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대표, 강변교회 담임)

“어째서? 어째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버림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나 자신이 버림을 당하는 것은 얼마든지 타당한 일이다. 나는 약하고 불순하고 불경건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약하지도 불순하지도 불경건하지도 않으신데…. 어째서? 어째서?” 다음 순간 루터는 벼락에 맞은 듯한 놀라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버림당한 그리스도를 만난 루터”

로마에서 돌아온 루터는 비텐베르그(Wittenberg)의 어거스틴 수도원에서 새로운 참회의 방법으로 영혼의 평안을 얻어 보려고 힘썼다. 한번 죄에 대해 고해(penance)를 시작하면 때로는 6시간 동안 계속하기도 했다.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서도 그는 깊은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수도원장 슈타우피츠는 화를 내곤 했다. “마르틴, 하나님은 그대에게 화를 내지 않는데 어째서 그대는 하나님에게 화를 내는가?”

참회는 루터에게 평안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깊은 죄의식과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무 잎사귀 하나가 바람에 불려 떨어져도 부들부들 떨었다. 꿈 속에서 마귀는 자기를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데 자기를 도우려는 천사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나님은 계속 무서운 심판주로만 보였다(Bainton, Here I Stand, pp. 52-56).

신비주의자였던 슈타우피츠는 루터에게 신비주의적 방법을 제시했다. 인간적 노력을 포기하고 대신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과 그의 사랑 가운데 빠져 버리는 방법이었다.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자기 주장과 자기 노력을 포기하고 마치 하나의 물방울이 대양 속으로 촛불이 태양의 광채 속으로 빠지듯, 피조물이 창조주의 품 속으로 빠져버리는 방법이었다. 루터는 때로 천사들의 찬양 속으로 높이 이끌려 간듯한 황홀경을 체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하나님과 끊어진 듯한 절망의 늪에 깊이 빠지곤 했다. 하나님은 접근하기에는 너무 거룩하고 장엄하게 보였다.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미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나님은 심지어 공의롭지 못하고 변덕스럽게 보였고 자기는 잊어버린 자로 느껴졌다. 루터는 태어난 것을 한하며 하나님을 미워한다고 부르짖었다.

슈타우피츠는 어느날 수도원 정원의 배나무 밑에서 루터에게 마지막 방법을 제시했다. 성경을 연구하여 비텐베르그 대학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라는 것이었다. 루터는 한숨을 쉬며 15가지 이유를 들어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루터는 슈타우피츠의 권면을 받아들여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년만인 1512년 9월에 신학박사 학위를 획득했고 1513년 8월부터 비텐베르그 대학에서 시편 강해를 시작했다(Here I Stand, pp.56-60).

루터는 드디어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강해하는 가운데 복음을 접하는 종교적 체험을 했다. 첫번째 종교적 체험이 슈토테른하임의 뇌성 벽력 가운데서 죽음의 공포로 임했고, 두번째 종교적 체험이 제단에서 미사를 집행할 때 소멸하는 불과 같은 공포로 임했는데, 이번에는 세미한 음성으로 임했다. 성경 연구와 성경 강해는 루터에게 다메섹 도상과 같았다.

1514년(혹은 1513년) 가을 어느 날 루터는 비텐베르그 어거스틴 수도원 탑 속 서재에서 소위 ‘탑 속의 체험’이라고 불리는 복음적 체험을 가졌다. 시편 22편을 읽고 있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루터는 자기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그려 보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 시편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 글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묘사한 글이었음을 생각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놀라움에 사로잡혀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다. “어째서? 어째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버림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나 자신이 버림을 당하는 것은 얼마든지 타당한 일이다. 나는 약하고 불순하고 불경건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약하지도 불순하지도 불경건하지도 않으신데…. 어째서? 어째서?” 다음 순간 루터는 벼락에 맞은 듯한 놀라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하나님으로부터 끊어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나 루터 대신, 그리스도가 친히 하나님으로부터 끊어버림을 당했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가 내 대신 죄를 담당하시고 나 대신 죄가 되셨다!”

루터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은 이제는 더 이상 무서운 심판자가 아니라 사랑과 용서로 가득 찬 구주의 모습이었다. 십자가에 달려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신 구주의 모습이었다. 하나님의 모습도 전혀 새로워졌다. 진노와 심판의 하나님이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으로 나타났다.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인간의 어떠한 노력이나 성취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믿음은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얻어지는 선물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루터는 또한 로마서를 읽으며(1515년 또는 1516년) 하나님의 공의와 칭의와의 관계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바울의 로마서를 이해하기를 그렇게도 소원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공의’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 말을 하나님이 공의로우셔서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것으로만 이해했다. 그리고 죄인인 내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공의로우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를 미워했고 불평을 늘어 놓았다. 그러나 나는 밤낮 묵상하면서 그 뜻을 이해하기를 원했다. 드디어 ‘하나님의 공의’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란 말을 연결시킴으로 그 뜻을 깨닫게 되었다. 이 ‘의’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을 의롭다고 여기시는 하나님의 ‘의’인 것을 깨달았다. 이 진리를 깨달았을 때 나는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 마치 천국의 문이 열려서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이제 모든 성경은 나에게 새로운 의미를 던져주었다. 전에는 ‘하나님의 의’라는 말이 나의 마음 속에 미움으로 가득 채웠으나 이제는 너무나 달콤한 사랑으로 채워준다. 사도 바울의 이 말이 나에게 천국으로 가는 문이 되었다.”

성경 말씀과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의 확신은 슈타우피츠나 버나드나 스콜라주의자들이나 신비가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구원의 빛을 비쳐 주었다. 루터는 성경과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을 기독교의 핵심으로 삼게 되었다. 루터는 이제 Sola Scriptura, Sola Gratia, Sola Fide (그리고 Sola Christus, Soli Deo Gloria)의 모토를 내세우고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 준비를 하게 되었다(Here I Stand, pp.6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