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회신학대학교 김명용 조직신학 교수

Ⅲ. 성령론의 바른 길

1.성령과 개인의 구원
2. 성령과 하나님의 나라
4) 성령과 사랑과 생명의 세계

바울에 의하면 성령의 제일가는 은사는 사랑이다(고전 12:31). 갈 5:22에 의하면 성령의 열매 역시 사랑이다.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출발점이다. 가난하고 곤경 속에 있는 자에 대한 긍휼은 성령의 은사이다.(롬12:8). 따라서 성령은 가난하고 곤경 속에 있는 자에 대한 디아코니아를 일으킨다. 디아코니아를 교회의 영적인 과제에 속하지 않고 세상적인 어떤 일로 생각하는 것은 치명적인 영적인 오류이다.

그런데 이런 오류를 한국의 거의 모든 교회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오류가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성령의 역사가 너무 종교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디아코니아는 성령에 의해 일으켜지는 성령의 역사로 교회의 본질적 과제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성령의 활동에 바르게 동참하기를 원한다면, 디아코니아를 개인적인 동정이나 사적인 자비의 차원으로 제한시켜서는 안 된다. 바른 디아코니아를 위해서는 정의와 자비의 법이 필요하다. 정의와 자비의 법을 제정하는 것은 가난한 자와 힘없는 자들을 계속적으로 보호하는 자비의 구조를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은 구조적 보호가 없이는 결국 비인간화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따금씩 주어지는 동정적 행위로는 이들이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랑과 자비의 세계는 사회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사랑과 자비의 법의 제정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성령은 정의와 자비의 법의 근원이다. 성령의 교회는 가난하고 힘없는 자에 대해 민감한 교회이고 정의와 자비의 법을 사회 속에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교회이고 인간이 비인간화되는 것을 막는 교회이다. 정의와 자비의 사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선취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교회는 정의와 사랑의 세계를 세운다.

성령은 정의와 자비의 세계를 세울 뿐만 아니라 생명의 세계를 건설해 나가는 영이다. 생명에 대한 사랑은 성령의 사역의 핵이다. 성령은 죽음의 모든 도구를 파괴시킨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의학의 발전은 성령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 성령은 암과 에이즈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그들에게 생명과 삶을 부여하기를 원한다. 암을 정복하고 에이즈를 정복하기 위한 의학자들의 연구와 고투는 성령의 사역과 관련이 있다.

병을 고치는 성령의 능력은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도 나타나지만 의학적 발전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목사와 의사는 죽음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함께 손 잡고 나란히 일할 수 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의사는 병든 자를 고치면서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것이다. 의사들의 활동을 하나님의 나라와의 관계에서 제외시키면 안 된다. 의사들 역시 생명의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성령의 중요한 도구들이고, 바로 이곳에 의사들의 하나님의 나라 앞에서의 소명이 있다.

생명의 성령은 땅 위에 생명의 문화를 확장시킨다. 냉소주의는 생명의 문화와 관련이 없다. 청소년들은 절망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문학과 음악은 생명의 문화의 적이다. 청년들을 무의미한 혁명에 생명을 희생시키도록 만드는 이데올로기 역시 생명의 문화의 적이다. 금욕적인 종교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은 색과 회색만 있는 문화 역시 생명의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생명의 문화는 색깔이 영롱하고 찬란하고 기쁨이 넘친다. 생명의 문화는 영롱하고 찬란하고 의미 있는 창조세계에 대한 감각과 정서와 관련이 있다.

어거스틴(Augustinus)은 ‘고백론’에서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나는 무엇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육체의 아름다움을 사랑할 수 없으며 … 세상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음색을 지닌 달콤한 멜로디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고백론Ⅹ,6,8). 그러나 이 유명한 어거스틴의 고백에 반대해서 몰트만은 그의 최근의 성령론인 ‘삶의 원천’에서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육체의 아름다움을 사랑합니다. 나는 움직이는 것들의 리듬을 사랑하며 눈동자의 빛남과 포옹할 때의 느낌과 감정을, 영롱한 창조세계의 색깔과 향기를 사랑합니다.” 생명의 문화는 삶의 기쁨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이다. 그것은 육체적 삶을 억압하고 영혼만의 경건을 목표로 하는 문화가 아니다. 성령은 영롱하고 찬란하고 기쁨과 의미로 가득찬 세계를 만드는 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