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강변교회 담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어거스틴은 참회록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밀란으로 온 것은 바로 암브로스 감독에게 온 것이었다.” (참회록, 5권 13장 23절). 이 한 마디 말 속에는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여러가지 요소와 환경에 의해서 떠밀려 다니지만 결국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의 손 안에서 움직인다. 어거스틴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데는 여러 가지 도움들이 필요했다. 암브로스, 모니카, 바울 서신, 폰티키아누스, 알리피우스 등이 그런 도우미들이었다.


“개종”(하나님의 품으로)(1)

어거스틴이 384년 가을 밀란에 도착한 후 암브로스를 만난 것은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암브로스는 감독으로서 형식적으로 인사하지 않았고 아주 친절하게 어거스틴을 맞아 주었다. “나는 내게 친절을 보여준 그를 처음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밀란의 감독으로 11년 동안 봉사해 오고 있던 암브로스는 키가 작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연약한 체구에 이마가 넓고 얼굴은 길고 침울하며 큰 눈을 가지고 있었고 손에는 성경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어거스틴에게 가장 깊은 영향을 준 것은 바로 암브로스의 ‘연약한’ 체구였다. 암브로스는 헬라 기독교 학자들의 전통을 송두리째 섭렵하여 당시 라틴 세계에서 가장 유식하고 초 현대식으로 설교를 할 수 있었다. 암브로스는 구약을 마니교의 비판으로부터 변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어거스틴에게 감명을 주었다. 이제 어거스틴은 구약의 족장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암브로스의 설교를 듣고 보니 구약은 진정한 ‘철인들’의 당당한 행진이 기록된 책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 모니카가 385년 봄 밀란에 도착하자 암브로스와의 관계가 보다 깊어졌다. “어머니는 전보다 더 열심히 서둘러 교회에 갔다. 그리고 암브로스의 말씀을 마치 생수처럼 들이켰다. 어머니는 그를 하나님의 천사처럼 사랑했다. 내가 이렇게 마음이 움직이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도 그 분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참회록, 6권 1장 1절).

암브로스가 어거스틴에게 미친 영향은 그들이 직접 접촉했던 회수에 비하면 비교가 안될 정도로 컸다. 어거스틴은 한 편지에서 암브로스가 한 말을 기억하며 이렇게 기술했다. “나는 이 말을 두고 두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마치 하늘로부터 내려온 신탁인 것처럼 취급했다.” 어거스틴은 밀란에 있을 때 14년 동안 동거해 온 그의 정부와 이별을 해야만 했다. 모니카가 아들의 정식 결혼을 주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고백했다. “이것은 나의 가슴을 찢어 유혈이 낭자하게 한 커다란 충격이었다. 나는 정말 그녀를 사랑했는데…” 무명의 여인은 울며 밀란을 떠나 아프리카로 가야만 했다. “다시는 남자를 알지 않기로 맹세하면서.” 아마 그녀는 어거스틴과 함께 사는 동안 훌륭한 가톨릭 신자로 생활했을 것이다. 그녀가 그와 같은 서약을 한 것은 세례를 받거나 성찬에 다시 참여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거스틴은 386년 여름 밀란에서 마지막으로 플라토의 철학 특히 플로티누스의 철학에 탐닉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철학적 자율성의 유혹을 거절하지 못하며 고민하고 있었다. 일종의 플로티누스적 ‘환희’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거기에 안주할 수는 없었다. 이와 같은 고민과 갈등 가운데서 그가 눈을 돌린 곳은 바로 바울 서신이었다. 어거스틴이 성경을 지혜의 권위 있는 원천으로 삼게 될 것이라고 암브로스도 이미 확언한 바 있었다. 386년 8월 아프리카 출신의 친구 폰티키아누스가 어거스틴을 방문했을 때 어거스틴의 책상 위에서 바울 서신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 그는 깜짝 놀랐다. 그는 어거스틴과 알리피우스에게 애굽의 수도사들의 이야기와 특히 안토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거스틴은 참회록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이것은 폰티키아누스가 우리에게 말해준 것이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동안, 오 주님, 주님은 내게로 얼굴을 돌이켜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 … 나는 나 자신을 똑똑히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러나 내가 내 자신으로부터 피할 장소가 없었습니다.… 내 인생의 여러 해가 지나갔습니다. 내가 19세에 호텐시우스를 읽고 나서 12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철학을 연구하도록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세상의 기쁨을 포기할 것을 연기하고 있었습니다. … 나는 알리피우스를 보았습니다. 나의 표정은 내 마음의 동요를 표출시켰습니다. 나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찌 된 것인가? 이 이야기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 사람들은 우리만큼 교육을 받지 못했는데도 일어나서 천국 문으로 밀어 닥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많이 배웠으면서도 이 살과 피의 세상에서 더듬거리고 있으니…’ 나는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우리가 숙박하고 있는 집에는 조그만 정원이 붙어 있었습니다. 나는 내 가슴 속을 찢어대는 고뇌에 밀려 이 정원까지 피해 나오고 말았습니다. 거기서는 아무도 나의 피맺힌 투쟁을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나와 나 자신만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나는 머리칼을 쥐어 뜯고 주먹으로 이마를 쳤습니다. 손가락을 쥐어 틀며 무릎을 껴안았습니다. 나는 그저 사소한 것 때문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가장 시시한 실없는 일, 과거의 온갖 애착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것이 나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속삭이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나를 버리실 건가요? 그러면 이 순간부터 영영 이별이예요. 다시 볼 수 없어요. 이제부터 이런 저런 일을 영원히 할 수 없게 되는 거예요.’ 나의 하나님, 그것이 내게 ‘이런 저런 일’이라고 속삭인 것은 무엇입니까? 너무도 지저분하고 부끄러운 일들이오니, 주님, 주의 긍휼을 베푸사 주의 종의 영혼을 그런 일로부터 풀어주소서. … 그리고 다시 절제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 육신의 더러운 속삭임에 귀를 막으라.’ 나는 이런 식으로 내 마음 속에서 나 자신의 자아에 관해 나 자신과 입씨름을 했습니다. 그동안 알리피우스는 내 곁에서 내 속에서 일어나는 소요의 결말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 영혼이 숨겨진 깊은 부분을 살펴 보았습니다. 나는 내 영혼 속으로부터 부끄러운 비밀을 짜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비밀들을 고스란히 내 마음의 눈 앞에 집합시켰습니다. 그때 내 속에서는 커다란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내 눈에서는 홍수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나는 일어나서 알리피우스 곁을 떠났습니다. 속이 후련할 때까지 울고 부르짖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는 알리피우스에게 방해받지 않을 만큼 떨어진 곳으로 갔습니다. 나는 무화과 나무 아래 몸을 던지고 눈에서 강물처럼 흐르는 눈물을 하염없이 흐르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그것은 당신께 드려진 합당한 제사였습니다.” (참회록, 8권 12장 2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