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회신학대학교 김명용 조직신학 교수

Ⅲ. 성령론의 바른 길

1.성령과 개인의 구원
2. 성령과 하나님의 나라
1)성령과 정의

2)성령과 평화
성령의 열매는 평화이다(갈5:22).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니라”(마5:9).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성령은 정의 뿐만 아니라 땅 위에 평화를 수립한다. 증오심과 전쟁과 살인과 죽음의 역사를 땅 위에 몰고오는 마귀의 활동에 반하여, 성령은 생명과 사랑의 평화를 땅 위에 수립하는 영이다.

아돌프 히틀러(A. Hitler)에 의해 6백만 유대인이 살해당하고 있을 때 마귀는 어디에 있었겠는가? 마귀는 6백만 죽은 유대인의 시체 위에서 춤추며 웃고 있었을 것이다. 요8:44에 의하면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라고 예수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마귀는 어디에 있었겠는가? 마귀는 배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주역들과 그들의 정치를 주무르고 있었을 것이다.

성령의 사역을 오직 영적인 영역에서만 인식한다면, 정치적, 군사적 영역에서의 성령의 활동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교회의 정치적, 군사적 책임의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지금까지의 성령론이 살인과 전쟁과 죽음으로부터 사람과 세계를 보호하고 평화를 수립하고자 하는 성령의 활동을 인식하지 못한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세상에 평화를 수립하는 것은 성령의 활동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성령의 활동을 내적, 영적 세계로 제한시키면 안된다.

오순절 교회의 성령론이 질병을 죽음의 세력으로 보고 질병과 죽음에서의 해방과 성령의 사역을 연결시킨 것은 옳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 성령론의 핵심적인 문제점은 성령의 사역의 사회적, 정치적 연관성을 깊이 인식하지 못한 점이다. 오순절 교회의 성령론은 성령의 사역을 개인적 차원 속에서만 주로 이해했지 하나님의 나라라는 시각에서 정의와 평화와 생명의 영역으로 넓게 인식하지 못했다. 성령은 정치, 경제, 군사, 사회, 질병의 모든 영역에서 죽음의 구조를 파괴하고 평화와 생명의 질서를 만드는 영이다.

3) 창조의 영인 성령
창조의 영인 성령에 대해서는 신약성경보다 구약성경이 더 많이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창1:2에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고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창1:2에서 창조의 영인 성령에 대해 분명한 인식에 도달하는 것은 어렵다. 창조의 영인 성령에 대한 더 나은 인식을 위해 우리는 욥기와 시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기운으로 이루셨도다”(시33:6).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시104:36).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욥33:4).

이 구절들을 통해서 개혁교회의 성령론은 성령을 세계를 보존하는 영으로 인식했다. 구약성경에는 건축과 예술 및 창조세계에 관한 지혜와 성령의 은사를 연결시키고 있다. 개혁교회의 성령론이 성령과 창조세계와의 관계성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은 이 성령론의 장점이다. 칼빈을 비롯해서 아브라함 카이퍼(A.Kuyper)같은 신학자들은 성령론의 우주적 측면을 인식했던 훌륭한 대표적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개혁주의 전통이 창조세계에서의 성령의 사역을 일반계시 영역에서, 또한 창조세계의 보전이라는 관점에서만 인식한 것은 미흡한 이해였다. 이 경우 창조세계에서의 성령의 활동은 성령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배경을 형성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1895년에 출간된 몰트만의 ‘창조 안에 계시는 하나님’은 창조세계를 이해하는 전환점이 된 책이었다. 이 책에서 몰트만은 우주적 성령을 발전시키고 있다. 몰트만에 의하면, 창조세계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배경만이 아니다. 오히려 전체 창조세계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세계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구원의 역사는 전체 창조세계의 구원의 한 부분이다. 성령은 전체 창조세계를 죽음의 힘에서부터 해방시키기 원한다. 바울에 의하면 피조물이 허무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와 같은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원하고 있다.(롬8:21)

전체 창조세계는 성령의 해방의 사역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사11:6 이하의 본문은 성령의 해방사역의 우주적 차원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창조세계의 종말론적 이미지는 평화이고, 동물들간의 살해로 인한 고통이 없는 모든 피조물의 해방의 세계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구원사역의 완성은 인간의 구원만으로 종국에 도달하지 않는다. 성령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구원해서 하나님의 평화와 영광이 빛나는 세계를 만드는 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