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태신앙의 유산과 순교자들의 신앙 유산을 체 받고 그리고 임마누엘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은혜 가운데서 한 평생을 살아왔다. 2002년 1월 현재 65년의 세월을 살아온 나는 인생이 무엇인지를 되새겨본다. 어느 철인이 너 자신을 알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거스틴도 칼빈도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함께 나 자신을 아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지금 인생이 무엇인지를 되 돌아본다. 나는 인생을 일곱 가지 길을 가는 존재라고 생각해 본다. 나는 그것을 "인생 칠도"(seven ways of life) 라고 부르고 싶다.


1 첫째 인생은 나그네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타향에서 나그네의 생활을 했다. 야곱도 요셉도 부모 형제를 떠나 타향에서 나그네의 생활을 했다. 모세도 고향을 떠나 애굽과 미디안 광야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 선지자나 사도들 중에 나그네의 생활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예수님이야말로 천국을 떠난 나그네의 삶을 사셨다. 사람은 나그네의 생활을 하므로 자기 집착에서 벗어나게 된다. 가문과 지역과 민족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게 된다. 지구촌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품을 수도 있게 된다. 재물욕에서 벗어나 가볍게 살 수도 있게 된다. 땅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하늘을 바라보며 가볍게 자유롭게 여유롭게 살게 된다. 나그네 의식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2 둘째 인생은 만남이다.
나그네에게 필요한 것은 만남이다. 하나님 만남과 사람 만남이다. 나그네의 길은 외롭고 괴롭고 두렵기 때문이다. 나그네가 하나님을 만나고 사람을 만날 때 그의 인생이 바꾸어진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모세와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저들의 삶이 바꾸어졌다. 저들이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 여러 종류의 사람들의 삶도 바꾸어졌다.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을 만났을 때 그리고 수가성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녀의 삶과 수가성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었다. 나는 구원도 전도도 목회도 행복도 기쁨도 모두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만남이 때로는 귀찮게 보이지만 사실은 즐거움이요 기쁨이다. 만남을 확장하는 것이 인생이고 목회이고 행복이다.

3 셋째 인생은 나눔이다.
만남이 깊어지려면 나눔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소유적이고 탐욕적이다. 그래서 불행해 진다. 그것을 벗어나는 길은 나눔을 실천하는 길이다. 나눔을 실천할 때 피차 사랑과 기쁨과 부요함을 누리게 된다. 예수님의 삶은 나눔의 삶이었다.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의 삶도 나눔의 삶이었다. 필요한 물건을 서로 나누었고 겉 옷과 속 옷을 나누었고 슬픔과 기쁨을 서로 나누었다. 그것은 사람을 기쁘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나눔과 도르가의 나눔과 고넬료의 나눔은 저들 자신과 도움 받은 사람들을 기쁘게 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하나님을 감동시켰다. 슬픔과 아픔과 사랑을 나누며 사는 것이 인생이고 목회이고 행복이다.

4 넷째 인생은 버림이다.
나눔이 진정한 나눔이 되려면 버림이 있어야 한다. 인간의 본성은 소유와 명예와 생명에 대한 무한한 집착이다. 그것은 인간을 어리석고 추하고 불행하게 만든다. 멋진 인생은 버림에 있다. 자유롭고 여유로운 인생은 버림에 있다. 예수님의 삶은 버림의 삶이었다. 양들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다. 하늘의 영광도 버리셨고 하늘의 부요함도 다 버리셨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배와 그물과 부친을 버려두고 주님을 좇았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위해서 자기의 재물과 몸을 버렸다고 했다. 장기려 박사는 버리는 삶을 살았는데 그가 죽었을 때 한국의 슈바이쳐가 죽었고 작은 예수가 죽었다고 했다. 진정한 인생은 버림이고 참된 신자와 목회자의 삶은 버림이다.

5 다섯째 인생은 기쁨이다.
위의 네 가지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기쁨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팔 복을 가르치신 다음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고 말씀했다. 결국 제자들은 주님의 이름 때문에 능욕을 받으면서도 기뻐했고 바울은 환난 중에서도 기뻐했으며 베드로는 불 시험을 당하면서도 기뻐했다. 솔로몬은 한 평생을 다 산 다음 하나님의 선물과 인생의 본분은 먹고 마시며 낙을 누리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다윗은 주님 때문에 기뻐하고 성도들 때문에 기뻐한다고 고백했다. 모세도 아침마다 주의 인자로 만족하며 평생에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자기의 기도 제목이라고 고백했다. 인생은 기쁨이다. 주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이다.

6 여섯째 인생은 헛됨이다.
인생은 무상하고 믿을 수 없고 인생의 성취는 무의미하기 때문에 인생은 헛됨이다. 모세는 인생을 아침에 돋는 풀과 같고 신속히 날아가는 살과 같다고 했다. 솔로몬은 인생이 이룩한 모든 성취 즉 부귀영화는 물론 사업도 학문도 지식도 모두 헛되다고 고백했다. 욥은 친구도 믿을 수 없고 아내도 믿을 수 없는 인생의 허무함을 절감했다. 하나님은 땅 위에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고 근심하시고 후회하셨다고 했다. 바울은 인생이 자랑하는 훌륭한 가문도 탁월한 학문도 종교적 열성도 모두 배설물처럼 헛된 것이라고 고백했다. 인생이 이루어 놓은 대단한 성취도 그것이 자기 이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면 불법을 행한 것과 같은 헛됨이라고 주님이 말씀했다. 영원하고 가치 있는 것은 오직 주님 자신 뿐이다.

7 일곱째 인생은 떠남이다.
이중표 목사는 인생은 별세라고 정의했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인생은 떠남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은 떠남의 생활 즉 나그네의 생활을 거듭하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 나그네의 생활을 마감하고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떠남은 부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사실은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감을 의미하고 하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기의 삶의 마지막이 떠남이라고 말씀했다(요13:1). 바울도 자기의 삶의 마지막이 떠남이라고 지적했다(딤후4:6). 인생은 떠남이다. 떠남을 준비해야 한다. 세상에 대한 미련과 애착을 버리는 것이 좋다. 가볍게 후회 없이 떠나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긴 모든 은사들을 마음껏 다 사용하고 가볍게 떠나야 한다. 자리도 너무 오래 차지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재산을 너무 오래 소유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보물을 모두 하늘에 쌓은 후 가볍게 만족스럽게 떠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