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강변교회 담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초대교회에 나타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심각한 신학적 주제는 “하나님이 누구신가?” 라는 삼위일체의 주제와 함께 “예수님은 누구신가?” 라는 기독론적 주제였다.


“인간인 동시에 신적인 존재로”

삼위일체가 하나님의 삼위의 신비를 이해하려는 지적인 시도(an intellectual attempt)라고 한다면, 기독론이란 그리스도의 양성 즉 신성과 인성과의 관계를 이해하려는 지적인 시도라고 하겠다.

기독론적 질문을 제일 먼저 던진 분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마16:15) 라는 질문을 던졌다. 신약이 기독론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을 인간인 동시에 신적인 존재로 묘사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육체를 따라" 알았다고 했고 예수님을 "랍비" 즉 선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동시에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신적 특성을 발견했다. 그의 신적 특성은 그의 부활에 의해 강하게 드러났다. 그래서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요, 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요20:28).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태초부터 계신 신적 존재라고 묘사했다. 신약은 예수님의 양성을 존재론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기능적 관점에서 이해했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양성이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은 별로 제기되지 않았다. 양성의 관계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는 초대교회 변증가들과 교부들에 의해 점차 나타났다.

“양성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이해들(1)”

처음 200여년 동안 속사도 교부들은 신약의 견해를 따라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그대로 받아들여 고백했다. 안디옥의 이그나시우스는 모순되는 듯한 양성을 그대로 받아들여 주장했다. 이그나시우스는 우리의 의사(Physician)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에게서 나신 분인 동시에 하나님에게서 나신 분"이라고 주장했다. 양성의 관계에 대해서 이그나시우스는 선재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인간의 성품을 취하시고 인간이 되셨다고 했다. 순교자 저스틴도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양성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저스틴은 로고스 개념을 사용했다. 즉 돌출하신 신의 이성이신 로고스가 창조의 사역에 적극 참여하셨고 부분적으로 인간 안에 나타나셨는데 그 로고스가 살과 피를 입고 인간이 되셨다고 했다.

이레니우스도 그리스도의 양성을 그대로 받아들여 주장했는데 그는 노스틱 이단이 신적 그리스도와 인간 예수를 분리한데 반대하여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의 연합을 강조했다. 이와 같은 주장에는 구속론적 동기가 적용됐고 하나님의 파괴된 구원의 역사를 회복시키고 총괄하기 위해서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 동시에 완전한 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터툴리안은 그리스도의 양성의 통일과 아울러 구분을 강조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양성의 통일과 연합을 강조하면서도 신성과 인성의 본질의 혼합이나 변함이 없이 양성이 그대로 머물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양성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이해들(2)”

희랍 전통에 선 알렉산드리아 학파도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 양성이 존재함을 주장하면서도 그의 신성을 더욱 강조하는 경향을 띄었다. 즉 “예수가 구주가 되기 위해서는 완전한 신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기독론은 구속론에 기초했다. 보다 정통적인 입장에 선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의 양성과 연합을 강조했는데 그리스도가 구주가 되기 위해서는 완전한 신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가 인간의 구주가 되기 위해서는 완전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히브리 전통에 선 안디옥 학파는 그리스도의 역사성과 인성을 강조했다. 안디옥 학파의 기독론도 구속론에 기초했다. 즉 “그리스도가 인성을 취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가 인간을 구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라는 논리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했다. 양성의 관계에 대해서 안디옥 학파는 신적 로고스가 인간 예수에게 들어가 밀접한 관계를 이루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른데 비해 인성을 강조한 안디옥 학파는 마리아를 ‘사람의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했다.

“양성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이해들(3)”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디옥 학파가 기독론에 관한 논쟁을 계속했는데, 431년 에베소 회의 때 그 논쟁이 절정에 달했고, 451년 칼세돈(Chalcedon) 회의에 와서 비로서 두 학파 간의 양해와 일치가 이루어졌다. 칼세돈 회의는 주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입장을 받아들여 그리스도 안에 양성이 혼돈 없이 유지되었다고 했다. 칼세돈 신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거룩한 교부들을 따라 우리 모두는 한 목소리로 한 분이요 동일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신성에 있어서도 완전하시고 인성에 있어서도 완전하시며, 참으로 하나님이시고 참으로 사람이시며, 이성이 있는 영혼과 그리고 육체로 구성되시었고, 신성에 있어서는 아버지와 동일본질이시며 인성에 있어서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이 우리와 동일본질이시되 죄는 없으시며, 신성에 있어서는 만세 전에 아버지에게서 나시었고 인성에 있어서는 이 마지막 날에 우리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어머니이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한 분이시고 동일하신 그리스도, 아들, 주, 독생자는 두 성품으로 구성하시되, 혼합 없이 변함 없이 분리됨이 없이 분할됨이 없으시며, 연합으로 인하여 양성의 차이가 결코 제거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각 성의 특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한 품격(one person)과 한 본질(one substance)안에 결합되어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하여 두 품격으로 분리되지 않고 한 분이시오, 동일하신 아들, 독생자, 하나님의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이는 처음부터 선지자들이 선언한 바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치신 바이며, 거룩한 교부들의 신조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바입니다”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졌다. 우리는 단순히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 라고 고백하고 믿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들의 신앙의 선배들을 따라서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의 신비를 더듬어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담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