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강변교회 담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철학과 복음과의 관계, 이성과 신앙과의 관계에 대한 상반되는 입장을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클레멘트와 라틴(칼타고)학파의 터툴리안이 취한 것을 살펴보았다. 클레멘트는 철학이 복음에 이르는 ‘준비’라고 보았고, 터툴리안은 철학이 ‘이단’의 어머니라고 보았다.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하므로 형성된 안디옥 학파는 복음의 역사성과 인간성을 강조했다. 안디옥 학파의 선구자인 사모사타의 바울은 예수의 인간성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사렛 사람 인간 예수는 기름 부음을 받아서 우리 주가 되시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기로부터의 인간이시다” 네스토리우스도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순종을 강조했다. “그리스도는 그의 고난과 그 자신의 완성을 통하여 우리의 순종을 완전케 하시었다” 여기서는 안디옥 학파에 대한 서술은 생략한다.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

초대교회에 형성된 다양한 학파들의 상반되는 입장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함으로 하나의 포괄적인 입장과 학파를 형성한 어거스틴의 입장을 살펴본다.

어거스틴은 이성과 신앙과의 관계에 대해서 첫 단계로, 신앙의 ‘우위성’(priority)을 강조했다. 그는 32세에 이르기까지 신플라토주의, 회의주의 등 고전 이성과 철학의 방식으로 신앙에 이르기를 힘썼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무화과 나무 아래서 영혼의 깊은 고뇌를 체험하는 가운데 “톨레 레게”(집어서 읽어라) 라고 노래하는 아이들의 노래 소리를 듣고 신약 성경책을 집어 들고 롬13:13을 읽다가 갑자기 믿음에 이르게 되었다.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어거스틴은 이성이 아닌 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 믿음에 이르는 신앙의 ‘우위성’을 경험하며 이를 강조하게 되었다.

어거스틴은 이성과 신앙과의 관계에 대한 둘째 단계로, 신앙의 ‘이해성’을 강조했다. 터툴리안이 믿음 이후에는 탐구가 필요 없다고 주장한 데에 비해, 어거스틴은 믿음 이후에 믿게 된 신앙의 조항들을 이해하기를 소원했다.

개종 후 처음 저술한 「독백록」(Soliloqia)에서 어거스틴은 자기가 믿게 된 하나님을 알기를 소원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하나님을 부르며, 진리, 지혜, 생명, 선, 미, 행복, 빛, 왕, 아버지, 원인, 소망, 부, 영예, 고향, 조국, 건강 등 모든 명사를 총동원해서 불러놓고는, 자기는 솔직히 말해서 하나님을 잘 모르겠다고 고백하면서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기원했다.

“당신께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나는 당신께로 가기만을 소원합니다. 나는 당신께로 갑니다. 어떻게 가는지 가르쳐 주시기를 다시 간구합니다.”(Sol. I,5). “내가 기도에서 말한 모든 것들을 알기를 소원합니다. 내가 이런 것들을 어떻게 말할 수 있었습니까? 내가 마음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말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 곳에서 모은 것들, 그래서 나의 기억에 저장한 것들, 그래서 내가 그저 믿게 된 것들을 말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아는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Sol. I,8).

결국 어거스틴은 알기를 소원했고 이해하기를 소원했다.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I believe in order to understand. Credo ut intelligam)라고 천명했다. 믿게 된 신앙의 조항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평생 지속되었는데 그 결과 어거스틴에 의해서 수많은 신학 저술들이 저술되었다.

어거스틴은 이성과 신앙과의 관계에 대한 셋째 단계로,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고전이성을 ‘부정’하는 용단을 취했다. 예를 들어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해하고 이해하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이렇게 선언했다. “삼위일체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다(Trinity is beyond human understanding). 인간 자신을 부정할 수 있는 용단은 지극히 진솔한 참된 신앙인의 용단이었다.

어거스틴은 이성과 신앙과의 관계에 대한 넷째 단계로, 고전 이성을 부정하면서도 신앙의 신비를 ‘이해’하고 싶어하는 ‘갈망’을 지녔다. 신앙의 신비를 알고 싶어하고 보고 싶어하고 붙잡고 싶어하는 ‘사랑’의 ‘갈망’을 지녔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신국론 마지막권 마지막 장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거기서 우리는 쉬고 보며, 보며 사랑하고, 사랑하며 찬양하게 될 것이다”(신국론, XXII,30). 만남을 통한 앎, 사랑을 통한 앎, 종말에 주어질 앎을 소원하며 갈망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는가?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13:12).

“비관주의적 낙관주의”

세상과 문화 일반에 대한 어거스틴의 입장도 양면적이고 역설적이며 포괄적이었다. 세상과 문화 일반이 죄악의 세력에 지배를 받아 타락하고 부패되었다는 입장은 터툴리안의 입장과 같았다. 어거스틴은 정치, 사회, 문화 활동이나 인생 자체를 매우 비관적으로 보았다. 현세의 행복이란 장차 누릴 행복과 비교할 때는 불행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마니교적 이원론이나 반 문화적 입장을 견지하지는 않았다.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일을 이루시므로 인간과 자연과 세상과 문화 일반의 회복이 시작되었다. 변혁이 시작된 것이었다. 복음으로 말미암는 인간의 변혁과 문화의 변혁이 시작된 것이었다. 세속의 영역은 죄인들이 변하여 한 사람, 두 사람, 하나님 나라의 구원들로 등록이 이루어지는 응모 장소가 되었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천년왕국’을 먼 훗날에 이루어질 왕국이 아닌 지금 여기서 이루어지는 교회시대의 왕국이라고 했다. 결국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세상과 문화 일반은 부정과 적대와 정죄의 대상으로 머물지 않고 복음화와 변혁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문화 일반은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마지막 무대는 아니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종말에 가서 하늘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세상과 문화일반은 잠정적인 과도기적인 의미를 지닌다.

어거스틴의 세속관과 문화관에는 변증법적 요소가 있었다. 전적인 비관주의도 아니었고 전적인 낙관주의도 아니었다. 세속질서를 죄악의 세력에 지배를 받는 타락한 곳이라고 보는 ‘비관적인’ ‘우울한 실재론자’였지만, 세속 질서 안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지금 부분적으로 이루어져가고 있음을 믿는 믿음 때문에 비관적 어거스틴이 낙관적 어거스틴으로 변했다.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담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