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대표, 강변교회 담임)

루터는 자기 대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아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탑 속의 체험’을 한 후 이제는 선행도 고행도 성자 숭배도 종교 의식도 아닌 성경과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을 기독교의 핵심으로 삼게 되었다.


“개혁의 봉화”
루터가 처음부터 종교개혁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루터가 그 당시 중세 교회의 사치와 탐욕과 무지를 통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복음 진리를 체험한 후에도 비텐베르그(Wittenberg)의 수도원과 대학과 교구에서 연구, 저술, 교수 및 설교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1517년 루터가 개혁의 봉화를 들어야 할 기회가 왔다. 자기 교구의 양떼들이 면죄부를 얻기 위해 성 밖으로 몰래 빠져 나가는 것을 목격했을 때 루터는 이를 묵과할 수 없었다.

면죄부(indulgences) 제도가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십자군 때부터였다. 성지를 회복하기 위해 이교도들과 싸우며 생명을 내건 사람들에게 면죄의 특혜를 베풀기 시작했고, 후에는 성지 탈환에 직접 참여하는 대신 기부금을 바치는 사람들에게까지 같은 혜택을 부여했다. 면죄부 제도가 교황청의 중요한 재원이 되기 시작하자 중세 교회는 성당, 수도원, 병원들의 건축을 위해 기부금을 바치는 사람들에게까지 면죄부를 배부하게 되었다. 그 당시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은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여 100년 이상이나 공사하여 왔지만 완공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교황 레오 10세(Leo X)는 성당을 신속히 완공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한편 독일에서는 브란덴부르그의 알버트(Albert of Brandenburg)가 할베르슈타트와 마그데부르그의 감독이었는데 그 당시 가장 큰 교구인 마인츠(Mainz)의 감독직이 비게 되자 교황에게 마인츠의 감독직을 요청했다. 교황은 그 대가로 12,000 두캇(ducats)을 요구했고 이에 대해 알버트는 7,000 두캇을 내겠다고 했다. 결국 10,000 두캇을 내기로 합의가 이루어졌고 그 대신 레오 10세는 알버트가 후거(Fuggers)가의 은행에서 빌려온 빚을 갚게 하기 위해 그의 영토 안에서 8년 동안 면죄부를 팔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그리고 면죄부 판매금의 반으로 빚을 갚고 반은 베드로 성당 완공을 위해 교황에게 바치게 했다. 알버트 감독은 면죄부 판매와 수금을 위해 도미니칸 교단의 수사이며 웅변가인 텟젤(John Tetzel)을 선정했는데 그가 비텐베르그 성밖에서 면죄부를 팔고 있었다. 교황의 권위를 나타내 보이는 십자가와 교황의 면죄부 교서를 군중들 앞에 높이 내세우고 텟젤은 웅변조로 설교하기 시작했다.

“여러분들, 들으시오. 하나님과 성 베드로가 여러분들을 부르십니다. 여러분들의 영혼의 구원과 세상을 떠난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의 구원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승려들, 귀족들, 상인들, 처녀들, 부인들, 청년들, 노인들, 여러분 모두 지금 성 베드로의 교회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가장 거룩한 십자가를 방문하십시오. 여러분들이 이 세상의 유혹과 위험 가운데서 맹렬한 시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리고 앞으로 여러분들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될지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죄를 슬퍼하고 죄를 고백하고 그리고 기부금을 바친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죽은 친척들과 친구들이 여러분들을 향해 애원하며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오. 우리는 무서운 고통 중에 빠져 있는데 당신들은 적은 돈으로 우리들을 건져낼 수 있지 않소.’ 여러분들은 저들을 건져내기를 원치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귀를 여십시오.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애원하며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우리가 너희들을 낳고, 양육하고 기르고 재산까지 남겨 주었는데 너희들은 어찌 그렇게도 잔인하고 인색해서 조그만 돈을 내어 우리들을 건져 내려고도 하지 않느냐?’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들의 부모들을 구해낼 수가 있습니다. 동전이 부모들을 구해낼 수가 있습니다. 동전이 궤 속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영혼이 연옥에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저들의 영혼을 낙원으로 인도하기를 원치 않으십니까?”(Here I Stand, p.78).

면죄부의 가격은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임금, 왕후, 대감독은 금화 25 풀로린, 수도원장, 고위 성직자들, 귀족들은 금화 20 풀로린, 하위 성직자들과 귀족들은 금화 6 플로린, 평민들은 금화 1 플로린을 지불하고 면죄부를 샀다.

루터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1517년 만성절 전날 밤인 10월 31일 루터는 비텐베르그의 성곽교회(Castle Church)의 문에 95개 조항(The Ninety-Five Theses)을 게시하고 이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를 원했다. 95개 조항의 주장들은 간결하고 대담했으며 절대적이었다. 95개 조항은 라틴어로 씌어졌는데 그 내용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베드로 성당 건축을 반대했다. 성 베드로 사원 신축을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허비함은 불합리하다. 이 사원이 기독교가 공유하는 보화라고 하는 데는 조소를 보낸다. 우리가 할 것은 먼저 산 성전(living temples)을 지어야 할 것이요. 다음에는 마을의 교회, 그리고 나중에 베드로 성당을 지어야 할 것이다. 양들의 가죽과 살과 뼈로 지을 바에는 차라리 베드로 성당을 재가 되게 버려 두는 것이 나을 것이다.

둘째, 교황이 연옥을 다스릴 수 있다는 주장을 반대했다.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형벌을 면제할 수 없다. 교황은 자신의 판단이나 교회법에 의해서 부과된 형벌을 면제할 의사나 능력을 갖지 않는다. 교황은 죄책을 면제할 수도 없다. 교황이 연옥을 다스릴 수 있다면 왜 사랑으로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다 구원하지 않는가?

셋째, 면죄부 제도의 해로움을 지적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하셨을 때 신자의 생활 전체가 참회의 생활이 될 것을 요구하신다.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죄를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것은 기독교 교리와 맞지 않는다. 면죄부를 삼으로 구원의 확신을 얻었다고 믿는 자들은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면죄부는 가장 악독한 제도이다. 방종하게 만들고 결국 구원을 해치기 때문이다. 구원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자기 안에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 부르짖어야 하는데 면죄부는 이것을 파괴한다. 죄인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죄의 공포로 불타야 한다. 이것이 연옥의 고통이다. 연옥이 어디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연옥의 고통을 경험할 수 있음을 나는 안다. 이와 같은 고통으로부터 구원이 시작된다. 자신이 완전히 끊어버림을 당했다고 믿을 때 구원의 빛이 비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믿음을 통해서 평화가 임한다. 이와 같은 경험이 없는 자는 비록 교황으로부터 백만번 사함을 받을 지라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Here I Stand, pp.7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