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제사는 조상신을 섬겨 복을 받겠다는 기복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조상의 은공에 대한 감사함을 표?

조상제사 금지로 인한 수많은 순교자, 서구적 기독교만 기독교인가?

율법있는 자에겐 율법있는 자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한국 사회에서는 선교 초기부터 조상제사로 인해 10,000명 가까운 순교자가 발생했다. 16세기에 중국에서 포교활동을 했던 마테오 리치는 조상제사를 동북아시아의 문화적 유산으로 받아들이고 복음을 전파했던 반면, 이후 사회적 하층민에게 주로 복음을 전파했던 도미닉파 선교회 및 프란체스코 선교회는 유교적 상제례가 실질적으로는 귀신숭배신앙과 종교적 습합을 이루고 있는 현실을 보고는 교황청에 조상제사 금지령을 호소했다. 교황청도 그들의 호소를 받아들여 조상제사를 금지하게 되었는데, 이로인해 수많은 신자들이 사회적 규범을 깨뜨리고 ‘효’를 행하지 않는 자로 치부되어 순교당하게 된 것이다.

이같은 상황속에서 천주교는 다시 제 2회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선교현장의 종교적 전통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으로 돌아섰고, 현재까지 ‘토착화’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면서 전통적 조상제사 및 상제례의 많은 부분을 기독교 예식속으로 수용해오고 있다. 초기 선교 과정에서 한국의 전통문화 유산 일체를 서구 기독교 문화로 대치시키려 했던 것을 과오로 인정하고 선교 정책을 바꾼 것이었다.

반면, 개신교측에는 아직까지 토착화에 대해 그다지 많은 고려를 해오지 못했다. 토착화 운동이라 하면, 60년대 신학의 ‘비서구화’를 외쳤던 신학적 토착화 운동과 70년대 독재정부에 대항하는 민중운동의 일환으로써 전통문화를 찾았던 당시, 예배 의식의 토착화 운동이 있기는 했지만 성숙된 운동으로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예배 의식을 토착화한다고 해서 성만찬식에 쓰는 카스테라를 술떡으로 바꾸면서도, 포도즙은 그대로 쓰는 어색한 광경을 연출해, 전통적인 요소들도 본래의 맥락을 상실하고, 개신교 예배 역시 그 의미구조의 통일성도 위협당했다.

말할 나위없이, 상제례 토착화에 대한 연구와 실천은 그보다 더 미흡했다. 다만, 지난 95년 발표된 경동교회의 ‘기독교인의 가정의례준칙’은 개신교인들에게 매우 유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경동교회설립 50주년 기념으로, 두 해동안 전문학자들의 연구와 공회 작업을 통해 발간된 경동교회의 ‘가정의례준칙’은 상제례시 기독교인들이 알아두면 좋을 지침들을 신학적 이해와 함께 비교적 세세하게 열거하며, “복음의 문화적 화육”을 시도했음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잠시 그 내용을 소개해보자면, 지침서는 상제례에 임할 시 기독교인들이 가져야할 신앙적 원리로써 △삶과 죽음의 주관자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의 원리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공로를 믿는 영생 소망의 원리 △보혜사 성령 안에서 ‘성도(죽은자와 산자 포함)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 사랑의 원리 △문화적 다양성과 고유성을 긍정하고 포용하는 성육신 신앙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상제례에 임하는 기독인들의 기본 관점으로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제사행위는 ‘추모제’로 부르는 것이 좋다. - ‘예배’는 고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종교행위라는 측면에서, ‘추도’보다는 ‘추모’가 소망의 신앙을 간직한 기독교적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흔히 쓰는 ‘추도 예배’나, ‘추도식’이라는 표현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상제례 의식에서 ‘사자밥’을 놓는 것과 같은, 민속신앙과 습합된 귀신 숭배신앙은 불가한다. △촛불이나 향은 기독교적 상징의미로 바꾸어 피울 수 있다. △‘절’은 동아시아 문화전통에서 예를 표현하는 고유한 양식이므로 허용한다. △위패나 지방을 만들어 모시는 행동은 신령의 빙의를 전제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으나, ‘중심의 상징’이 필요할 때는 “***씨 제 @주기 추모제”라고 써붙인다. △고인이 먹도록 제사상에 음식물을 차리는 것은 옳지 않으나, 추모의 정을 꽃이나 음식물로 표현하는 것은 괜찮고 예식 후 음식물을 다함께 나눠먹는 것은 성도의 교제로써 좋다. △고인의 옷은 부정하게 생각해 태우지 말고, 깨끗하게 빨아 필요한 이에게 주도록 한다. △ 화장과 부활은 아무 상관이 없으므로, 묘지로 인한 토지 잠식 문제를 생각해 고인을 화장하는 것도 괜찮다. 는 것에 대해 조언한다.

이같은 내용은, 절하는 것 자체를 우상숭배라고 보았던 서구적인 근본주의 신앙에서 벗어나 한층 한국인의 문화를 기독교 복음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지침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토착화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의 상황에 따라 율법있는 자들에게는 율법있는 자같이, 이방인들에게는 이방인같이 탄력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며, 문화적 장벽에 막혀 복음의 본질이 손상되고 거부당하지 않도록 노력했던 사도바울의 정신을 본받는 데에 있다.

그리고, “기독교의 보편성이 침해되지 않도록, 각 나라의 문화요소에 담겨있는 그 나름의 세계관과 가치관 혹은 구원관, 신관에 대한 더욱더 진지하고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는 보수주의적인 충고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