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키온(왼쪽)과 사도요한(오른쪽)

1.1.1.1. 마르키온


“2세기의 다른 어떤 이단보다 기독교에 위협을 주었던 것은 마르키온(Marcion, 160년 사망)과 그의 추종자들이었습니다. 마르키온은 성경을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자로 명성이 나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죠. 아무튼 그가 쓴 작품들은 현존하지 않지만 그를 비판한 자료들을 통해 그의 사상들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터툴리안의 작품에서 잘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르키온은 약 85년에 폰투스의 시노페(흑해 근교)에서 부유한 선박주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감독의 아들이었고 그 자신도 역시 감독이었습니다. 성스러운 처녀를 미혹했다는 혐의로 부친은 그를 교회로부터 추방시켰습니다. 그는 135~140년에 로마를 방문해 그 곳에 있는 교회에 200,000 세스테르세스(sesterces)를 헌납합니다. 그는 자신의 신학을 발전시키면서 영지주의 교사 케르도의 사상을 구체화시켰습니다. 그에게서 그는 이사야 39~66장의 말씀 해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 즉 마르키온들을 거느렸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장로들에게 의심을 받아 144년 출교를 받습니다. 하지만 계속하여 자신의 가르침을 널리 확산시켜 나갔습니다. 대체로 이단자들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단체가 벌을 내릴 때 분파하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분파하는 자들을 모두 이단자로 보아서는 결코 안됩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도 봐야죠. 마르키온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 아니라고 가르쳤고,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그리스도가 그의 아들이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존경받는 서머나 감독이며 순교자인 폴리캅은 어느 날 마르키온을 만났습니다. 그 때 그를 가리켜 ‘사탄의 맏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마르키온은 약 160년경에 죽었지만 그를 추종하는 자들은 3세기까지 지속됐고, 4세기에 이르러서는 마니교에 연합되었습니다. 어거스틴도 마니교에 한동안 심취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마니교는 우리가 자칫하면 빠질 수 있는 거짓사실들이라 하겠습니다. 간략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원론’이라는 것입니다.”

“마르키온의 사상은 영지주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사상을 몇 가지로 살펴보면,

첫째, 그는 구약성경 자체를 포기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은 유대인들의 역사이고 조물주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바울만이 진실한 사도이기에 그가 쓴 디모데 전후서와 디도서를 제외한 서신들만 성경으로 봐야한다고 했습니다. 또 그는 누가복음만이 유일한 복음서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의 인용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는 하나님이지만 높으신 하나님과는 구별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것 외에는 그 높으신 하나님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조물주는 공의의 하나님이지만 매우 엄격하고 힘들게 하는 신이라 합니다. 이에 반해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새로운 왕국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며 조물주가 행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일들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계속하여 말하기를 조물주를 믿는 자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의도한 것이었으며, 그렇게 해야만 조물주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그들을 구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성육신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했기 때문에 가현설주의자임을 자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랑의 하나님과 조물주, 복음과 율법을 대치시키는 그의 이원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셋째, 육체의 부활은 없고 최후의 심판도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반드시 엄격한 금욕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결혼을 해서는 안됩니다. 심지어 결혼했던 자가 있으면 헤어져야만 한다고 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도 절제를 강조했으며 순교하기를 즐겼습니다.”

국제신대 역사신학 라은성 교수(eunr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