‘실재론적 통일’을 시도했다. 다음에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