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회신학대학교 김명용 조직신학 교수

Ⅲ. 성령론의 바른 길

1.성령과 개인의 구원
2. 성령과 하나님의 나라

1)성령과 정의
눅 4:18~19은 오늘의 성령론을 위해 매우 중요한 본문이다. 이 본문은 성령론의 사회적 차원을 우리에게 밝히 가르쳐 주고 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위의 본문은 사61:1~2의 인용이다. 이 본문에서 주의 영은 눌린 자를 해방시키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부여하는 영이다. 특히 이 본문에서 주의 은혜의 해가 희년을 의미한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희년은 종살이 하던 자들이 해방되고, 토지를 상실했던 사람들이 다시 옛 조상들의 땅을 되찾는 사회적 해방의 해이다. 그러므로 이 해는 땅을 잃은 사람들, 종살이 하던 사람들과 같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문자 그대로 기쁨의 해이다. 이 해는 사회적, 경제적 해방의 때이다. 여기에서 주의 영과 사회적, 경제적 해방과의 깊은 연관 관계를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령과 정의와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본문은 마12:18~21이다. 이 본문은 사 42:1~4의 인용이다. 이 본문에서 성령이 임한 주의 종이 정의를 선포하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이 정의가 이방인들에게 희망임을 선언하고 있다. 사 42:1~4에 의하면 성령이 임한 주의 종은 하나님의 정의의 보편적 확대와 확립을 성취하는 자로 언급되고 있다.

또 하나의 성령과 정의와의 깊은 관계를 가르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본문은 사 11:1~5이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 할 것이요 그 위에 여호와의 영이 강림하시리니 …. 그가 가난한 자를 판결해 주며, 땅의 가난한 자를 위하여 판결하여 정당함을 가져다 줄 것이며, 입술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

여호와의 영은 땅에 정의를 수립하고 악을 없애고 힘없는 가난한 자들에게 정당함을 돌려주는 영이다. 이 여호와의 영의 활동으로 마침내 세상은 평화와 정의로 가득차게 된다.

성령은 사회적 정의와 해방의 근거이고 원천이다. 성령은 세상 속에서의 압제의 사슬을 끊고 불의를 몰아내고 공평과 정의로 빛나는 세계를 만들고자 한다. 우리가 성령의 사역을 생각할 때, 우리는 먼저 불의와 압제와 차별과 강탈로 고통하며 울부짖는 자들을 보호하고 해방하는 정의의 영인 성령을 언급해야 한다.

개혁교회의 성령론과 오순절 교회의 성령론에 공히 정의에 관한 항목이 없다는 사실은 이 두 성령론 모두의 문제점이다. 몰트만과 벨커에 의하면 정의를 위한 성령의 해방하는 사역은 성령론의 핵심적 항목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마르틴 루터 킹 목사와 로메로 대주교 같은 사람들은 성령으로 가득찬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들이 성령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영적인 무지이다.

교회는 정의를 위한 성령의 해방하는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 한국의 가톨릭 교회의 최근의 성장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독재정권 시절의 정의구현 사제단을 비롯한 가톨릭 교회의 정의를 위한 노력과 장애인이나 가난한 자들을 위한 가톨릭 교회의 노력이 그 중심에 있는 이유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국민들은 가톨릭 교회를 신뢰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가 이 신뢰를 얻은 것은 그 교회가 사랑과 정의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성장은 교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깊은 관계가 있다.

한국의 개신교회는 샤머니즘적 신앙과 이해하기 매우 힘든 병고치는 일들과 직통계시와 종말론과 이웃 사랑의 결여와 분파정의의 활동으로 국민적 신뢰를 잃은 것이다. 반면, 한국의 가톨릭 교회는 한국 사회 속에서 정의를 수립하고자 하는 성령의 활동을 행하는 교회였던 것이다. 성령의 일을 바르게 행하는 바른 교회가 성장하고 생명력 있는 교회가 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