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에게는 괴로움도 있지만 기쁨도 많다. 사도 바울도 많은 사람들 때문에 괴로움을 당했지만 또한 많은 성도들 때문에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그래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불렀고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는 "너희 얼굴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고 고백했다. 나는 목회하는 동안 사람들 때문에 거의 괴로움은 당하지 않고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데 지난 몇일 동안에도 목회자로서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그것을 여기 함께 나누고 싶다.


(1) 지난 주일 한 동안 방황하던 이혜원이란 사람이 친구의 인도로 강변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렸고 새 가족 반에까지 참석했다. 예배에 참석한 소감을 물었다. "손수건을 모두 적셨다는 말로 대신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마음을 열고 말씀을 받으며 주님 품으로 돌아오는 한 영혼을 바라보며 나는 목회자와 설교자로서의 기쁨을 누렸다. 화요일 오후 전화로 격려했더니 너무 좋아하며 다음 주일에는 남편과 함께 교회에 나오겠다고 말했다. 감사한 일이다.

(2) 지난 주일 새 가족반 성경공부를 마친 후 한 새 신자의 요청으로 그 분의 친구인 말기 암 환자 한 분을 방문했다. 오랜 동안 주님의 품을 떠난 사람이었다. 한길범씨는 살이 많이 빠져 있었고 심한 고통 중에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의 얼굴에는 주님을 사모하며 회개하는 영혼의 깨끗함과 아름다움이 나타나 있었다.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나눈 후 그 분의 등과 손을 잡고 기도했을 때 그 분은 눈물과 콧물을 내 왼 손위에 쏟으며 간절한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나는 그 분의 눈물과 콧물이 너무 귀하게 여겨져서 저녁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지 까지 왼 손을 물로 씻지 않았다. 월요일과 화요일에 전화로 그 분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기도했을 때 그 분은 여전히 눈물의 기도를 함께 드리곤 했다. 나는 기쁨과 감사를 가슴에 가득히 담았다.

(3) 월요일 밤에 수지 열린문교회에 가서 말씀을 전했을 때 거기 모인 80여명 신자들이 나의 제자인 충성스런 담임 목사님과 함께 은혜를 받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리고 화요일 오후에는 동두천에 가서 한전 북부지역 신우회 연합감사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전했을 때 신앙심이 돈독한 지사장과 지점장들을 비롯한 믿음의 직원들이 그렇게도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은혜를 받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또 한번 목회자와 설교자로서의 기쁨과 감사를 누렸다

(4) 오늘 수요일 새벽, 개인기도를 마친 후 내 앞에 어느 성도가 놓고 간 감사의 글을 읽으며 나는 또 다시 감사와 기쁨을 누렸다. 지난 10월 29일 감사의 편지를 놓고 간 성도였다. 그 때 한 페이지의 감사의 글 가운데는 "새벽에 저를 깨워주셔서 아침 이슬 같은 말씀을 가슴으로 듣게 하시고 온 종일 은혜를 주십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오늘 한 페이지의 감사의 글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새벽마다 저에게 회개의 눈물을 주시고 결단의 눈물도 주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해서 '이 후에 목사님 주를 뵈올 때 상 받게 하소서' 찬송을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목사님 헌금을 드리오니 기쁘게 받아 주세요." 너무도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다. 목회자를 괴롭히는 일도 있지만 목회자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이와 같은 분들을 위해 사도 바울의 기도를 드린다. "원컨대 주께서 000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딤후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