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 새벽마다 다윗과 예레미아의 글을 읽으면서 저들의 글과 생각에 함께 빠져 들어갔다. 사무엘하와 시편에 나타난 다윗의 글과 예레미아에 나타난 예레미아의 글을 읽으면서 저들의 생각에 함께 빠져 들어가며 저들이 토로한 고백과 권면을 나의 고백으로 삼게 되었다. 저들의 고백과 권면은 한결 같이 하나님의 징계와 형벌을 달게 받기를 소원하는 참회와 순종의 고백이었다.


"내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기를 원하노라"(삼하24:14). "나와 내 아비 집을 치소서"(삼하24:17).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나를 긍휼이 여기소서"(시31:9).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삼하16:12).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살리라"(렘27:17). 혹독한 고통을 받든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형벌을 받으면 결국 살게 된다는 말이었다.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시30: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이킬 때가 이르리니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야곱이 돌아와서 태평과 안락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이라"(렘30:3,10,11).

하나님께서 자기의 종들과 자기의 백성들을 그냥 살게 해 주시고 그냥 복을 받게 해 주시지, 왜 벌을 받게 하시고 왜 포로로 잡혀가서 70년 동안이나 고난을 받게 하시는지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다윗에게 그런 혹독한 고난을 주신 다음에야 넘치는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고 그를 통해서 자기의 뜻을 이루셨는지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잘못을 범하지도 않은 욥에게 그런 혹독한 고난을 주신 다음에야 보다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부어주시고 오고 오는 후세의 사람들에게 믿는 자의 본을 삼으셨는지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와 다윗과 예레미아의 절대 순종과 참회의 고백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저들과 함께 이렇게 부르짖게 되었다. "하나님, 나를 벌하시옵소서. 하나님, 나를 징계하시옵소서. 하나님,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나를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했던 것처럼 나도 고난 당하는 북한 동포들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좋아하게 하시옵소서." 나도 욥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징계하시기를 비는 마음까지 가지게 되었다.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 권세에서 너를 구속하실 터인즉 네가 혀의 채찍을 피하여 숨을 수가 있고 멸망이 올 때에도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욥5:17-21).

이와 같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고행주의가 나왔다고 생각해본다. 사실 개신교의 장점도 많지만 약점도 많다고 생각한다. 개신교는 너무 값싼 은혜만 강조한다. 고난을 싫어하며 죄 값을 치루려는 심각한 책임감이 없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죄를 범하고서도 그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모두 남에게 전가한다. 사실 중세의 고행주의적 생각을 개혁주의 설교자 김성환 목사님과 박윤선 목사님도 가지고 계셨다. 그분들은 이런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아버지, 나에게 이 고통을 더하시옵소서.”

하나님의 종들과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것이 죄 값이든 아니든 하나님의 징계와 형벌을 받으면서 세상과 육정에 붙은 불순물들을 조금씩 제거해 버리게 되었다. 세상과 자기를 의지하던 불신앙을 조금씩 벗어버리게 되었고 사람들과 세상을 바라보던 세속의 눈을 조금씩 높이 들어 메시야와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다. 성경학자들이 지적하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 사상과 종말사상을 가지게 된 것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해서 였다고 한다. 지금 우리들은 너무 세상과 육정에 얽매어 있다. 지금 우리들은 너무 세상과 자신을 의지하고 있다. 주님을 간절하게 사모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우리가 이루어놓은 땅의 것들을 너무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고 있다. 우리는 너무 불순하게 되었다.

나는 지난 몇 주 동안 마음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하나님, 차라리 내가 포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세상에 붙은 나의 모든 욕심과 불순물들을 제거하고 주님만을 순수하고 간절하게 사모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하나님 그렇게 하시옵소서. 내가 전적으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기도할 수 있다면, 차라리 내가 포로가 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차라리 나를 징계하시고 나를 형벌하시옵소서!" "차라리 포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담임)